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년만에 고국을 방문하는 동포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1~2년 만에 다시 찾은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하루가 다른 발전상을 토로한다. 널찍한 새 길들이 쪽쭉 뻗어 차량들로 넘쳐난다. 시속 300Km KTX가 씽씽 내달려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된지 오래다. 으리으리한 빌딩 숲은 밤새도록 불을 밝히고, 화려한 점포들, 백화점과 고급 음식점엔 잘 차려입은 고객들로 넘쳐난다. 생동하는 다이내믹한 세상, 한국이 이만큼 발전했구나! 대단하다. 경제력 세계 10위권이라는 말이 헛소리가 아닌 거다. 집집마다 대형 LED로 통일한 듯한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면 이 또한 마냥 즐겁고 태평스럽기만 해서 부자나라 한국을 실감할 것 같다. 웃고 떠들고, 질펀한 오락 프로그램과 눈요기로 가득한 부유층 드라마들, 그리고 날마다 승부를 벌이는 프로 스포츠의 흥미진진 게임소식들, 여기저기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요리와 맛집 프로들…. 잘 살게 된 나라 한국,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한국은 그렇게 휘황한 겉모습을 자랑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넘치는 차량행렬 속에서 이상한 낌새가 드러난다. 분명 정상시력을 점검하고 위법을 가르치는 시험도 거쳐 면허들을 줬을 텐데, 색깔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운전자가 왜 그렇게 많은 것일까. 빨간불 신호등인데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그냥 내달린다. 그게 돈벌이에 바쁜 택시는 물론이고, 일반 개인 차량들도 눈치껏 색맹이 되는 것이다. 끼어들기는 왜 그렇게 싫어하고 절대 불용하는지, 살벌하기 그지없다. 옆에서 끼어들려는 차를 손짓하여 허용해주니, 뒷 차가 빵빵대며 난리다. 네가 뭔데 괜시리 끼어들게 해서 자기까지 늦어지게 하느냐는 고약한 심보의 표현이다. 양보한 사람만 내가 잘못했나? 민망해지는 인정머리 없는 세태다. 다들 그렇게 운전하고 살아가는데, 나만 신호 잘 지키고 양보운전하면 공연히 머저리가 된 것 같은 이상한 세상이다.
하나 더 살펴보자. 언론은 왜 천편일률인가? 가까운 인터넷에서는 청년들의 3포시대-5포시대다 비명이 들리고, 노동개악이라는 외침이 넘쳐나고, 대통령이 독불장군이다 비판하고, 국정원이 못된 짓을 했다 바꿔라 등등 술렁대는데도, 모든 텔레비전과 주요 신문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이 그저 태평성대다. 밤낮 쉴 새없이 정치해설이랍시고 노골적인 정부여당 추켜세우기와 야당 흠집내기 경쟁으로 특히 노인들의 하루를 오직 자만심으로 채워주기 바쁜-, 낯뜨거움도 미안함도 내팽개친 종편 TV들…. 공영도 마찬가지여서, 90%의 직원이 반대하는 인물을 KBS사장 후보로 강추하는 일은 왜 벌어지는가.
그렇게 한 두 가지만 정상이 아니라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세상에 하나님 말고 완벽한 것이 어디 있나. 그런데, 따져보면 이상한 것들이 너무 많다. 아니 정상 보다 이상이 훨씬 많아서, 정상적인 것들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는데 문제가 있다.
요즘의 교과서 국정화 논란만 둘춰 봐도 비정상의 심각한 병증은 쉽게 알 수 있다. 왜, 학생들도 교사들도, 역사학자들도, 국민들도 싫다는 데, 국정교과서는 밀어 부치는 것인가. 유엔서도 하지말라 하고, 몇몇 독재국가들만 고수한다는 데도,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게 사명‘이라던 대통령이 오히려 독단과 강경일변도로 나서는 게 정상이고 선진일까. 여론을 수렴하는 행정예고 이전에 벌써 결론을 내놓고 예산을 몰래 배정하는가 하면 비밀 TF까지 가동하고는 거짓으로 둘러대는 국민무시의 눈속임은 도가 지나쳤다. 역사학자 90%가 좌파 빨갱이라며 반대 시민들을 무조건 쳐부술 적군으로 취급하는 전쟁불사의 외침은 그야말로 비정상의 극치요 독재의 폭거에 다름 아니다.
한 두 가지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그런데 비정상의 일상화, 보편화라고나 할까. 더구나 지도자, 고위직들이 자계와 근신은 커녕, 비정상을 밥 먹듯 도리어 ‘솔선’하니, 일반 국민들은 ‘나 하나 쯤’의 소극적인 수준을 넘어서 ‘다들 하는데 뭘 대수라고…’ 하는, 비정상에 대한 무감각의 동질화와 일반화가 나라 전체 곳곳에 번져버렸다. 알면서도 어기는 교통신호 위반도 그 사례요, 공무원은 공복일 뿐 국민이 주인이라는 헌법정신을 깔아뭉개는 정부고위직들의 뻔뻔한 행태가 그러하며, 나아가서는 정부 여당이 아무리 잘못해도 지지율로 받쳐주고, 선거 때면 승리를 안겨주는 국민들의 정치 안목과 수준이 그걸 입증해준다. 선진을 넘본다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겉은 화려하되, 그렇게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일들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양복에 갓 쓰고 짚신을 신은 것처럼 기형적, 후진적 모양새를, 안타깝게도 부정할 도리가 없다.
캐나다에 사는 우리가 신호위반을 흔히 볼 수 있는가? 정부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낸다고 적군으로 때려잡으려 하던가? 스캔들 정치인이 떵떵거리며 연명하는가? 지난 10.19 연방총선은 이 나라가 선진국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보수당이 잘못하니 단번에 166석에서 99석으로 줄여버렸다. 34석이던 자유당은 무려 150석을 얹혀주어 일거에 정권을 맡겨버렸다.
정치인을 부릴 줄 알고 주인 노릇하는 깨어있는 국민과 그들에게 사심없이 헌신 봉사하는 정치인들의 나라, 그게 바로 선진국이 되는 길이다.
< 김종천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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