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보수, 더이상 설 자리 없다준엄한 민심의 경고장

성공적 방역에국가 효능감확인사실상 문 대통령의 승리


유권자에 심판당한정권심판론탄핵당하고도 성찰·방향전환 없어
퇴행적 이념정치 매몰돼 신뢰 상실 대안 없이 극단적 파당정치 매몰
태극기세력 눈치 보며 망언 고질병 세월호 막말·사후처리 보며 민심 분노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심판론을 앞세워 1당 지위 회복을 노렸다. 하지만야당 심판의 거센 파도에 휘말려 치명상을 입었다. 극단적 주장을 일삼는 수구 세력의 눈높이에 맞춘퇴행적 보수로는 더 이상 설 곳을 찾기 힘들다는 민심의 준엄한 경고장을 받아든 셈이다. 사실상의 양당 구도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통합당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얻은 비례대표 19석을 더해 103개의 의석을 얻어 제1야당 지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모두 180석을 내줘 국회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통합당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황교안 대표가 물러나고, 심재철 원내대표 등 최고위원들도 대부분 낙선하면서 지도부마저 붕괴했다.

이런 보수의 위기의 원인으로는 선거 전략의 뼈대였던정권심판론이 전혀 유권자를 설득하지 못한 점이 꼽힌다. 퇴행적 이념 정치에 매몰돼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대안 세력으로 자리매김할 기회를 저버린 결과다. 보수 세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른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완패했지만, 성찰과 근본적인 방향 전환 없이 친박·비박으로 편을 나눠 주도권 다툼에만 골몰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통합은 이뤄냈지만, 중도층으로 외연을 넓히기 위한 쇄신의 과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더구나 황교안 대표 본인이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낸 이력을 정치적 자본으로 활용했다. 탄핵까지 당한 낡은 수구 세력이라는 낙인 속에 스스로를 가둔 셈이다.

이념적 퇴행은 경제적·정책적 해결 능력을 갖춘시장경제 보수로의 진화마저 가로막았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보수의 정치적 뿌리를 나눠보면안보 보수시장경제 보수가 있는데, 통합당은 보수의 본류인 시장경제 보수 대신 반대 방향인 안보 보수 쪽으로 갔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통합당 득표율이 과거 보수 진영이 얻은 지지율보다 10%포인트 남짓 낮아진 사실을 언급한 뒤유권자와 정당 사이의 연결이 약화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보 보수를 상징하는 황교안 대표가 뒤늦게시장 보수인 김종인 전 의원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지만, ‘화학적 결합대신 인식차만 노출했던 게 대표적인 장면이다.

스스로 선명한 정치적 메시지를 생산하지 못하면서, 통합당은 집권당의 정책과 주장을 무조건 거부하는 극단적 파당정치로 치달았다. 이 과정에서 통합당은 습관화된 장외투쟁으로 20대 국회를 역대 최악의 식물국회로 만들었고, 이는 다시 통합당이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집권 3년차에 치러진 총선이어서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수밖에 없는 구도였는데, 유권자들은 정권 심판을 외치는 야당에 과연 심판의 자격이 있는지를 표로 물었다고 진단했다. 김만권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도통합당은 보수를 지키겠다고 말해왔지만 정작 무엇이 보수의 가치인지에 정책과 입법을 통해 아무런 내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의 유권자는 구체적인 콘텐츠가 없는 정당에 쉽게 신뢰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에 콘크리트 지지층 눈치 보기까지 겹쳤다. 차명진 후보의세월호 막말과 그 사후처리 과정이 대표적이다. 수도권에서 선거운동을 했던 한 통합당 관계자는차명진 후보의 막말이 터진 뒤 확실히 지역에서 대하는 눈빛이 달라졌다. ‘너희는 정말 어쩔 수 없구나라는 인상을 중도층에 심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16일 개표 결과를 보면 수도권에서 5천표 이내 차이로 승부가 갈린 지역구만 15곳에 이른다. 적어도 이들 지역구의 승부 결과에는 막말 파동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관후 연구위원은결과적으로 2016년 촛불 이후 대선과 지방선거, 총선을 거치며 보수 세력이 포위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이번 총선에서 드러났다다만 개헌저지선을 지켜낸 티케이를 중심으로 보수 세력이 견고하게 결집할 경우 정치 지형의 양극화가 길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 노현웅 이지혜 기자 >

