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서열로 치자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석달 전쯤 신문을 보다 속에서 열불이 났다고 한다. 현대제철에서 사고로 1년 반 사이 노동자 13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를 본 것이다. 마침 현대자동차 임원이 안부전화를 걸어왔길래, 마구 퍼부어댔다.
“아니, 현대제철은 지금 에밀레종을 만드는 겁니까? 종소리를 내려고 아이를 끓는 쇳물에 넣었다고 하던데, 현대자동차에 쓸 고급 강판을 만들려고 근로자를 용광로 안에서 죽게 만드는 거예요? 정몽구 회장한테 꼭 좀 전해주세요. 한번만 더 사고가 나면 구속될 수도 있다고요.”
눈 하나 깜짝 않던 정 회장이 급히 서울 양재동 본사 옥상에서 헬기를 탔다. 당진제철소에 도착한 건 20분 만이었다. “사고가 재발하면 엄중문책하겠다”고 불호령을 내렸다. 안전 관련 예산도 5000억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뒤 ‘죽음의 공장’이 안전지대로 바뀌었다. 누구 하나 무릎 까졌다는 소식조차 없다. “모든 임원들이 조를 짜서 휴일, 야간 가리지 않고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나서니 다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거죠.” 현대제철 관계자가 밝힌 이유다. 돈 많은 재벌에게는 감옥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형제라서인가. 요즘은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이 난리다. 불에 타고 철판에 깔리고 바다에 떨어져 8명이 숨졌다. 두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 형의 회사보다 훨씬 심각하다. 시기도 민감하다. 세월호 침몰로 배의 안전성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여객선은 안 만든다지만 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의 조선회사다. 비정규직 선원이 비극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데, 현대중공업의 비정규직 비율은 50%를 훌쩍 넘는다. 군산공장의 경우 직원 3700여명 가운데 499명만 정규직이다.
그런데도 정 의원은 둔하기 그지없다. 토론회에 나와 태연하게 “서울 시정의 최우선 순위를 시민의 안전에 두겠다”고 한다. 상대방이 기업인의 탐욕을 문제 삼자 “전체 기업인을 두들겨 잡는 것은 실망”이라고 역공을 펼치기도 했다. 현대 가문만 탓할 건 아니다. 삼성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상영될 때만 해도 보상을 해줄 것 같더니, 다시 고개가 뻣뻣해진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사고로 숨지는 노동자는 2000명가량이다. 부동의 세계 1위다. 세월호로 따지면 매년 7대 정도가 침몰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기업인들은 꿈쩍도 않는다. 안전에 돈을 들이느니 차라리 처벌받는 게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어도 구속되는 법은 없다. 대부분 몇백만원 정도의 벌금으로 끝난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기업인이 되면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몽구 회장이 화들짝 놀라 ‘생돈’ 5000억원을 내놓은 건 권력자가 잔뜩 겁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다. 법으로 만들고 제도화해야 한다. 당장 산업안전보건법부터 강화할 일이다. 안전기준을 어긴 기업인은 구속하고, 기업이 휘청거릴 정도로 손해배상금을 물려야 한다. 그러지 않았기에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은 슬그머니 선실을 증축하고 화물을 과적하고 평형수를 빼버렸다. 싸구려 선장을 고용한 건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깊은 물속에 잠겨버렸다.
세월호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에밀레종이다. 우리는 그 종을 심장에 달고 살아야 한다. 반칙과 편법을 저지르고 싶을 때마다, ‘에밀레 에밀레’(엄마 엄마)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절규를 들어야 한다. 그게 아이들에게 지은 죄를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이라도 갚는 길이다. ※써야 하기에 썼지만, 다 쓸데없는 짓이다.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미안하고 미안할 뿐이다.
< 김의겸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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