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21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해 829건의 내용을 수정·보완하라고 출판사들에 권고한 것은 교학사 교과서 문제를 희석시키려는 ‘물타기 꼼수’일 뿐이다. 교육부는 이제라도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을 취소해 사태를 빨리 마무리하기 바란다.
교육부 권고 내용을 살펴보면 물타기 의도가 잘 드러난다. 교육부는 애초 객관적 사실과 표기·표현 오류만 잡아내겠다고 했다가 21일 발표 때는 서술상의 불균형과 국가 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는 내용을 함께 분석했다고 밝혔다. 이들 내용이 대부분 북한 관련 서술에 집중된 것을 보면 7종의 교과서에서 흠집을 찾으려고 기준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졸속 작업을 하다 보니 권고 내용이 틀린 것도 여럿이다. 게다가 교학사 외의 교과서에서는 오탈자까지 속속 짚어내 오류 숫자를 늘리려고 한 흔적이 뚜렷하다. 그럼에도 교학사 교과서의 오류가 다른 교과서의 2~4배에 이른 것은 이 교과서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8월 말 8종의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국편) 검정심사에서 통과된 이후 논란이 집중된 것은 교학사 교과서뿐이었다. 이 교과서는 친일파의 행위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노골적으로 미화하는 등 역사 교과서로서 허용될 수 있는 자율성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많았다. 게다가 사실 관계가 잘못 표현되거나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내용이 수백 곳 지적돼 교과서로서 수준 미달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다수였다. 
그렇다면 국편의 검정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 교과서만 검정 취소하면 그만인데도 교육부는 굳이 8종의 교과서 전부에 대해 사실상의 재검정을 실시했다. 부실·역사왜곡 교과서 문제를 좌우 이념 논란으로 치환하려 한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과 새누리당 등 여권의 뜻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봄 ‘역사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불을 지른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때아닌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부의 이번 권고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와 관련된 내용이 하나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여권이 역사전쟁으로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들이 나아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을 정통으로 삼자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정치적 목적으로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역사 교과서 내용까지 바꿔버린다면 정권이 달라질 때마다 역사전쟁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학계는 물론이고 국민에게도 불행이다. 교육부는 정권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