민주당 압승 ‘3가지 요인

코로나 방역 굳건한 지지 국가가 중요한 역할 하는구나인식
통합당 막말 릴레이 차명진 등이 보여준 혐오감역풍
세대별 결집 현상 4050 똘똘 뭉쳐 여당 지지해석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록적 압승을 거둔 요인으로 전문가들은성공적인 코로나 방역을 첫손에 꼽았다. 미래통합당 후보들의 릴레이 막말 파동과 선거 막판 확연해진 세대별 결집 현상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끈 선거 문 대통령의 높은 인기는 민주당 승리의 일등 공신이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총선 직전 조사(4 7, 8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57%로 치솟았다. 덩달아 민주당 지지율도 두달여 만에 10%포인트를 회복하며 44%를 기록했다. 총선은 이런 환경 속에서 치러졌다. 정병기 영남대 교수는코로나 사태 대응을 잘한 것 등을 포함해 문 대통령 인기가 좋았고, 대통령 후광효과를 민주당이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라는 국가 위기 상황 자체가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유권자들이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위기 앞에서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다면 대한민국이란 공동체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도 “9·11 사태 이후 부시 미국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간 것과 같은 애국결집효과라며예전에는정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했다면, 코로나 사태 이후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구나라며 국가효능감이 높아진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민주당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었다면 결정적인 승기는 미래통합당이 제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성공적인 코로나 방역에 대해 국제사회의 호평이 쏟아지면서 보수언론과 통합당이 짜놓은무능 정권 심판프레임이 무력화됐다. 그러나 더 결정적인 것은 통합당이 선거운동 기간 내내 보여준 행태들이 유권자들에게 혐오감을 갖게 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세대로 갈린 표심 민주당은 지역구 163석 중 103석을 수도권(121)에서 가져왔다. 역대 선거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압승이다. 지방에서도 선전했지만 수도권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런 현상을 두고 비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은노장년층 유권자 비율이 높은 지방과 달리, 수도권은 60대 이상이 많아야 20%대에 그친다. 이런 데서 40~50대 초반이 똘똘 뭉쳐 민주당을 지지하니 통합당으로선 판세를 뒤집기가 힘들었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중요한 건 40대에서 50대 초반이 수가 많고 인구 비중도 갈수록 늘어난다는 점이라며통합당은 이들이 수용하기 힘든 비합리적 언행을 일삼다가 심판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이 민심을 얻은 건 맞지만, 180석을 가져갈 정도로 싹쓸이를 한 데에는소선거구제의 도움도 컸다. 정병기 교수는소선거구제이기 때문에 40% 안 되는 정당득표율로도 의석의 60%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반대로 말하면 상대가 40%만 가져도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 김원철 서영지 황금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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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민주당 압승보수야당의 반성없는 정치에 대한 또 하나의 탄핵

보수야당의 지리멸렬, 대안 없던 중도와 진보정당,  코로나19 호평도 영향

경실련 전문가 토론회

21대 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요인을 두고 보수정당에 대한 엄중한 평가와 코로나19 사태에서 정부 대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중도와 진보 정당에서의 대안 부재 등이 종합적으로 작동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16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토론회를 열고 21대 총선 결과를 분석하고 향후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 결과가 보수야당에 대한 심판 성격으로 여당이 반사이익을 본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이번 선거는) 보수야당이 개혁 요구를 외면하고 세월호 참사 막말, 공천 문제 등 반성 없는 정치를 한 것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 이뤄진 것이다. 또 하나의 탄핵이라며여당이 잘했다기보다 어부지리 격으로 반사이익을 누린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정치외교학)이번 선거에선 문재인 정부 중간평가와 야당 심판론이 동시에 나왔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수한 형태였다야당이 리더십도 부족하고, 정책, 공천과정 잡음, 막말 논란 등 내홍이 나타나면서 엄중한 심판을 내린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거대 양당 사이에서 출현한 중도와 진보 정당들이 유권자들에게 대안으로서 작동하지 않은 점이 여당에게 표가 몰린 이유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이번 총선은 단순히 보수 야권만이 아니라 진보 야권과 중도 정당에 대한 심판이라며중도는 이합집산하는 모습을 보였고, 정의당도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유권자들에게 선택적 정당이 없던 상황이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의 대처가 적절하다는 국외의 평가도 여당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왔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코로나19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잘한다는 국외의 칭찬이 이어지면서 투표율이 오르고 (시민들의) 결집이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180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이 탄생하면서 개혁 의지가 떨어지고 다양하게 분출되는 사회 문제를 간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 교수는거대 정당이 탄생해 다른 정당을 포용하기보단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민생 문제와 시민사회 요구가 법으로 제정되거나 개정되는 반응성의 정치는 약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고 지적했다.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은아쉬울 게 없는 민주당이 지금까지 방치한 기후위기, 젠더, 인권문제, 정치개혁 문제에 제대로 나설지 위기의식이 든다여당은 더는 남 탓할 조건 사라졌으니 개혁 능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 강재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