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산 생명 300여명을 가둔 채 바다로 잠긴 충격 이후 3주가 지났다. 밤낮으로 홍수를 이루는 참사 이후의 소식들은 마치 진흙탕에서 실타래가 풀려나오듯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마다 국내외에 너무 큰 수치와 절망과 슬픔을 안겨주고 있다. “그래도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는데, 설마 이 정도밖에 안되었던가….”
소중한 인명을 속수무책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너무도 무능하고, 비인간적이고, 무책임한 모습들, 뿌리깊은 부패와 부정의 먹이사슬에 얽힌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부끄러운 자화상을 똑똑히 보게 된 참담함이다.
온통 불신과 적의로 가득 차 곳곳에서 분노의 함성이 터지면서 당연히 참사를 부른 장본인들과 사후 처리 책임자들이 몰매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선장과 선원들과 선사, 해경과 언딘이라는 구난업체, 정부 관료들과 대통령 등 줄줄이 질타와 한풀이의 제단에 올라있다. 참사와 구난의 직접 책임이 있으니 어차피 과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배는 선장의 책임하에 운항하고, 해난구조는 해경에게 맡겨진 책무이며,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정부는 대통령이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선장을 잘 못 만나면 승객은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원래 지도자가 어리석고 무책임하면 구성원들이 고생을 하고 자칫 목숨도 위태로워지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임금과 지도자의 무능으로 백성이 고초를 겪은 사례는 우리 역사에도 수없이 기록돼 있다. 죄없는 민초들은 시달리고 죽어가며 원망조차 제대로 못했다. 근대에만 해도 나라를 빼앗기고 학살당한 동학 농민들의 원혼, 일제 식민치하의 핍박과 설움, 6.25 당시 이승만의 철면피한 행보로 죽어간 양민들, 박정희의 철권통치로 스러져간 민주인사들, 전두환의 5.18 만행 등… 그런 기억들이 되살아 나면서 선량한 국민들이 공황상태에 빠져 울분들을 쏟아내는 것이다.
그러면, 왕조시대도 아닌 이 시점에 일어난 세월호 참극도 과연 그들 지도자의 책임이요 직접 당사자들만의 ‘죄악’으로 가름하고 말 일인가. 참사의 뒤안길 연원을 파헤칠 때마다, 너무도 뿌리깊고 폭넓은 총제적 부실의 복합체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모두들 이중 트라우마의 늪에서 가슴을 치게 된다. 사실은 알고도 덮어두었던 화농이 터진 것이요, 오래 전부터 잉태된 부실과 부정의 불량산품이라는 사실을 통절히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아 세월호는 바로 ‘한국호’ 그 자체였구나, 우리 모두가 껍질만 거대한 불량선박에 타고서 위험한 항해를 즐기지 않았던가 하는 자책의 업습이다. 안전대비가 허술해도 그러려니, 과적을 해도 괜찮겠지, 물 새는 것을 모른 체 하고, 악천후에 출항을 해도 제지하거나 하선하지도, 선장을 나무라지도 않고서는 마침내 죽음의 바다에 이르러 다함께 침몰하니 아우성대고 있는 것이구나…, 민주화 되고 풍요로워졌다는 자만에 빠져 귀중한 표를 바람따라 연줄따라 소홀히 행사해 왔다. 때묻은 인물 걸어온 길이 부도덕해도 찍어주고는 뽑은 뒤 감시에도 태만했다. 그들이 세금을 탕진하든 속이고 분탕질을 하든 모른 체, 권력에 취해 거짓 선전과 편가르기와 차별과 갈등을 부추겨도 에라 귀찮다, 나만 편하고 나 혼자 잘살며 내 자식 잘 되면 그만하지 오불관언, 아니 나라고 질소냐, 더불어 편승하며 살아왔다….
이민 땅에서 사는 우리들은 어떤가. 세월호를 보며 한탄만 하면 그만인, ‘한국호’에는 타고있지 않은 국외자들로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이민 땅에서 사는 우리들은 어떤가. 세월호를 보며 한탄만 하면 그만인, ‘한국호’에는 타고있지 않은 국외자들로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과거 군사독재 시절엔 모국의 잘못을 깨우치며 민주화 운동을 적극 뒷받침한 열정과 애국혼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국의 폐습을 나무라고 호통치기는커녕 오히려 흉내내고 따라하며 무조건적인 부화뇌동에 급급하지 않는가. 모국의 불의한 모습들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우리들 아닌가. 근래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등 불법적 행태에 대한 비판을 적대시 하고 종북몰이에 영합하는 모습들에서 선진국에 사는 민주시민답지 않은 상식의 침몰과 변질된 애국의 민낯을 본다. 재외국민을 길들이려는 예산지원에 몸달아하며 몇푼 더, 연줄대기에 바쁘고 꼭두각시 노릇 하기에 익숙한 모습들은 세월호로 입증된 민-관 유착고리의 그 것과 다를 바 없다. 피땀 어린 국민의 세금이라고 생각한다면 모국에서 생활고로 자살하는 숱한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충정은 배부른 망상인가. 빛과 소금이라는 본질을 잊은 채 물량주의에 현혹되고 권력을 맴돌며 다툼과 질시를 서슴지 않는 종교계는 모국의 현실과 무엇이 다른가.
엄청난 참사에서 이제 지도자는 물론 온 국민이 회개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하듯이, 해외의 디아스포라 한인들도 모국의 비정상과 불의를 방관하고 동조하고, 때론 감싼 책임을 통감하며 참회해야 한다. 조국과 아픔을 함께하며 재도약을 소망한다면, 친정을 거들듯이 조국이 잘못되고 혼탁할 때 매섭게 호통치고 나무라는 것이 ‘참 애국’의 발로임을 명심하고 실천해야 한다.
< 김종천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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