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9일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뒤 처음으로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았다.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물었다.
“과거 한보사건 수사 당시 수사 책임자가 교체되고, ‘깃털’만 당하고 ‘몸통’은 빠져나갔다는 국민 비난이 쏟아졌는데 총장은 당시 수사가 공정했다고 생각합니까.”
김태정 총장은 한동안 답을 하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시 검찰로서는 최선을 다한 수사였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불신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데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검찰이 법의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은행이 저런 꼴이 안 됐을 테고 기업체의 경쟁력 상실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고 결론을 맺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부는 붓글씨로 액자에 담겨 대검찰청 회의실에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휘호를 써주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그랬던 김대중 정권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호남 출신 검사들이 요직을 차지했고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살폈다.
정권과 검찰의 상하관계가 대등한 수준으로 조정된 것은 노무현 정권 때였다. 현직 대통령과 검사들이 온 국민 앞에서 맞짱토론을 벌였다. 검찰은 대통령 측근 실세들의 비리를 주저 없이 사법처리했다. 정권에 맞선 송광수 검찰총장, 안대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다.
거기까지였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검찰은 ‘정권의 충직한 하수인’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검찰의 최근 행태는 너무나 실망스럽다. 마치 집권세력의 정적을 물어 죽이는 사냥개로 전락한 모습이다.
법무부가 내놓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 경위’에는 “1945년 김일성이 주장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북한의 지령에 따라 2011년부터 강령에 편입했다”, “2000년 민노당이 창당할 무렵부터 최근까지 북한은 간첩을 통해 다수의 지령을 하달하여 통진당의 운영에 개입, 결국 상당 정도 현실화했다”는 등의 표현이 나온다. 1980년대 공안정국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만들고 공안검사들이 베껴 쓰던 공소장보다도 수준이 떨어진다. 헌법재판소 심리에서 도대체 이를 어떻게 증명하려는 것인지 궁금하다.
새누리당이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가 조직적으로 문재인 후보 선거운동을 했다”고 물타기 차원의 정치공세를 폈다. 며칠 뒤 검찰이 전공노 홈페이지 서버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의 김무성 의원 서면조사에 대해 야당이 문제를 제기하자, 김무성 의원이 소환조사를 자청했다. 검찰이 다음날 소환 방침을 밝혔다.
검찰은 국정원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에 대해 3개월 정직 중징계를 청구하고 수사를 가로막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징계하지 않기로 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합당한 결정”이라고 장단을 맞췄다. 검찰과 새누리당은 ‘검여(검찰과 여당) 동일체’로 움직이고 있다. 뻔뻔한 정도가 양심을 아예 갖다 버린 것 같다.
해방 이듬해 이승만 정권에서 감찰위원장이 임영신 상공부 장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27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기소하지 말라고 검찰에 압력을 가했지만 최대교 서울지검장은 임영신 장관을 배임 및 배임교사, 수뢰 등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에 대통령의 입김이 미치던 시절이다. 최대교 지검장은 항의의 뜻으로 사표를 던졌다. 리크루트 스캔들과 록히드 사건을 파헤친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의 모토는 ‘거악(巨惡)이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하라’였다. 검찰은 역시 살아 있는 권력과 당당하게 맞설 때가 멋지다. 멋진 검찰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해방 이듬해 이승만 정권에서 감찰위원장이 임영신 상공부 장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27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기소하지 말라고 검찰에 압력을 가했지만 최대교 서울지검장은 임영신 장관을 배임 및 배임교사, 수뢰 등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에 대통령의 입김이 미치던 시절이다. 최대교 지검장은 항의의 뜻으로 사표를 던졌다. 리크루트 스캔들과 록히드 사건을 파헤친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의 모토는 ‘거악(巨惡)이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하라’였다. 검찰은 역시 살아 있는 권력과 당당하게 맞설 때가 멋지다. 멋진 검찰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만드는 위키백과는 ‘정치검찰’을 “검찰 본연의 임무보다 정치적 활동에 치중하는 검찰을 이르는 말이다. 검찰의 정권 눈치 보기, 권력에 줄서기 문화를 빗대어 검찰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인다”고 정의하고 있다.
검찰의 지금 모습은 ‘멋진 검찰’일까, ‘정치검찰’일까.
< 한겨레신문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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