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노무현과 만남… 참여정부 창업공신
대선자금 받아 구속, 5년 내내 공직 못맡아
충남지사·대선경선 거치며 차기 주자 급부상
성찰 강조했지만… 비서 성폭력 드러나며 몰락

안희정이 몰락했다. 유력 대선주자로까지 발돋움했던 그의 30년 정치 인생은 수행비서를 향한 성폭력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명예스럽게 막을 내렸다.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안희정은 1989년 1월 통일민주당 김덕룡 국회의원실 비서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1991년 3당 합당에 합류하지 않은 그는 1994년에 ‘정치인 노무현’을 만났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안희정은 노무현을 돕기 시작했고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캠프에서 정무팀장을 맡았던 그는 이광재 기획팀장과 함께 ‘좌희정·우광재’로 불리며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꼽혔다. 그러나 그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그해에, 기업으로부터 대선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구속됐다.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그는 만기를 채우고 출소했지만 참여정부 시절 공직을 맡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퇴임 직전 인터뷰에서 “내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여러 번 곤경에 빠졌는데 안희정씨가 나 대신 희생을 감수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며 눈물을 쏟으며 그에게 미안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안희정은 참여정부 5년의 터널을 지나 2008년 7월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에 선출된다. 4년 뒤 재선에 성공한 그는 민주당의 차기 주자로 꼽히기 시작했고 2017년 1월 드디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잘 생긴 외모에 젊은 정치인이었던 그에게서 사람들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를 떠올렸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통합과 연정을 주장했던 그는 중도표심을 흡수하면서 한때 문재인 후보를 바짝 뒤쫓기도 했고 최종 2위로 경선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여권에서는 ‘충남지사 3선 불출마 선언’을 한 그에게 ‘더 큰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해 ‘중앙정치’를 경험하고, 오는 8월 당대표 경선에 출마해 당의 간판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다음 대선 때까지 그를 더 강력하고 확실한 후보로 만들고 싶었던 사람들의 조언이었다. 그러나 안희정은 “성찰과 공부가 더 필요하다”며 그런 요구들을 거부했다고 한다. 동료 의원들은 그동안 성찰을 강조했던 안 지사의 성폭력 사실을 접하고 “충격적인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수행비서의 폭로가 있었던 2018년 3월5일, 그의 처신도 논란을 불렀다. 안 지사는 그날 오전 도청 직원들과의 만남에서 “최근 확산하고 있는 미투 운동은 인권 실현의 마지막 과제로 우리 사회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며 ‘미투 운동’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어 “우리는 오랜 기간 힘의 크기에 따라 계급을 결정짓는 남성중심의 권력 질서 속에서 살아왔다”며 “이런 것에 따라 행해지는 모든 폭력이 다 희롱이고 차별”이라고도 했다. 그로부터 10시간 뒤 자신의 성폭력 사실이 드러나자 그는 부적절한 성관계는 인정하면서도 “강압·폭력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수행비서를 향한 성폭력이 “힘의 크기에 따라 계급을 결정짓는 남성중심의 권력 질서 속에 행해진 폭력이 아니었다”는 논리로 비치는 그날 오전의 연설이었다.

그는 결국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2018년 3월6일 0시50분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며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주장은 비서실의 잘못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저로 인해 고통을 받았을 김지은씨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했고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그의 사과는 김지은씨의 폭로로부터 5시간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김태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