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의미도 없는 수심위로 김건희 면죄부만

눈 앞에서 대놓고 봤는데 처벌도 못하는 나라
성역 없다더니 '황제 출장수사' 편의 제공하고

뻔한 무혐의 처리에 수심위 열어 정당성만 줘
국민의힘 "정당한 결정 수용하는 게 법치주의"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2022년 9월 13일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지하에 위치한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최재영 목사를 만나 크리스찬 디올 명품백을 받을 당시 모습이 담긴 동영상. 서울의 소리 유튜브 화면 갈무리
 

지난해 11월 장인수 전 MBC기자는 <서울의 소리>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지하에 위치한 자신의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 가방을 받은 모습을 그대로 내보냈다.

"아니 이걸 왜 사오세요" "이렇게 비싼 걸 절대 사오지 마세요"라며 김 씨가 받아 챙긴 가방은 신세계 백화점 명동 본점 디올(Dior) 매장에서 구매한 300만 원 상당의 '여성 송아지 가죽 파우치'였다. 가방 영수증까지 영상에 공개됐다. 그 외에 김 씨는 180만 원 상당의 샤넬 항수와 화장품 세트, 40만 원 상당의 듀어스 27년산 고급 위스키를 챙겼다.

청탁금지법 명문 규정을 떠나 영부인이 반복적으로 고가의 명품을 수수한 자체가 사회 통념이나 도덕성 측면에서 심각한 결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보도였다. 국민들이 보는 눈 앞에서 영부인은 명품가방을 챙겼고, 국정운영과 관련된 청탁도 받았다. 그러나 대통령도 영부인도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면죄부, 수사 가이드라인을 던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KBS 신년대담에서 "시계에다가 몰카까지 들고와서 선거를 앞둔 시점에 1년이 지나서 터뜨리는 것 자체가 정치 공작이라고 봐야한다"면서 "(최 목사가) 아버지와의 동향이고 친분을 얘기하면서 왔기 때문에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다. 그것을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좀 문제라면 문제"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7일 KBS 신년대담에서 부인 김건희 씨 명품가방에 대해 박절하지 못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사과는 없었다. 2024.9.7. JTBC 영상 갈무리
 

범죄 증거물인 명품 가방의 행방에 대한 용산 대통령실 해명도 가관이었다. 대통령실 지난 1월 "규정에 따라 국가에 귀속돼 관리·보관하고 있다"며 부정청탁 대가로 받은 명품 가방이 대통령기록물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내놨다. 친윤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은 "국고에 귀속된 물건(명품 가방)을 반환한다는 것은 국고 횡령"이라며 반환불가라고 못박았다. 수사의 핵심 증거를 아예 열람도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그러나 돌려주지 못한다던 명품 가방은 짜여진 검찰 수사 각본가 있는 듯 갑자기 제출됐다. 지난 7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대통령기록물 분류 작업은 아직 기한이 도래하지 않았다"며 기록물이 아니라 했고, 그 즈음 절대 반환불가하다던 명품 가방은 검찰에 임의제출됐다. 대통령실 유모 행정관은 "김 여사가 명품백을 돌려주라고 했지만 깜빡했다"고 검찰에 진술했고, 김건희 씨 측도 "기분이 상하지 않게 추후 돌려주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방의 행방은 여전히 의문이다. 검찰은 임의제출한 가방이 김건희 씨가 받은 것과 동일하다고 결론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가방을 건넨 최재영 목사는 지난 5일 "검찰에 임의제출한 명품 가방은 내가 전달한 가방이 아니"라며 "은폐하려고 그동안 국가기록물로 분류했다가 검찰 수사 중 임의제출해야 하니 동일제품을 구입해서 제출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메모한 가방 시리얼 넘버(일련번호)를 비교하자고 했지만, 검찰은 응하지 않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이정문 의원이 지난 6월1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명품백 수수 의혹을 '제제 규정 없음' 이유로 종결한 국민권익위원회를 규탄하고 있다. 2024.6.12. 연합
 

