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인사로 분열된 광복절 경축식

일본 책임 언급 없이 가짜뉴스 탓만
친일 편향을 통일로 덮으려는 얄팍한 수

지금 필요한 것은 남북 평화공존 방안

 

 

올해 제79년 광복절 기념식은 사상 초유로 세 군데로 나뉘어 치러졌다. 윤 대통령이 참석한 정부 주최의 경축식과 민주당 등 야당들이 참석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주최의 경축식, 그리고 광복회를 비롯한 37개 독립운동단체들이 개최한 경축식이다. 특히 개관 이래 독립기념관에서 매년 열리던 광복절기념식도 취소되었다.

이번 사태의 직접 발단은 독립기념관장에 뉴라이트 인사를 임명한 것을 항의한 데서 시작됐지만, 광복회의 성명처럼 “(윤석열) 정부의 친일 편향적인 정책에 항의하고 일제 극복과 함께 자주독립을 되찾은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배경에 깔려 있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는 국권 침탈을 말하면서도 어느 나라한테 국권을 침탈당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일본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없다. 이런 국론 분열의 와중에 윤 대통령은 생뚱맞게 '8.15통일 독트린'이란 것을 내놓았다. 이것은 역대 보수정부가 시도해 온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형해화 작업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보수진영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형해화 시도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이 통일방안은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의 국회 특별연설을 통해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으로 제시되었다가,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화해·협력, 남북연합, 통일국가의 3단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으로 재정립된 것이다.

비록 보수정부에서 제안된 것이지만,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초당파적인 합의와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이 방안이 너무 북한에 포용적이라든가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다며 몇 차례 개정을 시도했다.

이명박 대통령(당시)은 2010년 8.15경축사에서 “주어진 분단 상황의 관리를 넘어서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밝히면서 새로운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으로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 민족공동체 등 단계적으로 형성되는 '3대 공동체 통일 비전'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통일방안은커녕 새로운 패러다임과도 거리가 멀었다.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이 위원회에서 △통일헌장 △통일방안 △통일로드맵의 3대 작업에 착수했다. 박근혜 정부도 통일로드맵만 만들어냈을 뿐, 초당파적인 합의가 필요한 통일헌장과 통일방안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윤석열 정부도 역시 새로운 통일방안의 제정에 관심을 보였다. 작년 1월 통일부는 윤석열 정부의 통일정책 방향을 담은 ‘신통일미래구상’을 마련해 연말에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참석해 통일미래기획위원회가 준비한 '신통일미래구상' 초안을 검토했으나 최종 발표는 이뤄지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씨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2024.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
 

‘8.15 통일 독트린’의 반헌법성

금년 2월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30주년을 맞아 “헌법적 가치를 더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방안으로 통일방안이 새롭게 모색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통일구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결국 이번에 광복절 경축사에서 '8.15 통일 독트린'의 이름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 독트린은 미래 통일한국의 모습을 그린 3대 비전과 국내·북한·국제 등 대상별 3대 통일 추진전략, 그리고 액션플랜인 7대 통일 추진방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8.15 통일 독트린'을 관통하는 핵심용어는 '자유통일'이다. 그동안 용산 대통령실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자유주의적 철학 비전이 누락되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자유 통일’ 담론은 국내적으로 보수적인 자유 가치관의 확산, 북한 내에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 촉진, 국제적으로 자유 통일에 대한 지지 확보를 전략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유 통일’의 정체는 무엇인가?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대법원과 법제처는 “the basic order of freedom and democracy”로 번역해 놓고 있다. 여기서 자유는 공산독재를 제외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이 말하는 자유는 협소한 의미의 보수주의 정치이념이다.

이는 일본 보수정당인 자유민주당(liberal party of Japan)의 당명에서처럼 정치적 보수주의 가치를 의미하는 자유이다. 또한 이승만의 4대 건국정신(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입국론)에 입각한다는 전광훈 목사의 극우정당인 자유통일당과 용어가 같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개 정당이라면 보수적인 자유의 가치를 정강정책으로 내걸 수 있으나, 명색이 정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가 공식 국가행사에서 헌법에 배치되는 보수이데올로기를 독트린이라는 이름으로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천만부당한 일이다.

‘8.15 통일 독트린’의 반민족성, 시대착오성

통일은 남북한의 체제와 이념 차이는 물론 남한 사회 내의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통합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내놓은 통일 독트린의 핵심인 '자유통일'은 대한민국 헌법과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말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과 커다란 개념 차이가 있다.

윤석열 정권이 광복절 경축사의 '8.15 통일 독트린'에서 '자유통일'을 내세우며 우리 주도와 북한 변화를 제시한 것은 대화와 협상에 의해 평화통일을 추구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보수 가치로의 통일, 사실상 보수우파에 의한 북한 흡수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통일 독트린은 우리 민족에게 통일 미래의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남북의 대립과 대결을 고취하는 반민족적인 분열 구상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가 과도한 친일 편향으로 국내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모자라 남북대결까지 고취함으로써 우리 민족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려고 하고 있다.

이처럼 이 독트린은 남한사회에서조차 특정 세력에게만 통용되는 이데올로기를 북한사회로까지 확산하려는 무모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연초에 '적대적 2개 국가관계'를 발표하고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 된 상태에서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흡수통일을 지향하는 '자유통일'을 내건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통일 독트린보다 평화공존 방안이 필요

미·중 전략경쟁이 가속화되고 있고 신냉전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현 국제정세 속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성 없는 통일 독트린이 아니라 남북한이 전쟁 위험 없이 대화와 협력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평화공존 방안이다.

북한이 '적대적 2개 국가관계'를 내세웠다고 해서 우리마저 통일을 포기하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상대로 정보유입으로 체제 붕괴를 유도하고 우리 주도로 흡수통일하겠다며 통일 독트린이나 발표하고 나서는 것도 어리석고 위험한 짓이다.

우리는 초당파적으로 합의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견지하며 평화통일을 추구하되, 당면한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자세이다. 윤 대통령은 가짜뉴스 타령을 할 것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8.15 통일 독트린'을 철회하기 바란다.

                                                   < 필자=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