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에 대한 군의 인식과 대응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부하 여성장교를 성추행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혐의를 받는 노아무개 소령 사건에서 군 관계자들이 보인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가해자 편에 서서 성범죄자를 감싸려 드는 태도가 문제다. 군 검찰과 군 법원을 관할하는 육군 법무실장은 24일 ‘노 소령이 피해 여성장교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보도는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노 소령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는 비판에 대해 해명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피해 여성장교의 유서나 일기를 봐도 성관계 요구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 여성장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석 달 전인 2013년 7월12일의 업무용 컴퓨터 메모와 일기를 보면, 노 소령이 ‘성관계를 하고 싶다’는 암시를 반복적으로 전달하고 피해자가 그런 말에 치욕감을 느낀 모습이 확인된다. 피해 여성장교의 친구도 재판에서 “노 소령이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피해자의 하소연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군 당국은 엄연한 증거도 외면한 채 가해자 편만 든 것이다. 성범죄는 고통을 받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 그런 원칙과는 정반대였으니 군 당국 스스로 성범죄를 가볍게 여긴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군 간부가 가해자에 대한 선처를 유족들에게 종용하기도 했다. 노 소령의 소속 부대 부사단장은 지난해 10월 피해 여성장교의 유족들에게 ‘여성장교의 영혼이 노 소령을 풀어주라고 했다’는 황당한 말을 했다. 고소를 취하하라는 뜻은 아니었다지만, 성범죄자를 용서해달라는 것 외에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군의 조직문화가 성추행이나 성폭력에 온정적인 탓에 이런 태도가 빚어졌다면 더 큰 문제다. 성폭력에 대한 군의 인권 감수성이 이 정도라면 군내 성범죄를 막기는 어렵다. 실제로 노 소령은 피해 여성장교 말고도 여러 여군 장교와 부사관들에게 반복적으로 성적 모욕을 가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무 제지나 죄의식 없이 그런 행동을 계속하다 보니 이번과 같은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겠다.
군은 이번 일을 계기로 성범죄에 대한 안이한 인식을 일신해야 한다. 시늉뿐인 성범죄 대책도 정비해야 한다. 군은 문제를 억지로 덮고 축소하려 들 게 아니라, 고장 난 인식과 대책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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