이런 공방이 오가던 사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가 위원장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6월 김건희 씨 명품 가방 수수에 대해 '청탁금지법 위반 사항이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권익위는 "배우자에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에 종결 결정했다"고 했다. 당시 검찰총장까지 나서서 수사 의지를 밝힌 사안에 대해 권익위가 먼저 나서서 면죄부를 준 셈이다. 양심에 어긋난 사건 처리에 괴로움을 토로하던 권익위 간부는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 수사 역시 엉망진창이었다. 모든 게 용산의 각본대로 이뤄진 모양새였다. 이 총장은 김건희 씨에 대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지만, 법무부는 곧바로 총장을 '패싱'하고 서울중앙지검장 등 고위급을 용산 입맛에 맞도록 대거 교체했다. 이 시기 민정수석 폐지를 공약한 윤 대통령은 이를 번복해 민정수석실을 신설하고 말 잘 듣는 기획통 검사 출신을 수석비서관에 앉혔다. 이에 김건희 사법리스크 방어를 위한 컨트롤 타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민정수석실과 검찰의 주요 직위를 친윤 인사가 차지하더니 급기야 김건희 씨 인사뿐만 아니라 수사도 검찰총장을 '패싱'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경호처 부속건물까지 출장을 가서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밀실에서 김건희 씨를 수사했다. 사회적 파장이 큰 영부인 수사임에도 검찰총장은 수사가 거의 다 이뤄진 이후에 뒤늦게 보고 받았다. 검찰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대의 하극상이었지만, 총장은 꼼짝 못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7.22. 연합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던 총장은 수사에서까지 후배들에게 패싱 당한 뒤, 특혜 수사 비판에 대해 "국민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지만, 공허한 목소리일 뿐이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결국 '황제 출장 수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혐의 결론을 냈다. 권익위와 똑같았다. 청탁금지법에 배우자 처벌 조항이 없고 윤 대통령의 직무 연관성도 입증이 안됐다는 것이다.

'허수아비'가 된 이 총장은 결국 지난 23일 "공정성을 제고하고 더 이상의 논란이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수사팀이 무혐의 결론 낸 김건희 사건을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에 직권 회부했다. 그러나 그는 수사에 대해 "증거 판단과 법리 해석이 충실히 이뤄졌다"고 평가하며 예단을 줬다. 이에 법조계에선 이미 결론은 '불기소'로 정해졌고, 퇴임을 앞둔 이 총장 자신의 명분쌓기용 심의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리고 예상한대로 수심위는 전날인 6일 저녁 공지를 통해 "제16차 위원회를 개최하고 피의자 김건희의 모든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 의견으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더 이상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곧 퇴임하는 이 총장은 국민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은 했다는 명분을 쌓았고, 김건희 씨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미 내린 무혐의에 심의까지 거쳤으니 면죄부만 받은 셈이다.

이는 구조적으로도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대검 수심위는 철저하게 밀실에서 이뤄지며 사건 관계인조차 심의위원을 알 수 없는 구조다. 심의에 대한 법적 권한과 책임도 없다. 검찰 수사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만든 기구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검찰 수사의 절차적 정당성 또는 범죄 피의자의 무혐의만 부각시켜주는 역할밖에 할 수 없다.

