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판하는 야당,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을 적대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에서 ‘자유 통일’을 이룰 첫번째 과제로 명시한 것은 ‘국민 가치관과 역량’이다. 하지만 행간이 겨냥한 상대는 야당과 비판 세력으로, 이들을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 “검은 선동 세력” 등으로 규정하고 편 가르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국정 운영 동력이 흔들릴 정도로 윤 대통령 부부를 상대로 한 비판과 분노가 거센 상황에서 책임을 반대자에게 돌리고, 분명한 적대적 메시지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풀이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국민들이 자유의 가치와 책임의식으로 강하게 무장해야, 한반도의 자유 통일을 주도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동’ ‘날조’ 등의 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국민들이 진실의 힘으로 무장하여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은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데만 집착할 따름”이고 “국민을 현혹해 자유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부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사이비 지식인들은 가짜 뉴스를 상품으로 포장·유통하며, 기득권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라고도 했다.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반자유·반통일 세력’이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헌법 4조에 반하는 세력이고 자유·통일에 반하는 세력”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을 염두에 둔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이라고 하는 등 정부 비판이 일부 세력의 선동 탓이라는 인식을 꾸준히 보여왔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갈등의 진원지로 대다수 국민이 윤 대통령을 지목하는데도 ‘선동과 날조’ 탓으로 돌렸다”며 “자신에 비판적인 이들에 대한 적대감을 광복절 경축사에까지 드러낸 것에서는 반드시 보복하겠다는 섬뜩한 독기가 읽힌다”고 비판했다.
조국혁신당도 국회 기자회견에서 “경축사에 야당과 시민사회에 대한 적의만 가득하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유를 겁박하고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이 누구냐”고 따졌다.
지지층 결집용 경축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야당의 탄핵 요구나 ‘친일 프레임’ 공격 등이 강해지는데다, 여당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으니, 기댈 곳은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밖에 없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진보 세력에 경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이승준 임재우 기자 >
[사설] 광복절 두쪽 내고 국민 비판에 선전포고한 윤 대통령
제79돌 광복절 기념식이 결국 둘로 쪼개져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등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부 경축식에 참석했다. 반면 광복회 등 대다수 독립운동단체들과 야 6당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등 역사 왜곡에 항의해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별도 기념식을 열었다.
그동안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광복절만큼은 온 국민이 한목소리로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통합의 마당으로 자리해왔다. 그러나 윤 정부 들어 육군사관학교 독립영웅 흉상 철거, 강제동원 등의 일제 책임 부정, 뉴라이트 인사들의 역사기관 장악 등 반헌법적 역사 왜곡 시도가 잇따른 결과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정부와 민간이 별도 기념식을 열기에 이르렀다.
엄밀히 말하자면, 둘로 쪼개졌다고 하기도 어렵다. 독립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폄훼하는 윤 대통령의 친일 행태에 맞서 국민 대다수의 뜻을 대변한 독립운동단체들이 독자적인 기념식을 연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경축식은 기려야 할 우리 역사의 고갱이를 놓친 무늬만의 행사에 그친 반면, 진정한 광복절의 의미는 62개 독립운동단체가 연 소박한 기념식에서 온전히 구현됐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 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며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자체 기념식을 연 이유를 밝혔다. 공감하는 국민이 매우 많을 것이다.
역사적 정통성을 상실한 반쪽 경축식에서 윤 대통령은 공허하고 편향된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분단 체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광복은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고 한 건 대한민국 대통령이 가져야 할 당연한 인식이다. 그러나 분단 극복의 실효적 방법론이 빠진 번지르르한 수사에 그쳤다.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돼야 한다”며 흡수통일 의사를 노골화했고, “북한 주민들이 다양한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가동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흡수통일이라는 이념적 푯대만을 강조하며 국민 생존과 직결된 평화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독단적 주장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국민을 척결해야 할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세웠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흉기”라며 “사이비 지식인”과 “검은 선동 세력”에 “우리 국민들이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야당과 비판 세력을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이라고 하더니, 이제 ‘반통일 세력’ 딱지까지 붙였다. 또 이념으로 국민을 갈라치기 한 것이다. 그러나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적 통일을 주장하면 반통일 세력이라는 건 얼토당토않은 궤변일 뿐이다. 반면, 역대 대통령들의 경축사에 빠지지 않았던 일본의 역사적 책임에 대한 언급은 전혀 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이처럼 통합의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분열만 부추기는 한 국가지도자 자격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 한겨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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