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끓는 사연들
 
아버지 대신 의용군 끌려간 동생 60여년 만에 만난 남쪽 형 금영씨
“다시 만나 이렇게 기쁠수가 없어”
 
북쪽 형 이정우씨 만난 영우씨
“그동안 상봉신청 뽑히지 못했는데 이번에 형님이 나를 찾았다”


“6·25 때 언니가 의용군에 끌려간 약혼자를 따라 북에 갔다.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 있다니….”
남쪽의 가족 홍명자(65)씨는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언니 석순(80)씨를 껴안고는 눈물을 쏟았다. 홍씨는 “부모님이 말렸는데 따라가서 엄마가 늘 마음 아파했다. 나중에 무당들에게 물어보니 다 죽었다고 해서 언니와 약혼자의 영혼 결혼까지 시켰다”고 말했다. 언니 석순씨는 보청기를 끼고도 잘 알아듣지 못했으나, 고모 홍장한(87)씨 손을 놓지 못하며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이 23일 금강산에서 열렸다. 1차 상봉과는 반대로 북쪽 이산가족이 남쪽 가족을 찾은 이번 상봉에서는 북쪽 신청자 88명과 남쪽 가족 357명이 만났다. 이들은 이날 단체 상봉과 만찬을 함께하며 지난 60여년 동안 꽁꽁 묶어놨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이번 상봉에 참가한 북쪽 신청자 가운데는 6·25 때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연락이 끊긴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의용군’은 6·25 전쟁 당시 북한 조선인민군이 민간인을 강제로 징집한 군대를 말한다. 남쪽의 신수석(79)씨는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북쪽의 오빠 신덕균(86)씨를 만나자 “왜 여태 있다가 이제사 연락을 했느냐”며 눈물을 훔쳤다. 오빠 신씨는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은 사진을 보여주며 “일하면서 공로를 세워 받은 상”이라고 자랑했다.


북쪽의 동생 림선영(83)씨를 만난 남쪽의 형 금영(86)씨도 “6·25 때 서울 신내동에 살았는데 동생이 당시 18살이었고, 아버지 대신 의용군에 끌려갔다”며 “죽은 줄 알고 제사까지 지냈는데 만나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고 감격했다. 북쪽의 오빠 류근철(81)씨를 만난 정희(79)씨는 “오빠가 의용군 끌려갔는데 소식이 없으니 어머니가 무당한테 점도 봤다. 결국 찾는 걸 포기하고 사망 신고를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연락이 왔다”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앞서 지난 1차 상봉 때는 북쪽의 조선인민군으로 참가했다가 포로가 돼 남쪽에 남은 이들이 북쪽의 가족과 재회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친북 신문 <조선신보>는 북한에 있는 아들, 며느리와 상봉한 남한 가족 조기덕(92)씨와 북한의 이복동생과 손자를 만난 남한 가족 백관수(90)씨의 사연을 22일 소개했다. 원래 북쪽에서 월남자나 6·25 때 반공 포로의 가족들은 ‘배신자 가족’으로 낙인찍혀 차별을 받는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전쟁 당시 전사자로 처리돼 그 가족들이 유공자 가족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쪽 가족들은 1차 상봉 때와 마찬가지로 전날 강원도 속초 한화콘도에 모여 이날 아침 8시20분께 금강산으로 향했다. 낮 1시께 도착한 뒤 오후 3시 ‘단체 상봉’으로 60여년 만에 북쪽 가족과 눈물의 재회를 했고, 오후 7시에는 만찬을 함께했다. 이번 2차 상봉도 25일까지 2박3일 동안 진행된다.

< 금강산/공동취재단, 박병수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