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들 마음에 심은 무궁화

● 교회소식 2014. 8. 25. 19:36 Posted by SisaHan

[선교 후기 & 간증] 동부연안 원주민사역을 마치고… 문대석 집사

지난 일주일 동안 노바스코샤 원주민 보호구역들에서 토론토 큰빛교회 선교팀과 원주민들과 하나가 되어 한국의 꽃 무궁화를 함께 열심히 심었다. 뜻하지 않았던 많은 무궁화나무 기증은 원주민 마을에 처음있는 일로 그들은 기쁨으로 한인선교팀을 맞이하며 환영했다.
매년 지속되는 선교를 통하여 이제는 선교팀을 초청하는 가정도 많이 늘어나고 복음전도 사역과 문화교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현지 천주교 신부님도, 추장도, 적극적인 협조를 하면서 오랫동안 침체된 원주민마을에 동질감을 느끼는 한인들이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기를 기대하였다. 인디언 부룩은 일명 원주민어로 ‘감자가 많이나는곳’ 을 의미하는 슈바나카디로 불리며 인구 2500명이 강제로 이주당하여 살고있는 원주민 보호구역이고 동부에서 유일하게 원주민 문화를 말살하려던 원주민 기숙사 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 추장 Rufus 씨는 지역 신문사를 통하여 선교활동과 무궁화 보급 등에 관한 인터뷰기사도 실어주었다. 추장의 삼촌은 한국전쟁 중 전사하여 지금은 부산 UN군 묘지에 안장되어 있는데, 멀리 토론토에서 와서 이렇게 기념해주는 것을 고마워하며 선교팀 편의를 위하여 자기의 집을 숙소로 제공해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또한 케이프 브레톤섬에 있는 에스카소니 (‘숲이 우거진곳’ 이라는 말)는 인구 4000명으로 동부에서 가장 큰 보호구역이며 산속 깊은 외진 곳에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강제로 이주시킨 지역이나 대부분이 실업자여서 여름이면 블루베리 따는일을 위하여 마을을 잠시 떠나기도한다. 원주민 기숙사 생존자와 한국전쟁 유일한 생존 참전용사가 같이 참석하여 무궁화 나무를 심으며 친교를 나누었다. 원주민 기숙사학교 생존자들은 그들의 아픈 기억들을 나누기를 꺼려하였지만 한국전에서 지뢰파편으로 부상당해 일본에서 4개월 치료받고 캐나다로 돌아온 86세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브라함 듀셋 씨 부부는 한국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며 한인 학생들의 마사지도 받고, 옆에 있던 정윤희 씨를 수양 딸로 입양하고 온 선교팀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였다.
동부 원주민들은 여름이면 자기들 나름대로 올림픽과 같은 섬머 게임을 돌아가면서 개최한다. 한인선교팀이 섬머게임 동안에 선교와 봉사활동도 하였는데 2000명 정도가 모이는 야외 공연장 무대에 초대받아 복음송과 워쉽댄스, 원주민어로 Amazing Grace를 불러 큰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올해 원주민 게임이 열리는 포트레텍 보호구역에서도 초청을 받았고 선교팀들을 위한 민박 제의도 받기는 하였지만 금년에는 선교일정상 그리고 인원 부족으로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원주민들이 잘 활용하지 않는 방송시설을 이용하여 선교방송을 내보낼 수 있도록 한인선교팀에 배려를 해주어 영어로 된 방송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또 한인 2세들과 영어권, 그리고 도시지역 인터넷 사용자들의 원주민 선교참여가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원주민 마을에는 성인 중 약 70%는 당뇨를 앓고 있으며 고혈압과 심장병 등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평균 수명이 55세 정도로 건강에 큰 문제가 있지만, 제대로된 식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있다. 이들을 위한 건겅식 메뉴를 이용한 유료식당 운영 아이디어는 추장과 밴드오피스, 헬스센터, 그리고 신부님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았고, 식당장소와 선교센터 숙소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 사용제의를 받기도 하였다. 이를 통하여 원주민 청년들에게 직업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고 노약자와 많은 장애인을 위한 무료 음식배달 등으로 가정방문 사역을 하며, 주위 공터에 밭을 만들어 자체 농사도 할 수 있는 경제적으로 자립된 평신도 실버선교 사역의 기회는 앞으로 한인 원주민 선교가 지향해야 할 실용적인 원주민 선교 모델이라 하겠다.
 
동부 원주민 마을에서의 원주민 선교는 그동안 꾸준한 관계중심 선교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지난 500여년동안 백인들의 착취와 상실의 고통속에서 신음하며 그들이 전한 기독교에 반감을 가지고, 살아남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원주민들에게 기독교 우월주의의 선교나, 얄팍한 물질 제공을 통한 구제식 선교, 그리고 자기 중심적 선교가 아닌, 친구로써 조용히 다가가 고통을 함께하며 말이 아닌 실천으로 한 알의 말알처럼 사랑을 베풀 때 그들은 한인 선교팀이 백인들과는 다른 진실성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선교비 마련을 위하여 지렁이 잡으러 나선 학생, 선교에 참여하려 가게 문을 닫고 온 이민 초년생, 자신은 선교를 잘 모르지만 멀리서 온 선교팀을 지원하기 위하여 휴가를 신청하고 주방을 도맡은 일식 요리사, 2종류의 암을 지니고 선교에 열중하는 이…,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는 원주민들의 눈에서 아직도 마르지 않은 눈물을 본다.
 
이번에 동부지역에 많은 무궁화를 심었다. 그들은 무궁화 나무가 한국의 국화라는 사실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자기의 친구들이 왕복 4000 km의 길을 운전하여 나무를 배달하고 처음으로 자신들을 위하여, 꽃이 없어 메마른 땅에 선교팀이 오는 여름철에 활짝 필 무궁화를 심어준다 생각하니 무궁화가 사랑스러워지고 그 꽃이 피어나는 계절에는 여지없이 자기의 친구들이 다시 오리라는 약속처럼 느껴진 것이다.
앞으로 동부를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원주민 마을에 피어나는 무궁화를 보면서 약 125년전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한 첫 번째 교회 소래교회를 세우다 34세에 한국땅에 묻힌 윌리암 존 멕켄지의 삶을 추모해보자. 그가 캐나다 원주민 선교를 하던 중 한국선교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우리의 한인교회들이 이제는 그의 고향에서 선교의 발걸음을 내디딘다.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던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구절을 되새기면서….
 
< 문대석 집사: 열린 한마음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