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한 마리 얼마나
다른 모습 가지고 있는지
길다란 코, 부채같은 귀,
줄같은 꼬리, 기둥같은 다리,
당신 손으로 더듬어 만져본
코끼리가 코끼리라고
가슴을 닫고 눈을 감은
자신과 옆사람에게 외친다.
코끼리는 코가 손이고
기둥같은 다리로 걸어다녀도
코끼리의 눈물을 보았는가
배가 고파 울지만 아파도 운다.
‘장님과 코끼리’, 옛날 동화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장님들이 서로 다른 부분의 코끼리를 만져보고, 코끼리가 어떻다고 자기 나름대로 만져 본 부분을 이야기한다.
다리를 만져 본 사람은 코끼리는 기둥 같다고, 꼬리를 만져본 사람은 줄 같다고, 몸통을 만져본 사람은…,
우리는 두 눈을 뜨고있지만, 사물을 판단할 때, 자기가 본 부분만, 또는 알고 있는 사실만 가지고서 전체를 말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생각해본다. 극히 일부분, 그것도 직접 만져본 부분이 아니라 누가 말한, 다른 사람이 발표한, 한 부분을 가지고 마치 그것이 전체인 양, 단정을 내리고 말을 한다.
특히 해외에서 살면서 국내 사건을 두고 말할 때, 누가 발표한 몇 마디 말로, 신문 기사나 인터넷 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근거로 모든 것을 단정한다. 누가 말을 하면 그 말의 앞과 뒤를 분석해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뽑아낸 한 두 마디 말로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전체를 다 듣고서도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인데, 우리는 너무 쉽고 빠르게 생각없이 판단을 내리고 단정을 짓는다. 나 자신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굳이 일부분이라도 확인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모르는 사실을 알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지고 있는 좁은 상식에 의한 편견으로 대부분의 일에 미리 단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 단정을 변호하기 위해, 비슷한 사실들을 끌어 모으는 식이다.
모든 것은 알고 있는 것만큼 보인다는데, 그렇다면 사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좁은 셈이다. 특히 이곳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보는 시야가 상당히 좁아졌음을 느낀다. 어딘지 모르게 제한된 생활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근시안이 되었다고 할까? 자신의 하루 생활권에 벗어난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이민자여서 그런지 만나 대화하는 사람의 범위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정치나 사회적인 현상의 실체가 눈앞에 보이는 코끼리를 보듯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특히 정치에서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못할 말 없는 것이 정치인의 말이다. 그들은 대중들의 표로 자리를 얻기에, 어떤 술수를 써서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편이 되게 하여, 선거에 있어 자신을 찍도록 만들어야한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정적을 깎아내리기 위해 온갖 음해를 할 것이다. 정치란 권모술수라는 것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말해왔다. 어느 정치인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만들어낸 신화가 아닌가 의심해보아야 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고도로 계산된 것일 수밖에 없다.
사실 떠나와 살면서 모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일이 관심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일에 관심을 가질 때,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어느 일부분을 놓고, 그것이 전체인양 생각하고 말하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말아야겠다.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위안부·동해병기 운동과 한국 정치인 (0) | 2014.03.31 |
---|---|
[사설] ‘천안함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할 때 (0) | 2014.03.31 |
[사설] 성범죄자 감싸는 군의 후진적 성 인식 (0) | 2014.03.31 |
[사설] ‘반칙 종편’ 퇴출커녕 면죄부 내준 방통위 (0) | 2014.03.23 |
[사설] 한-미-일 정상회담과 한국 외교 (0) | 2014.03.23 |
[칼럼] 대안은 ‘브로큰 잉글리시’ (0) | 2014.03.23 |
[한마당] ‘건국’논란, 근거와 논리 대라 (0) | 2014.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