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지난 대선 기간 박근혜 후보의 온라인 불법 홍보운동원들이었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이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 변경허가 신청서에 담긴 국정원 직원들의 트위터 내용을 보면 벌린 입을 다물 수 없다. 종북몰이, 지역감정 조장, 흑색선전, 허위사실 유포 등 가장 저질스럽고 비열한 방식이 총동원됐다. 심지어 박근혜 후보의 후원계좌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내용까지 들어 있다.
“호남을 진심으로 대하는 박근혜와 호남을 호구로 보는 안철수 문재인” “문재인은 종북정권이다. 속지 마라. 김일성 왕조 치하에서 노예생활 하려면 속아라” “찰쓰나 재인이가 대통령 할 바엔 차라리 개나 소를 시키세요” “박근혜 후보 계좌안내 대선승리로 가는 큰 힘이 됩니다. ARS 후원전화 060-700-2013” ….
국정원 쪽은 그동안 자신들의 대선 개입 혐의에 대해 “북한과 종북세력의 선전에 대응하는 목적으로 댓글을 달았을 뿐 선거 개입이라는 의식이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트위터 내용들은 이런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증명해준다. 박근혜 후보의 후원계좌까지 안내할 정도로 불법 선거운동을 벌여놓고 북한에 대한 심리전 운운한 것은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글의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이 글들을 퍼뜨린 방식과 규모도 놀랍다. 자동 리트위트(재전송)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 9월1일부터 12월18일까지 트위터로 퍼뜨린 글은 무려 5만5689차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댓글과는 규모와 파급 효과에서 차원이 다른 엄청난 불법 선거운동이다. 트위터가 선거에 끼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지난 대선의 공정성 전반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특별팀장인 윤석열 여주지청장을 전격적으로 수사에서 배제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도 더욱 확연해졌다. 국정원 직원 체포·압수수색 과정에서 사전 보고가 없었다는 따위의 주장은 구차한 트집 잡기일 뿐 실제 이유는 수사팀이 새롭게 밝혀낸 국정원 범죄행위의 파괴력이 메가톤급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정통성을 흔들 정도로 심각한 국정원의 불법 선거운동 실상에 수사의 손길을 뻗치는 것을 결코 묵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공소장 변경 요청을 철회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면 더욱 말문이 막힌다. 수사팀이 애써 밝혀낸 불법 행위의 증거들을 덮어버리겠다는 것이 정의와 법치를 내세우는 검찰이 할 일인가. 수사팀이 ‘비밀작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절박한 사정도 더욱 생생히 이해가 된다.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 변경 요청을 철회할 생각까지 할 정도라면 애초부터 국정원 직원 체포나 압수수색을 승인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요즘 모습을 보면 자존심도 배알도 없는 초라한 조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국정원 직원을 구속하려면 미리 국정원장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부터가 아무런 입법근거도 없이 중앙정보부직원법을 처음 만들 때 중앙정보부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기 위해 집어넣은 규정이다. 정신이 온전히 박힌 검찰이라면 당연히 문제의식을 가져야 마땅한데도 남재준 국정원장이 ‘격노’했다는 말 한마디에 검찰이 아수라장이 됐다니 할 말을 잃는다.
남재준 국정원장의 적반하장식 날뜀은 ‘국정원 무소불위’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음을 보여준다. 조직원들이 엄청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게 드러났으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옳은데도 오히려 화를 내며 검찰을 몰아세우고 여기에 검찰은 허리를 굽히고 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중앙정보부의 후신이 딸을 위해 불법 선거운동을 벌이고, 그때 만들어진 터무니없는 규정이 이들의 불법행위를 덮어버리는 기막힌 현실, 이것이 바로 물구나무선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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