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 때도 꼭 이랬다. 반대 여론이 아무리 거세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끝까지 밀어붙였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반대 성명을 내며 강력히 저지했지만 허사였다. 그는 4대강 사업 ‘확신범’이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관한 한 박근혜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엊그제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역사교과서 논란의 시작과 끝에는 ‘국정화 확신범’ 박 대통령이 있다.
이런 확신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자연과 인간에 대한 무지와 오만, 그리고 비뚤어진 역사관 등에 기인하는 측면이 클 것이다. 하지만 공인의식의 결핍도 이들을 빗나간 ‘확신범’으로 만드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지도자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역할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인식하고 행동해야 함에도 이들 두 대통령은 공공의 이익보다는 사적인 이익을 우선시했다. 그 결과 주요 국가기관의 공적 기능은 위축되고 사회 공동체는 파괴되는 등 나라의 기본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가 권력기구와 우리 국토를 자신의 개인 소유물처럼 여겼다. ‘국가 안보’를 책임져야 할 국가정보원과 국군 정보기관을 ‘정권 안보’ 기관으로 전락시킨 건 전형적인 권력의 사유화였다. 이들 국가기관을 이용해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는 데 적잖은 공헌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우호적인 박근혜 정권을 출범시켰다. 결과적으로 주요 국가기관을 퇴임 뒤 자신의 사적인 안위를 위해 활용한 셈이다.
한반도의 젖줄인 4대강도 자기 앞마당을 지나는 개울물처럼 취급했다.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십조원의 국민 세금을 쏟아부어 임기 안에 뚝딱 해치워버렸다. 한반도를 적시며 수만년을 유유히 흘러왔고 앞으로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4대강도 그의 눈에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충족시키는 토목사업의 대상일 뿐이었다.
박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 자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역사관만이 정상이고, 자신과 다른 역사관은 비정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자신의 역사관에 어긋나는 지금의 역사교과서를 자신의 생각대로 바꾸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역사라는 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 역시 구성원의 몫이라는 인식은 찾아볼 수 없다. 전국 대학교수들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이 이어지고, 야당이 길거리 반대 시위에 나서고, 중고생들이 촛불을 들어도 박 대통령의 ‘소신’은 오히려 점점 강해져만 간다.
최고 지도자가 자신의 공적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지 않은 채 사사로운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면 그 사회는 각자도생의 전쟁터가 된다. 각 영역에서 공적 역할을 하며 사회를 지탱해줘야 할 공인들도 최고 지도자를 따라 자신의 사적 이익을 좇게 된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생명 유지에만 몰두하고, 국정원과 군대,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은 정권 안보의 첨병이 되고, 국민의 공복인 관료들은 정권의 뒤치다꺼리하기 바쁘고, 사회의 앞길을 밝혀줘야 할 언론과 학자들은 곡학아세하며 정권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나팔수로 전락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점점 이런 아수라장이 돼 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인식이 달라질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역사마저 자신의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려는 박 대통령의 자기중심적이고 왜곡된 역사관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극우보수세력을 똘똘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돼 버렸다. 구심력이 워낙 강해 이제는 물러나려야 물러날 수 없는 형국이 됐다.
결국 우리 사회를 극심한 갈등과 분열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면서 파국에 이른 뒤에야 멈추게 될 것이다.
공인의식이 결핍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8년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공동체는 갈래갈래 찢기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런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이런 일로 사회적 에너지를 낭비할 만큼 한가한 때인가. 국가와 역사를 개인 소유물로 생각하는 두 명의 ‘확신범’ 때문에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
< 정석구 - 한겨레신문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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