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2일부터 6월19일까지 두 달 가까운 기간을 한국에서 안식월로 보내고 돌아왔다. 내가 한국에서 보낸 두 달은 대조적인 하나의 한 달과 또 다른 한 달로 구성되었다. 처음 한 달 나는 전라도 순천에 있는 깊은 산속의 영성센터에서 보냈다. 텔레비전, 신문, 전화, 인터넷도 없이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완전히 단절된 시간이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느린 한 달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하고 산책하고 밥 먹고 이 세 가지 행위만을 반복하다가 저녁이면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처음 일주일은 갑자기 늦추어진 삶의 속도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마치 시속 100키로 달리다가 갑자기 시속 10키로 달리는 그런 답답함이 하루하루 이어졌다. 밤마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뿌리 깊은 그리움에 몸부림쳤다.
그런데 한 주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의 몸과 마음이 느린 삶의 속도에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행위 하나 하나가 그대로 행위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누려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 할 때에는 양치질만 했다. 기도할 때에는 기도만 했고, 밥을 먹을 때에는 밥만 맛있게 먹었다. 산속을 걸을 때에는 나무와 작은 새들과 이름 모를 풀들에 집중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하는 동작, 지금 내 손에 잡혀있는 그 일에 더 깊이 몰두하면서 차츰 모든 행동이 그 행동 자체로 인식되고 음미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나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서 늘 필요했던 하나님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고 나의 소박한 지금 그리고 여기에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만 내게 다가오셨고, 나는 그 하나님께 머물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이 작고 고립되고 단순한 세계에 안거(安居)하기 시작하였다. 희망없이 안주(安住)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 발견된 희망 안에서 편안히 머물기 시작하였다.
또 다른 한 달은 세계에서 가장 삶의 속도가 빠른 서울에서 보냈다. 갑자기 빨라진 삶의 속도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한 달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거의 매일 사람들을 만났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지쳐만 갔고 늙어만 갔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항상 전만 못하여서 돌아왔다. 그래서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아파트 주변을 몇 바퀴 돌다가 들어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어느 순간 다 마모되어 사라질 것 같았다. 바로 그 때에 찾아온 메르스 사태, 자연스럽게 나의 행동반경을 좁혀 놓았고,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 느려진 삶의 속도에 오히려 감사했다. 이렇게 한 달을 서울서 보냈지만 나는 끝내 안거하지 못하고, 캐나다로 돌아와야만 했다.
대조적인 두 달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내가 새삼 느낀 것은 삶의 속도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삶의 방향을 잘 잡아도 삶의 속도를 적당히 조절하지 못하면 늘 쫓기는 삶을 살게 된다. 눌리는 삶을 살게 된다. 너무 빠른 삶의 속도는 기도를 잃어버리게 하고 성찰을 놓치게 만든다. 눌리는 삶이 아니라 누리는 삶으로, 쫓기는 삶이 아니라 부름받은 삶으로 나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한 템포 늦추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도도 하게 되고 기적도 보게 된다. 대체로 우리는 규정 속도보다 빨리 달리는 편이다. 세상에는 너무 느린 사람보다 너무 빠른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의도적으로 삶의 속도를 늦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놓쳐버린 행복, 잃어버린 삶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 고영민 목사 - 이글스필드 한인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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