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일본의 군사 역할 강화와 관련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미-일 양국의 외교·국방장관이 3일 도쿄에서 열린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가 끝난 뒤 발표한 공동성명의 핵심은 미국이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역사 반성 없는 군사대국화’를 적극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중국의 강력한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동북아에서 한-미-일 삼각동맹의 강화 필요성을 제기하며, 한-일 두 나라에 한-미-일 공동 해군훈련 실시, 한-일 군사정보협정 및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 촉구 등의 물밑 작업을 줄기차게 펼쳐왔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의도는 아베 정권의 침략 사실 부정, 일본군 군대위안부에 대한 해결 의지 부재,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 등 일본의 ‘퇴행적 역사인식’에 갇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 반성 없는 일본의 폭주에 우리나라 여론이 강력한 견제를 해왔고, 미국도 이를 의식해 일본에 한-일 간 역사 화해를 촉구해온 게 그간의 현실이었다.
 
미국이 일본의 역사인식에 전혀 변화가 없는데도 이번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 일본의 입장을 전폭 지지하고 나선 것은 매우 실망스럽고 충격적이다. 미국의 일본 편들기가 중국의 위협적 대두와 군사예산의 축소라는 급박한 현실적 요인을 고려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며칠 전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미-일 공조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역사 문제 등에 대해) 아무런 성의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상처에 계속 소금을 뿌리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는데도 미국이 이런 성명을 낸 것은 우리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구상을 추진하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빠진 부분을 효과적으로 메우려는 게 미국 동북아 안보전략의 핵심이라면, 우리나라의 흔쾌한 지지 없이 한-미-일 동맹이 과연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미국이 한-일 간의 역사갈등보다 미-일 군사 안보를 중시하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힌 이 중대한 시점에, 우리 정부의 태도는 어정쩡하기 그지없다.
 
정부는 미국과 일본에 역사인식의 수정 없이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절대 찬성할 수 없고, 한-미-일 안보협력에도 제약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또 대북정책의 협조와 경제관계의 현실, 동북아 공동번영을 위해서도 중국에 대한 군사 견제에 전적으로 동참하기 어렵다는 점도 설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