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이 보수정권·자본과 유착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언론학자 로버트 맥체스니 교수는 “언론의 힘으로 영국 정치에서 한때 ‘상왕’ 역할을 한 루퍼트 머독이 미국에서는 토크쇼 방송 <폭스뉴스>를 통해 언론·권력·돈(자본)의 3자 통합망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어떤가? 미디어 전문 매체인 <미디어오늘>의 지난주(4월22~28일) 1면 기사 ‘정권위기, 권언복합체 가동했다’가 눈길을 끈다. 보수언론들이 ‘이완구는 치고 박근혜는 구하는’ 물타기 왜곡보도로 정국을 조종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고 성완종 회장의 선거자금 리스트 보도와 관련해 5대 일간지 기사를 분석한 논평이다. <기자협회보>와 민주언론시민연대(민언련)의 신문모니터링 보고도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야당후보 폄훼 댓글’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 개입 판결이 나온 상태에서 불법 선거자금 제공 사실까지 확인된다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크게 흔들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강조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사설 ‘성완종 리스트 수사, 대선자금 의혹도 파헤쳐야’(4월13일자)에서 “검찰이 주춤거리면 권력의 시녀란 딱지를 떼지 못할 것“이라 지적했다. 반면 처음부터 국정원의 선거운동 댓글을 문제삼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을 엄호해온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핵심 문제보다 수사 상황과 수사 대상 쪽에 보도를 집중했다. 이들 두 신문은 거액의 선거자금을 받은 권력 핵심자들에 대한 수사촉구를 하기보다 엉뚱하게 야당의 정치자금도 조사해야 한다는 ‘물귀신 작전’을 벌이는가 하면, 성 회장의 2차 특별사면 문제를 제기해서 수사를 질질 끌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의 보도 태도는 박근혜 정권을 엄호해 주기 위해 ‘박근혜식 유체이탈 화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문제의 핵심에서 관심을 돌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인터넷 매체인 <허핑턴 포스트> 한국판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대통령의 담화를 비판하는 한 블로거의 글을 실었다. 이 글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선원들을 호되게 꾸짖은 담화를 예로 들며 “세월호 선장과 마찬가지로 최종 책임을 져야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순전히 자기 편의에 따라서 ‘피해자’로, ‘심판자’로, 또는 ‘관찰자’로 마구 입장을 바꿔가며 남을 비판했다. 항상 박 대통령은 자신이 스스로 고개를 숙여야 할 때 아랫것들을 꾸짖고 자기 자신이 먼저 나서야 할 때 남들 눈치를 본다. 이 나라에서 공적 직무의 유일무이한 상징인 대통령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 이런 식으로 전체 시스템에 유령처럼 빌붙어서 혼돈을 야기시키는 게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월17일치 1면에 “여야 인사 14명의 성완종 장부가 나왔다”는 내용의 ‘단독’ 기사를 보도했다. 여당뿐 아니라 야당 인사도 들어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물귀신 작전의 의도가 풍기는 ‘가공보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진실이 아니면 보도해서는 안 되는 언론윤리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실체가 없는 유체이탈식 보도였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유체이탈 화법도, 유체이탈 보도도 모두 추방해야 한다.
< 장행훈 - 언론광장 공동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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