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수도 워싱턴에 일단의 한국 국회의원들이 방문했다. 지난주에만 3개 팀, 17명에 이르렀다. 이들 중 일부는 워싱턴 인근에 있는 버지니아주의 재미동포들을 찾았다. 고국의 의원들이 동포들을 찾아 담소를 나누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동포들에게 고국의 소식을 직접 전하고 또 이들의 타향살이의 고충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런데 버지니아 지역 동포들로부터 다른 얘기를 듣게 됐다. 의원들이 동포간담회를 여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한다. 한 한인회 단체장은 “이번에 의원들이 앞다퉈 한인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한 것으로 안다”며 “아마도 버지니아주 한인들의 ‘동해 병기’ 운동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동포들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배우는 것에 분노해 주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폈고 결국 주의회 통과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현재 주지사의 서명만 남겨놓은 상태다.
 
이 지역 동포 사회에선 좋지 않은 말들도 들린다. 어느 의원이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등 ‘동해 병기’ 운동을 이용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더 심한 요구가 있었다는 말도 있으나 사실 확인은 쉽지 않았다. 이런 내용이 지역 동포 언론에 실리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13일 열린 동포 간담회엔 애초 10여명의 의원이 참석하겠다고 했다가 참석 의원이 5명으로 줄어들었다.
미국에선 요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인식을 제고하고 교과서에 동해를 병기하자는 재미동포들의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과도 차근차근 쌓여가고 있다.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과 미국 정부가 이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위안부 법안이 연방 하원을 통과했다. 또 동해 병기 법안은 한 지역 의회에서 통과한 것이긴 하지만 그 상징성은 매우 크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성과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동포들은 이 문제들에 철저하게 보편적 인권과 교육 차원에서 접근해왔다. 이를 한-일 간의 외교 이슈로 접근하면 미국 정치권이 끼어드는 걸 기피하기 때문이다. 두 동맹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탓이다. 위안부 결의안과 법안을 주도한 마이크 혼다 의원이 “이 문제는 한국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권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동해 병기 문제에서도 동포들은 버지니아 학생들이 앞으로 한국과 비즈니스를 할 때 한-일 간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접근했다.
한국 정치인들이 동포들의 애국적 행동들에 노고를 치하하는 것은 장려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돌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동해 병기 운동에선 이미 주미 일본대사관 쪽의 강력한 로비로 버지니아 주지사가 애초 이 법안을 지지했다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쪽이 한-일 간의 외교 이슈로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치인들의 돌출적 행동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위안부 문제와 동해 병기 운동을 주도하는 동포 단체들은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상근자는 불과 2~3명밖에 안 되고, 주로 동포들의 소액 기부로 활동비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려고 힘쓰기보다는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을 해주고, 이들의 고충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무엇보다 요구된다.
< 박현 - 한겨레신문 워싱턴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