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퍼거슨, 볼티모어. 지난해 7월 이후 미국에서 흑인 소요의 진원지가 된 도시다. 양상도 비슷하다. 흑인 젊은이가 경찰에 의해 숨진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소요·폭동으로 비화하고 전국 주요 도시로 확산된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미국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준다.


2주일가량 이어진 볼티모어 사태는 1일 주 검찰의 신속한 행동으로 전기를 맞았다. 관련 경찰관 6명이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물론 불씨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법적·사회경제적 측면에서 흑인들의 불만이 그대로다. 앞서 뉴욕과 퍼거슨 사건과 관련된 경찰관들은 대배심의 지루한 공방 끝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소요의 상처도 작지 않다. 가장 격렬했던 4월27일 시위는 폭동으로 돌변해 차량 140여대와 건물 15채가 불에 탔다. 이번 사태에서 약탈 등의 피해를 당한 한인 업소만 해도 100곳이 넘는다.
소요가 쉽게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은 주요 도시 흑인들의 사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볼티모어에서는 흑인과 백인 거주지가 엄격하게 분리돼 있다. 숨진 흑인 청년의 거주지인 샌드타운에서는 노동가능연령(15~64살)의 실업률이 51.8%나 된다. 미국에서는 볼티모어보다 인종간 거주지 분리 현상이 심각한 도시가 시카고, 애틀랜타 등 여러 곳 있다. 경찰의 업무 중 총격에 의한 사망 사건도 지난 10년 동안 수천건에 이르지만 기소된 경찰은 수십명에 그친다. 피해자의 절대다수는 흑인이다.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기간에 흑인 소요가 빈발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인종문제가 더 심각해졌을 수도 있고, 오바마 정부에 대한 흑인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흑인 소요를 대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일관돼 있지 않다. 인종문제에는 미국의 정치·사회·경제적 모순이 집약돼 있다. 미국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다인종 국가로서 정체성과 통합 역량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다문화·다인종과 관련된 갈등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서 미국보다 훨씬 경험이 적다. 흑인 소요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