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휴대폰 중독

● 교회소식 2014. 9. 2. 15:45 Posted by SisaHan
제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화장실 갈 때 휴대폰을 가져가는 버릇입니다. 용변을 보는 그 짧은 시간에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누군가의, 그 무엇의 이야기를 훔쳐보고 있습니다.
배변의 즐거움을 포기한 채 납작한 네모상자의 매끄러운 표면 위로 제 엄지 손가락은 쉴새없이 비행을 합니다. 수많은 사진들과 의미없는 이야기들, 그리고 가치 하락한 정보들이 순식간에 눈앞에 스쳐갑니다. 남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기분이며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알리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그저 아무런 뜻이나 의미도 없이 휴대폰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합니다. 중독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실 것입니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새로운 신드롬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휴대폰을 곁에서 떼어 놓지 못할까요? 그 이유를 살펴 볼 때, 먼저는 휴대폰의 가치를 꼽을 수 있습니다.
휴대폰이 가지고 있는 집약적 기능들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외로움병 떄문입니다. 도심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이 외로움은 우리의 뼛속까지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상에서 벌어지는 허상의 공동체에 그토록 집착을 하고 있나 봅니다. 
하지만 마음의 이야기 꺼내 놓을 수 없고 껍데기의 일상이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는 그 신기루 같은 군중들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외로움을 느낍니다.
 
“I am a deeply superficial person” 
21C 예술가 엔디 홀이 생각없이 내던진 유명한 말입니다. ‘표상적 깊이’라…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저는 Andy 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고상한 척하는 모든 가벼운 존재들의 허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하는 표상적 깊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깊이인 것 같습니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표상이라는 것에는 절대로 깊음의 세계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매끄러운 휴대폰의 표면처럼 말입니다. 
휴대폰이 우리에게 선사해 주는 많은 것들, 예를 들자면 사이버 공간의 정보와 감정, 그리고 의미없는 연대들은 표상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작 뿌리를 내려 존재의 깊음과 깊음이 만날 수 있는 곳은 삶이라는 생명의 공간입니다. 그 곳에서 깊은 숨을 고르고 눈빛을 교환하며 삶의 이야기의 씨를 뿌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우리 존재의 깊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군중 속의 외로움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는 깊은 고독 속에 잠길 수 있게 되는 것 입니다.

< 최봉규 목사 - 드림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