속시원하게 얘기하자.
양심선언하겠다.
내 논문은 표절이었다.
A학점을 준 지도교수와 대학당국에 사죄를 구한다. 그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 다만 내가 부끄럽게 표절했을 뿐이다.
당시로 돌아가보자. 복학을 했던 잊지못할 1980년 봄. 교정은 벗꽃처럼 날리는 최루탄 가스로 가득했다. 난 여름에 졸업예정이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 고심하다가 어느날 도서관에서 내 눈길을 끄는 한 석사 논문을 찾았다. 게임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난 그 논문 이론을 바탕으로 다른 사건을 도입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해 나갔다.
문제는 논문을 절반 이상 썼을 때 발생했다. 내가 잡은 논문 제목이 이미 외국에서 발표돼 있는 것이었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시간도 없었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수록 기존 논문의 결론에 유사하게 접근하는(솔직하게 말해서 표절하는) 것이었다.
어찌어찌 논문을 제출하고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얼마간을 보냈다. 게임이론을 가지고 논문을 쓴다고 하자 네가 뭔데 하며 말리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어느날 학장실로 호출(?)을 당했고 게임이론 전문가였던 지도교수에게 내 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했다.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최근 모국에서 논문표절 시비로 시끄럽다. 유명 정치인들을 비롯해 주부스타강사 김미경, 연예인 김혜수 김미화 등 사회 각 분야 인사들이 총망라됐다.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까지 구설수에 휘말렸다. 진보논객인 진중권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이 아니라 복사학위 논문”이라고 비꼬았다.
표절의 기준이 무엇인가. 그중에서 몇가지를 살펴보자. 여섯 단어 이상 연속해 표현이 같고 인용표시가 없으면 표절이다. 또 단위가 되는 명제 또는 데이터가 동일하거나 유사할 경우다. 그러므로 나의 논문은 표절이다.
배우인 김혜수는 학위반납을 선언했다. 나는 김혜수처럼 쿨(cool)하지 못하다. 반납선언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어느 정치인처럼 변명은 하지 않겠다.
표절(plagiarism)이란 말의 유래는 <유괴>라는 의미의 라틴어라고 한다(맞는 지 틀리는 지 확인하진 못했지만 어느 블로그에서 인용했다). 유괴는 엄연한 범죄이다.
내가 표절했던, 이제는 기억도 안나는 어느 외국인 학자에게 용서를 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표절을 했다고 외쳐도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명하지 않다는 것은 이렇게 좋다. 편안하다.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박사나 석사가 아닌 학사논문이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 김형주 - 시인, 해외문학 신인상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부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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