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노년의 두분을 만났다.
한분은 얼마 전에 백수연을 치른 친구의 어머니, 그리고 또 한분은 <피에타> <뫼비우스>로 화제작을 몰고 다니는 김기덕 감독의 어머니다.
김기덕 감독의 1분30초짜리 <나의 어머니>는 70주년을 맞은 베네치아(베니스) 영화제가 세계적 영화감독 70명의 단편영화를 모아 한편의 영화처럼 만들어 현지에서 상영한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감동적인 영상을 만들어냈다. 여든 전후일 것으로 보이는 어머니는 아름다웠고 강인했다. 아들의 방문전화를 받고 어머니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계단을 한단 한단 내려가고 복잡한 건널목을 위태위태하게 건너 시장을 보고 장본 것을 들고 다시 찬찬히 계단을 오른다. 불안한 걸음걸이와는 달리 능숙하게 음식을 만들어 어머니는 식탁에 앉아 아들과 나누어 먹는다. 혼자 살며 음식도 하고 밥도 하고 장도 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카메라는 끈질기게 비추었고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서 보여준 처절함과는 또 다른 처절함이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 나이가 들어가며 육체가 쇠잔해지면서도 일상을 살아내는 평범한 모습의 비범성과 위대성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10월의 하늘이 맑은 날 서울 근교의 마당 넓은 집에서 유경순 여사의 백수연이 열렸다. 지난여름 99세의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하얀 망사장갑이 필요하다고 했다. 웬 망사장갑일까 했더니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손만 보이는데 손이 쭈글쭈글해서 창피하다며 겨울 장갑이 너무 두꺼워서라고 수줍게 말씀하셨다 한다. 백수연에는 일흔이 넘은 아들의 친구들이 껄껄거렸고 각지에서 친척과 자손들이 모여들었다. 한복을 차려입고 화장도 곱게 한 어머니는 혼자 며칠을 끙끙대며 쓰셨을 감사문을 낭독했고 찬송가도 한곡 부르셨다. 교회성가대에서 소프라노를 맡았던 어머니는 고음이 아슬아슬했지만 2절까지 불렀다. 서른다섯에 혼자되어 올망졸망한 삼남매를 간호사를 하며 기른 어머니의 한세기, 백세 삶에는 우리나라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원산 루씨여고 출신 어머니는 전쟁 때 아이들을 끌고 어찌어찌 제주도까지 내려갔다는데 큰아들 부부는 자신들의 딸이 서른다섯이 넘어서야 어머니가 어머니만이 아니고 너무 젊은 나이에 혼자된 여성이기도 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어머니의 여자로서의 삶의 서러움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노인들을 위한 동화라 할 수 있다. 양로원에서 지역 유지들이 모여 자신의 백세잔치를 벌이기 10분 전 주인공은 창문을 통해 도망친다. 침대에서 이제나저제나 죽기를 기다리는 삶은 그만 살겠다고 결심했다. 기상천외한 모험이 계속되고 복지사회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웨덴의 또 다른 그늘이 유쾌하게 블랙코미디로 그려지기도 했지만 백세 노인의 모험은 그대로 <톰 소여의 모험>이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우여곡절 끝에 84살 여자와 결혼하고 날씨 좋은 섬에서 느긋하게 산다는 정말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다. 모험의 뒤쪽으로는 현대사의 사건과 인물들을 주인공과 조우시킴으로써 개인과 역사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역설하기도 한다.
100세 노인의 모험담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아마도 장수시대를 맞아 늙음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세계인 모두의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일 듯하다. 개인차가 크고 소득과 건강, 사회복지가 천차만별이지만 모두에게 노년의 삶은 당면한 숙제다. 우리나라는 오이시디 국가 중에서 인구 10만명당 100살 이상의 인구가 가장 적은 두명에 불과하지만 지금 같은 고령화 시대가 계속되면 곧 백세 노인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노인을 볼 때마다 저 노인은 언제 죽을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장수 자체를 복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나이 들면 걷지도 못하고 혼자 일상을 해결할 수도 없어서 주변에 짐이 될 가능성이 많아서일 것이다. 밥을 내 손으로 먹을 수 있고 뒤를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날까지 사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꿈일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살아 있는 한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100살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 시대를 우리는 맞고 있는 것이다.
< 김선주 - 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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