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국가정보원이 저지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누설 사건에 대해 검찰이 9일 대부분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그러면서 검찰은 대선개입 댓글 현장을 잡아내려 국정원 직원의 집 앞에서 밤을 새운 야당 의원들을 ‘감금죄’로 약식기소했다. 정치개입과 비밀누설이 분명한 사건에는 ‘처벌 불가’라고 눈을 감으면서, 문을 걸어잠그고 증거인멸을 한 피의자는 되레 ‘피해자’로 둔갑시킨 꼴이다. 그것도 지방선거 직후, 핵심 혐의자의 당 대표 출마선언 다음날 면죄부를 줬다. 이러니 정치검찰이란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다.
 
대화록 논란은 애초부터 배경과 의도가 뚜렷한 사건이었다.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선거용 공세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댓글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지난해 6월에는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갑자기 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내세워 ‘노 전 대통령이 NLL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다시 논란을 제기했다. 국면전환 시도라는 의심은 당연했다.
 
‘억지 정치공세’라는 점은 여당 스스로 인정한 터다. NLL 공세를 이끌었던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노 전 대통령은 포기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뒤늦게 시인했다. 그런데도 당시 새누리당은 ‘영토 포기’ 발언이 있었다고 집요하게 공격했고, 국정원은 성명까지 발표하는 일탈을 저질렀다. 이들의 발췌본이 원본을 왜곡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불법 정치공작’의 추한 모습이다. 이런 행위는 엄연한 비밀누설이기도 하다. 검찰은 정문헌 의원이 청와대 통일비서관 때 알게 된 대화록 내용을 김무성 의원 등에게 누설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검찰은 사안이 경미하다며 정 의원만 약식기소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다른 비밀누설 사건에서 구속과 실형 구형을 불사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다.
 
‘처벌 불가’ 이유도 하나같이 헛웃음을 자아낸다. 검찰은 정 의원과 달리 김 의원 등은 관련 업무 담당자가 아니므로 비밀누설 주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이 대선 유세 때 대화록 원본과 토씨까지 그대로인 쪽지를 읽은 경위에 대해선 ‘언론보도로 알았을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대화록 발췌본을 보여주고 회견을 통해 내용을 흘린 남재준 전 국정원장과 여당 의원의 행동은 공개요건을 엄격히 규정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으로는 분명한 위법이지만, 검찰은 공공기록물법을 적용해 적법하다고 했다. 정상 간의 비밀대화 내용도 국정원이 작성하면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는 논리다. 검찰은 국정원의 노 전 대통령 비난 성명도 “단순 의견표명”이라 변호했다. 국가기밀을 빼내 선거나 정치에 활용해도 온갖 억지 논리를 동원해 대놓고 봐준 꼴이다. 정권을 위해서는 국민 신뢰 따윈 아랑곳 않겠다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