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3대 왕 태종은 장남인 양녕대군이 왕세자로써의 법도를 지키지 않고 자유방탕하자 폐위의 칼을 빼든다. 조정 대신들은 지엄한 왕명에 눌려서, 또는 세자의 덕목을 분별하여 폐위청원에 동조한다. 그런데 그때 대담하게도 혼자서 강력 반대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이조판서 황희 였다. 그는 “국본을 쉽게 바꾸는 건 옳지 않다”고 양녕의 폐위와 충녕(세종)의 세자책봉에 강한 제동을 걸었다. 고집을 부리다 그는 파주로 유배되고 말았다. 태종은 극한 반론을 펴던 황희가 얼마나 신경이 거슬렸는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는 황희의 유배지가 도성과 너무 가깝다며 전라도 남원으로 더 멀리 쫓아버렸다.
황희가 자신의 세자책봉을 극구 반대해 유배당한 사실을 잘 알고있는 세종은 그러나 왕위에 오른 뒤 황희를 불러들인다. 그의 강직함과 능력을 높이 사 관직에 복직시킨 것이다. ‘왕위를 가로막은 괘씸한 원수놈’ 정도로 박대했을 법한데도, 세종의 지혜롭고 너그러운 안목과 포용은 놀라운 결실을 맺는다. 영의정으로 18년을 봉직한 황희 정승은 세종의 많은 치적과 태평성대를 뒷받침한 가장 유능-원만하고 청렴한 재상으로 빛을 발한다.
몽골의 영웅 칭기스칸은 적지에서 얻은 인재로 인해 세계 제패의 꿈을 이룬 지도자로 유명하다. 그가 죽을 때 “하늘이 우리 가문에 준 인물이니 그의 뜻에 따라 국정을 행하라”고 유언했다는 인물이 바로 야율초재(耶律楚材)라는 책사다. 그는 몽골에 정복당한 거란족 왕가 사람이었다. 칭기스칸은 정복지마다 피의 보복으로 초토화를 일삼아 죽일 대상이었지만, 뛰어난 인재로 소문난 그를 설득해 자기 신하로 만들었다. 야율초재는 ‘백성이 피눈물을 흘릴 때 같이 눈물 흘리고, 굶주릴 때 함께 굶을 수 있는지’를 칭기스칸에게 묻고 약속받은 뒤 충성을 맹세했다, 칭기스칸은 “힘으로는 천하를 차지할 수는 있으나 다스릴 수는 없다”는 그의 조언에 따라 정복지 몰살정책을 바꿔 세계제국을 이뤄갔고, 야율은 칭기스칸이 죽은 후까지 대를 이어 몽골천하를 뒷받침했다.
지난 역사에는 지도자들의 포용과 통합의 정치가 백성의 평안과 나라의 융성을 가져온 사례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영화와 권력 지키기에만 급급하고 충언과 충신을 적대시하며 간신배들의 감언이설을 즐긴 편협한 지도자들이 나라를 망친 사례 또한 많다.
근래 한국을 보면 지도자의 포용과 통합보다는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일삼는 것 같아 나라 장래가 걱정이다. 고위공직자를 임용함에 있어 반대세력을 철저히 배제하고, 강직한 충신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쫓아내기도 한다. 자파와 일부 지역의 인사들로만 고위직을 채워 편중이 지나칠 뿐더러, 온갖 비위와 부정부패의 전력을 지닌 자들을 밀어부쳐 청문회 낙마가 잇달은 것은 익히 보아온 터다.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위한 정책보다는 가진 자와 부자들을 위한 정책에 힘을 쏟아 빈부격차는 날로 커지며 계층간 갈등은 심화일로다. 야당을 대화상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고 국회를 거추장스러운 발목잡기 기관이나 법률 거수기 정도로 여기는 의회주의 부정적인 시각이 배어있다. 남북 민족간의 적대 해소에는 소극적이면서 구시대적 이념대결과 편가르기로 국민들 간에 갈등과 분열을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대결의 정치를 능사로 삼는 모양새다.
세계적으로도 통용되지 않는 일부 독재국가류의 국정교과서 제도를 강압적으로 밀어부치는 모습도 민주적 다양성을 싫어하는 퇴행적 지도자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독불장군처럼 반대를 억누르고 국민을 획일적으로 길들이려 하는 것인가. 다채로운 개성과 번득이는 재치들이 분출하는 치열한 도전과 경쟁의 광속시대에 그런 지도자를 가진 국민도 불행이요, 나라 앞날도 정말 걱정이다.
< 김종천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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