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사무실에 사상 첫 경찰 투입]

경찰, 철도노조 지도부 9명 체포 이유로 강제 진입
지도부 이미 피신… 저항하던 노조원 등 136명 연행

‘자랑스러운 불통’을 내건 박근혜 정부가 ‘대화’보다는 ‘힘’을 기반으로 한 정치에 가속페달을 밟았다. 철도파업 14일째인 22일, 1999년 합법화 뒤 한번도 공권력이 투입된 적 없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본부 사무실에 경찰이 강제진입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전국철도노조 파업 지도부 9명을 체포한다는 이유였으나, 체포 대상자들은 이미 피한 뒤였다. 대신 강제진입에 저항하던 민주노총 간부와 노조원 138명이 연행됐다. 민주노총은 비상 중앙집행위원회를 연 뒤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돌입하겠다”며 오는 28일 총파업 투쟁을 선언했다.
 
정부의 민주노총 강제진입에는 역대 최장기에 접어든 철도노조 파업을 우선 잠재워야 한다는 조급함이 배어 있다. 철도 민영화 저지를 명분으로 한 파업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의료·교육 등의 민영화(영리화) 논란으로 불이 옮겨붙을 참인 탓이다. 철로 위에 민영화 저지 대치전선이 그어진 상황에서 이를 조속히 무너뜨려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서 이번 파업을 “민영화 않겠다는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 명분 없는 파업”으로 내몰고, 검경은 “철저한 법 집행”으로 호응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는 “청와대 강경 관료의 전략적 판단으로 보인다. 민영화 파업을 눌러야 노조를 제압하고, 다음 단계의 정책도 관철할 수 있다는, 말하자면 좋은 기회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조는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세력으로서 가장 잘 조직된 단체 가운데 하나다.
 
철도노조를 넘어 정권에 호의적이지 않은 노동계 전체와 확실한 선을 긋고 가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민주노총과 철도노조, 시민사회는 민영화 논란의 핵심인 코레일 자회사 설립 문제와 관련해 꾸준히 ‘사회적 대화기구’를 제의해 왔으나, 정권은 보란듯이 강제진입으로 응답했다. 결국 앞으로도 대화보다는 물리적인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정치를 펼치겠다는 정권의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대화를 추동해야 할 정부가 결국 최고의 노조 대표성을 갖는 기구조차 인정 않고 적으로 삼아 선전포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이날의 강경한 조처는 결국 정권의 정당성이 공격당하는 시국에 대한 역공이란 진단이 나온다. 정권 출범 1년이 다 되도록 답보만 거듭하고 있는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으로 정권의 정통성에 시비가 이는 상황에서 기초연금 공약 파기, 민영화 논란, 정권 차원의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혹 등 악재가 꼬리를 무는 상황이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정권이 만들어진 선거 과정이 불공정한 사실이 드러나 정당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공약 파기 등으로 민심의 이반이 이는 상황에서 나온 조처다. 철도파업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높은데,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 추구를 억압하고 되레 민주노총이 이를 대변해주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나온 오늘 일은 정권의 정당성이 너무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정권 퇴진’ 구호를 들고나온 것은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강행처리한 2011년 11월 이후 2년1개월 만이다. 이제 힘과 힘이 맞부딪는 일만 남은 셈이다.
<전종휘, 임인택, 이정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