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최종수혜자이자 최종지시자 확인수사
‘삼성 불법승계’ 의혹의 정점에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검찰이 지난 2018년 12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본사를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한 지 1년5개월만이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이복현)는 26일 오전 8시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불러 조사했다. 이 부회장은 서울중앙지검 영상녹화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이날 검찰 출석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작업의 핵심이었던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최종수혜자이자 최종지시자일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당시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주식의 23.2%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지만 삼성물산의 주식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검찰은 삼성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는 고의로 낮추고 제일모직의 가치는 부풀렸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삼성의 옛 컨트롤타워인 삼성 미래전략실이 이 부회장에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대해 직접 보고한 문건들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삼성바이오 회계사기에도 연루돼 있다. 삼성바이오는 2015년 11월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지배력을 상실했다며 종속회사(단독지배)에서 관계회사(공동지배)로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장부상 4조5000억원의 이득을 봤다. 검찰은 미국의 제약회사 바이오젠이 삼성에피스에 대해 보유한 콜옵션 부채 1조8000억원이 재무제표에 반영되면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에 빠질 것을 우려해 회계처리를 부당하게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 11월 작성된 삼성바이오 재경팀 내부문건을 보면, 삼성은 제일모직의 핵심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에 빠질 경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정당성이 흔들릴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2014년 삼성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추진 과정에서 바이오젠사의 대표와 콜옵션 행사 여부에 대해 직접 통화하는 등 삼성바이오의 경영을 직접 챙긴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수혜자’ 이재용, 삼성 합병과정 ‘불법 지시’ 규명 초점
검찰, 불법승계 의혹 정조준 ‘사기적 부정거래’ ‘주가조작’ ‘회계사기’ 연루 등 수사
검찰이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직접 조사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압수수색(2018년 12월)으로 본격화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수사가 1년 반 만에 정점에 이르게 됐다. 이번 수사는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국정농단 뇌물 사건과 ‘동전의 양면’ 격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8월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라는 ‘부정한 청탁’과 함께 뇌물을 건넨 사실을 인정했다. 이번 수사는 정치권력 활용과는 별개로 삼성이 자체적으로 실행한 불법적 경영권 승계의 주체로서 이 부회장을 겨냥하고 있다. 계열사가 동원된 ‘승계 기획’에 이 부회장이 얼마나 관여했는지를 밝혀내는 게 수사의 관건이다.
■ ‘이재용 승계’가 목적인 합병…‘사기적 부정거래’ 판단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중심에는 2015년 5~8월 실행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있다. 2015년 5월26일 두 회사의 이사회가 합병 결의 사실을 알린 직후, 삼성은 합병을 추진하게 된 배경으로 “글로벌 사업역량과 다각화된 사업플랫폼을 기반으로 미래사업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며 합병의 ‘상승효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하지만 검찰은 두 회사의 합병을, 이 부회장을 위한 지배구조 구축 작업의 하나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지분 23.2%)인 제일모직의 가치는 극대화되고, 이 부회장의 지분이 없는 삼성물산의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떨어지는 시점에 산정된 합병비율로 합병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기업 간 합병’이라는 중대한 의사결정이 이 부회장 개인의 이익을 위해 부정하게 만들어진 합병비율로 성사됐다면,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는 ‘사기적 부정거래’에 해당된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 합병 성사 위한 호재…‘시세조종’ 해당할 수 있어 합병 추진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가치는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고 삼성물산의 가치는 떨어뜨리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이 동원된 점도 문제다. 특히 검찰은 합병 결의 직후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 부양에 도움이 되는 호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합병 공개 전 삼성 미래전략실이 작성한 ‘엠(M)사 합병추진(안)’을 보면, 제일모직이 상대적으로 고평가돼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주들이 합병에 반대할 수 있다며 “주주총회 및 주식매수청구기간까지 주가 관리가 필요하다”고 적시했고, 실제 문건대로 삼성은 합병 결의 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가능성, (삼성물산) 건설 수주 발표 등” 호재를 내놓았다.
검찰은 이 대목에서, 삼성이 2014년 11월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을 추진하다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합병이 무산됐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인위적인 ‘주가 부양’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주들을 합병 찬성 쪽으로 유도하려고 악재와 호재를 선별적으로 공개했다면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한 ‘시세조종’(주가조작)에 해당할 수 있다.
■ 이재용 지시·보고 밝혀지나 결국 검찰은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에 이 부회장이 얼마나 깊숙이 관여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검찰은 △삼성물산 경영진이 합병을 앞두고 업무상 배임 소지를 감수하며 아파트 수주를 미루는 등 ‘자해적인’ 의사결정을 연이어 이어갈 때 이 부회장의 승인이 있었는지 △삼성바이오가 수조원대 콜옵션 부채를 숨겼다가 합병 직후 다시 수조원대 분식회계로 이를 무마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캐물을 것으로 보인다. 혐의가 방대한 만큼, 검찰은 이 부회장을 몇차례 더 불러 조사할 수도 있다. 검찰은 조사를 마친 뒤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 이번 사건에 연루된 삼성그룹 주요 경영진에 대한 신병처리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 임재우 기자 >
이재용 소환에 삼성 초긴장…뉴삼성 차질빚나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26일 검찰에 출석하자 삼성 내부는 초긴장하는 분위기다.
삼성은 "입장이 없다"며 공식 언급을 삼가고 있지만, 그룹 총수가 3년여만에 다시 소환되자 내부적으로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최근 '뉴삼성'을 선언한 뒤 보폭을 넓혀 가던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감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경영권 승계 의혹 건으로 검찰에 소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 출석은 201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구속돼 조사받은 이후 3년 3개월 만이다.
경영권 승계 의혹 수사는 지난 1년 6개월간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과 삼성물산[028260] 등의 전·현직 고위 임직원들이 수차례 소환됐고, 이 부회장 소환으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회계 변경이 이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됐다고 의심한다.
이 부회장 측은 검찰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변경은 바이오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반영한 것이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힌 것으로 관측된다.
이 부회장의 검찰 소환은 또 다른 사법리스크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그룹은 초조해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7년 2월 국정농단 뇌물 혐의로 구속됐다가 2018년 2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뒤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기소할 경우 이 부회장은 다시 법정에 서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와 관련된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재계는 새로운 재판이 시작될 경우 이 부회장의 뉴삼성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과거 잘못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새로운 삼성의 시작을 선언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건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는 경영권 승계 문제가 빚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불법, 편법과의 단절도 선언했다.
이후 이 부회장은 경영 보폭을 넓혀 나가는 중이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 부회장을 만나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논의했고, 코로나19를 뚫고 중국 시안의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위기 선제 대응과 변화를 강조했다. 평택에 약 1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구축하겠다는 투자 발표도 했다.
재계는 특히 삼성을 둘러싸고 있는 현재의 대내외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 미·중 무역 분쟁 확대에 따라 세계 반도체 시장은 한 치 앞도 보기 어렵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영 환경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경영활동이 사법리스크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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