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 YOU THINK YOU ARE?
- 당신은 누구인가? -
올해 노벨문학상을 캐나다의 엘리스 먼로(Alice Munro)가 수상했다. 나로서는 조금 뜻밖의 일이었다. 캐나다 문학, 특히 소설을 공부하며, 3명의 여류 작가에 대해 글을 쓰려고 준비한 적이 있었다. 마가렛 로렌스(Margaret Laurence), 마가렛 에드우드(Margaret Atwood), 엘리스 먼로의 세명의 작가에 대해서였다. 내가 보기에는 비교적 캐나다의 소설이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심한 경우 그 존재마저 의심받지만, 이 세 명의 작가가 그런대로 문학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썼고, 캐나다의 소설을 대표하지 않나 생각 들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THE DIVINER’와 ‘THE STONE ANGEL’을 쓴 마가렛 로렌스가 가장 훌륭한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투병 생활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했다.
마가렛 에트우드는 오래 전부터 국제적으로 알려져, 캐나다 작가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소설가이지만, 시인, 문학 평론가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의 작품 ‘THE HANDMAID’S TALE’은’ 시녀이야기’로 오래 전에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그런 이유로 캐나다에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면 마가렛 에트우드가 아닐까 생각했다. 엘리스 먼로는 이번 수상자로 예상되기는 했지만, 내가 놀란 이유는, 그녀는 주로 단편소설만을 써왔기 때문이다. 장편은 되고 단편은 안된다는 법은 없지만, 여지껏 주로 장편 소설이 노벨문학상에 뽑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처음에는 단편으로 시작하여 장편으로 옮겨 가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생활 꾸준히 단편소설을 쓰는 경우도 드물다. 아마 장편이 베스트셀러로 팔려야 돈이 되는 경제적 이유가 아닌가 생각하며, 요즘 단편을 발표할 지면이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가렛 에트우드는 오래 전부터 국제적으로 알려져, 캐나다 작가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소설가이지만, 시인, 문학 평론가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의 작품 ‘THE HANDMAID’S TALE’은’ 시녀이야기’로 오래 전에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그런 이유로 캐나다에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면 마가렛 에트우드가 아닐까 생각했다. 엘리스 먼로는 이번 수상자로 예상되기는 했지만, 내가 놀란 이유는, 그녀는 주로 단편소설만을 써왔기 때문이다. 장편은 되고 단편은 안된다는 법은 없지만, 여지껏 주로 장편 소설이 노벨문학상에 뽑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처음에는 단편으로 시작하여 장편으로 옮겨 가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생활 꾸준히 단편소설을 쓰는 경우도 드물다. 아마 장편이 베스트셀러로 팔려야 돈이 되는 경제적 이유가 아닌가 생각하며, 요즘 단편을 발표할 지면이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스 먼로는 온타리오 주위 윙햄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고, 런던에 있는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을 다녔다. 그녀의 작품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쉽지 않다. 몇 편의 장편이 아닌 수백편의 단편소설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마디로 요약하자면, 마치 자신의 체험담을 이야기하듯, 특히 성장과정을 이야기하듯, 일상적인 생활 속에 한 소녀가 또는 여자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부닥치는 일들에 대해 담담하게 써내려갔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강의 시간에 어떤 학생이 그녀의 이야기가 작가 자신의 체험담이라고 우기던 일이 생각난다. 그럴 정도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이 그녀의 작품의 특징이다. 장편과는 다른 단편소설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단편의 성격상, 영웅보다는 소시민의 일상을 그리기 쉬운 법이다. 그런 까닭에 큰 사건이나 큰 인물은 없다.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이며, 그녀는 화자로 일인칭 ‘나’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작가의 경험담으로 착각하기 쉽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녀의 많은 소설들이 그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는지 모른다.
내가 처음 접한 그녀의 책은 ‘WHO DO YOU THINK YOU ARE?’이다. 이 소설집은 재미있는 것이 단편집이지만, 각기 다른 단편이 이어져서 하나의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온타리오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란 소녀가 여류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그렸다. 그런 이유로 그녀의 일생에 관해 쓴 자서전처럼 오인하기 쉽다. 십여 편의 단편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마저 로스(Rose)로 똑 같고, 소설의 순서마저 나이순으로 배열되어 있어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소설집의 제목이 상징적이다. 물론 개인의 정체성을 묻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공부할 당시만 해도(90년대 초), 캐나다 문학의 제일 중요한 주제는 정체성이었다. 캐나다 문학은 과연 존재하는가? 물었듯…. 사실 영국문학과 미국문학이라는 두 거인들 틈에 끼어 미미한 존재였던 것은 사실이다. 엘리스 먼로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없던 캐나다 문학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더욱 분명한 모습으로 세계 문학 한 가운데 서리라 생각한다.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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