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정치공작 의혹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데도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사건 연루자들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정원 감찰실에 근무한다는 사실까지 보도됐는데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철저히 수사하라는 형식적인 말이라도 할 법한데 아예 모르쇠로 버티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이 사건과 관련해 여권에서 나온 공식 언급은 ‘검찰의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바란다’는 새누리당 대변인의 뒤늦은 논평뿐이다. 당 공식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 이상돈 전 비대위원과 이완구 의원이 개인 의견을 언론에 밝혔을 뿐 기이한 침묵이 여권 전체를 짓누르는 분위기다. 국정원의 정치공작이라는 사안의 심각성에 비춰보면 여권의 이런 태도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른바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과 ‘반값 등록금 허구성 전파’ 문건은 국정원의 정치공작이 그대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명백한 물증이다. 여기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 심리정보국이 벌인 정치댓글 내용을 종합해보면 단순한 국정홍보 차원을 넘는 거대한 공작의 징후가 뚜렷하다. 특히 이런 공작들이 총선 전인 2011년 6월과 11월, 그리고 대선 직전에 기획·실행됐다는 점에서 총선 대선을 겨냥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검찰이 국정원법상의 정치관여죄에 무게중심을 두고 수사중인 모양이나,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을 고려하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선거법 공소시효가 임박했는데도 검찰이 선뜻 총력수사에 돌입하지 못하는 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모호한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은 대선 직전 정치댓글 사건에 대해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라고 규정한 뒤 이를 번복한 적이 없다. 만일 국정원의 선거법 위반 혐의가 드러날 경우 대선 결과의 정당성에 흠집이 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침묵을 계속하는 건 ‘중립’이 아니라 사실상 종전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고, 검찰의 적극 수사에 반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여당 지도부가 일체 언급을 피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읽은 때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국정원이 저지른 민주주의 파괴와 국기 문란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일 뿐 아니라 엄청난 범죄를 은폐하는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당장 민정수석실 추아무개씨의 거취를 포함해 이 사안에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계속 침묵을 유지하는 것은 수사 방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