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사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10일 서울 중앙지검에서 수많은 보도진이 주시하는 가운데 미납추징금 납부계획을 밝히고 대국민 사과문을 읽은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미납추징금 납부계획 밝혀
정의는 늘 늦게 온다. 16년 전 내려진 전두환(82)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판결이 이제야 완전한 집행을 앞두게 됐다. 1979~80년 전 전 대통령의 쿠데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33년 만에야 마무리되는 셈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54)씨가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가족을 대표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미납 추징금을 전액 납부할 뜻을 밝힌 10일, 채동욱 검찰총장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가적 정의가 올바로 세워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재국씨는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에서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부친(전 전 대통령)께서 당국 조치에 최대한 협조하라고 말했는데 저의 부족함과 현실적 난관에 부딪쳐 해결이 늦어진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자진 납부하기로 결정한 가족들의 부동산 자산 목록을 밝힌 뒤 검찰에 ‘추징금 납부 계획서’를 제출했다. 사법부 판결의 집행을 16년간 거부해오던 전 전 대통령의 항복 선언이었다. 대법원은 1997년 4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과 함께 각각 추징금 2205억원과 2628억원을 확정판결했다. 전 전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한 1980년 이후 현직 대통령으로서 직접 뇌물을 수수한 ‘금권정치’ 역사가 실질적 단죄를 받는 데 33년이 걸렸다.
전 전 대통령은 무엇이든 한번도 먼저 내놓은 적이 없다. 1987년 6월의 직접선거를 국민이 싸워 쟁취했듯, 2013년의 ‘추징금 납부 계획서’도 시민과 언론이 싸워 얻었다. <한겨레>는 물꼬를 트는 데 나섰다. 지난 5월20일 ‘전두환 재산을 찾아라-시민과 함께하는 크라우드소싱’ 기획을 시작했고 같은 달 24일 채동욱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집행 전담팀’을 만들었다. 검찰은 가까스로 ‘추징금 미납자 봐주기’라는 오명을 씻었다. 검찰은 1997년 이후 환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징금 환수를 언급한 뒤 국회는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을 통과시켜 수사를 도왔다.
추징금이 완납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우선, 구속된 전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62)씨의 조세포탈 혐의 등 전 전 대통령 일가 및 ‘비자금 조력자’들이 은닉재산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불법행위는 철저히 형사처벌하고 ‘불법행위의 과실’도 몰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5년 당시 서울지검장으로 ‘5·18 특별수사본부장’이었던 최환(70) 변호사는 “추징금 납부는 정상참작 사유가 될 뿐 추징금 완납이 형사절차 종결로 연결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극우세력의 전 전 대통령 시절 역사에 대한 왜곡 문제는 언론과 사회가 함께 풀 또다른 과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교학사의 역사 교과서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탄압과 비리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을 누락했다.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다고 허위 보도한 일부 종합편성채널은 건재하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이들에 대한 모욕도 버젓이 인터넷 곳곳을 떠돈다. 12·12 쿠데타에 저항하다 숨진 김오랑 중령 추모비 건립 결의안은 올해 4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당시 숨진 사병 추모 문제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추징금 완납은 남은 법적·역사적 과제를 풀어나가는 또다른 출발점일 뿐이다. 정의는 아직 배고프다.
< 고나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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