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 역사교과서는 어찌할 건가

● 칼럼 2015. 10. 23. 15:44 Posted by SisaHan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이 문제는 비단 한국 내부의 문제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 역사논쟁, 특히 한-일 간 역사논쟁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첫째, 한국의 국정화는 일본의 배타적 애국주의를 강화하는 빌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검인정 제도하에서도 양국은 영토문제를 비롯한 역사분쟁에 대한 교육을 강화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국가의 역사 개입을 정당화해왔다. 지난해 검정을 통과한 일본의 초등 교과서 중 한 권은 한-일 월드컵의 사진과 서술을 지운 자리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문장을 넣었다. 한·일 교과서의 상호서술이 어디까지 악화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일본 정부에 왜곡된 역사서술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명분도 약화시킨다. 일본 정부는 2001년 자신들의 교과서 제도는 검인정이기 때문에 당시 국정제였던 한국처럼 국가가 수정 지시를 내릴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검인정제가 국정제보다 선진적이고, 국정제는 후진국이나 독재국가에서나 하는 것이라는 비아냥이 숨어 있는 답변이다. 한국의 국정제 회귀로 일본으로부터 다시 한국의 교과서 제도가 후진적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셋째, 한국의 국정제는 한-일 역사대화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양국이 모두 검인정제를 시행하는 경우 양국 역사대화의 방향은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학계의 입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의 학계는 일본의 학습지도요령이나 검정기준 등을 작성하는 일본의 연구자들과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학문적 양심과 동북아 평화 지향 교육의 필요성과 일본의 과거청산, 배타적 애국주의 극복 등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국가 간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국정제도를 채택하는 경우 그러한 융통성의 공간은 사라지고 만다. 또한 양국 간에 공동 역사연구기구가 설립되더라도 한국의 참가자들이 국정교과서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는 다시 일본 연구자들의 입장을 경색되게 만들 것이다.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질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넷째, 한·일 시민단체들이 일본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는 논리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시민단체들이 일본 정부가 검정 강화를 통해 교과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점차 강화하는 것을 비판하기 어려워진다. 이 경우 한·일 양국의 국가 개입을 동시에 비판해야 하고, 한국 정부가 오히려 더 중요한 비판 대상이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일본 시민단체들도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역사인식을 위해 한국 정부의 국정제도를 비판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이런 상황은 양국 시민사회 그룹들에 ‘국가주의 비판’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는 일이 되며, 당연히 일본의 과거청산을 중심 주제로 삼는 일은 점점 힘들어진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국정화는 동북아 전체의 역사인식을 경직되게 하는 위험요소가 될 것이다. 한·중·일 역사대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과연 국가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북한의 국가주의 강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동북아의 반평화적 역사교육의 최선봉에 일본이 아닌 한국이 나서게 되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2015년 한·일 시민단체들이 전개한 일본 정부의 역사교육 개입에 반대하는 국제서명에 한국에서만 13만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다. 이제 한·일 시민단체들이 한국 정부의 역사교육 개입에 반대하는 국제 서명운동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미국과 영국 언론의 비판적 입장 표명, 그리고 일본 시민단체의 항의 성명은 이미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 이신철 - 성균관대 동아시아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