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의 선율을 기억하면서 좋아하는 곡을 추천하라면 모두가 나름대로 이 곡 저 곡을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타이스의 명상곡’을 꼽고 싶다.
목사여서 그럴까? 프랑스의 문호인 아나톨 프랑스의 소설을 소재로 하여 루이 갈레가 각본을 쓴 것을 오페라로 만든 타이스다. 이것은 수도승 아타나엘과 아름다운 무용가 타이스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보이는데 이 명상곡이 오페라가 전개되는 부분 부분에 흐르고 있다.
수도승 아타나엘은 타락한 여인 타이스를 회개시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떠나려 할 때 말리는 스승의 만류를 뿌리치고 멀리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전도했으나 타락한 그녀는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녀도 자신이 살아온 퇴폐적인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차였기에 수도승의 정열적인 요청에 마음이 움직였다.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그녀의 삶이란 환락에 찼으나 육체의 만족이나 세월이 결코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기도 하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도승을 유혹하려는 마음을 품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허영과 타락의 삶을 버리고 수도승을 따라나선다. 모든 재물과 자신이 가졌던 우상과 사귀던 남자와 집과 세상을 등지고 수도승과 함께 정결한 생을 위해 사막으로 떠났고, 수도승은 돌아와 그녀를 수도원에 맡기고 자신의 수도를 위해 정진하는데…, 타이스는 마음에 안정을 찾고 신앙의 길에 섰는데 정작 수도승의 마음에는 오히려 그녀를 연모하는 정과 사랑이 생겨 꿈속에서도 그녀가 생각이 나고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수도승으로서는 이래서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사막으로 나가 고행을 하며 참고 견디려 하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를 찾아가 고백을 하지만 이미 신앙의 길에 들어선 그녀에게는 공허한 소리로 들릴 뿐 죽어가는 그녀에게는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보이고 하나님이 그를 영접하며 기다리신다고 고백하고 죽음을 맞는다.
대강의 줄거리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땅의 삶이 얼마나 허망한지 두 번이나 보여주는 모래시계를 통해 시간과 세월의 흐름, 인간의 향락이 한 순간 뿐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대에서 벌거벗은 남녀가 즐기는 모든 것들은 지옥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첫 장면에서부터 수도사들의 갈등을 표현하는 모습과 함께 주인공 아타나엘의 극과 극의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처음 그가 타이스에게 갈 때는 성자라고 하겠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고 신앙으로 돌아간 그를 잊지 못해 수도사의 신분도 잊고 사랑을 요구하는 모습은 인간 그 자체가 얼마나 연약한가 하는 점을 보이고 있다. 수도사 역시 인간이기에 그도 갈등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여인에게 미쳐있는 그 모습을 보고 과거 그를 존경하고 따랐던 수도사들이 사탄이 나타났다고 했겠는가?
인간이 그래서 연약한 존재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과신할 수도 없고 누구를 향해 비판하거나 손가락질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스스로 시인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극과 극 속에 사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어떤 극적인 존재로 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오페라 마지막 장면은 심각하다. 타이스는 죽고 사라지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큰 칼이 무대 위로 떨어지면서 꽂히는데 그 칼이 흔들거리고 있는 장면이다.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그것은 언제나 현재형 임을 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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