 

명품가방 수수 의혹으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를 재판에 넘기는 게 적절한지 판단하기 위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6일 열렸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오후 2시부터 오후 7시15분까지 5시간 넘게 진행됐다는 수심위는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검찰의 발표와 무혐의를 주장하는 피의자 김건희 측 발표만 듣고 밀실에서 합의해 결론을 내렸다. 심의 대상이 그것 뿐이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미 뻔했다. 수심위는 청탁금지법에 배우자를 처벌할 조항이 없고 김건희 씨가 받은 금품과 윤 대통령 직무 사이 관련성, 대가성이 없다는 수사팀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수심위는 법조계, 학계, 언론계, 종교계, 시민단체 인사 200~300명 중 무작위 선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통령실부터 검찰, 경찰, 정치권부터 심의위에 들어가는 법조계, 학계, 언론계, 종교계, 시민단체까지 눈이 있어도 명품 가방을 보지 못하는 '바보 공화국'이라는 점만 여실히 보여줬다. 영부인은 법보다 위에 있다는 '김건희 공화국'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앞으로도 김건희 씨 수사에 대한 전망은 어둡다. 법조계에선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역시 명품 가방처럼 무혐의로 끝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의 항소심이 오는 12일 예정돼 있다. 도이치모터스 재판 결과에 따라 검찰이 처분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심의위를 소집해 이번처럼 불기소로 유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가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2024.9.3. 연합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가 이달 검찰총장에 취임하더라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상적인 수사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는 지난 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했지만 김건희 씨 명품백 수사 무혐의에 대해 실종일관 "모른다"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 답변을 모두 회피했다.

야당은 수심위의 김건희 씨 불기소 권고 결정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6일 서면브리핑을 내고 "온 국민이 서슬퍼런 호랑이의 눈을 하고 지켜보았지만 바뀐 것은 전혀 없었다"며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를 농단해온 검찰 권력의 무도함만 확인했다"고 했다.

황 대변인은 "뇌물 받은 김 여사 측은 참석시키고, 청탁을 신고한 최재영 목사는 배제한 수사심의위는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진행된 짜고치는 고스톱에 불과하다"며 "수사심의위는 김 여사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공정성이라는 외피조차 씌우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정권은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알길래 이렇게 버젓이 법을 조롱하느냐"며 "답은 특검 뿐"이라고 했다.

같은 당 한민수 대변인도 서면브리핑을 통해 "어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결과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정당화하기 위한 눈가림 절차였다. 윤석열 정권이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사유화시켰는지 여실히 보여줬습다"며 "공직자의 배우자가 금품을 받으면 처벌받아야 한다는 국민 상식은 권력에 빌붙은 사법시스템에 의해 철저히 배신당했다"고 논평했다.

그는 "황제출장 조사에 이어 면죄부 처분을 갖다 바친 검찰은 수사할 자격이 없다"며 "어제 검찰의 수심위 결과로 국민이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밖에 답이 없다고 판단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검찰이 김건희 여사에게 상납한 면죄부가 영원할 거라 착각하지 마라"며 "이번 수사심의위원회 논의 대상이었던 혐의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망가뜨린 공천 개입 의혹까지 모두 응당한 처벌을 받게 하겠다"고 경고했다.

 

영국 국빈 방문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씨가 23일(현지시간) 런던 스탠스테드 국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공군 1호기 탑승을 위해 방탄 의전차량을 타고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2023.11.23. 연합
 

조국혁신당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디올백을 주고받은 것은 다툼이 없고, 준 사람이 구체적 청탁 사실까지 인정하고 있다. 뭘 더 할 필요도 없이 죄가 되는 것 아닌가"라며 "배우자는 처벌규정이 없다고? 국민들이 바보인가? 검찰은 그동안 이런 사안을 알선수재로 무수히 처벌해 오지 않았나? 지금도 알선수재로 재판받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검찰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다른 공직자의 배우자가 여러 청탁과 함께 명품백을 받았다면 검찰이 처분을 고민했겠나"라며 "이전 정부나 야당과 가까운 공직자라면 눈에 불을 켜고 기소를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공무원의 배우자가 고가의 명품을 받으면 처벌받아야 하는 것은 상식이고, 국민의 법 감정"이라며 "아무리 검찰이 법 기술로 말장난을 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해도 사건의 실체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김건희 종합 특검'의 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며 "김건희씨의 수심이 깊어질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법과 절차에 따른 정당한 결정을 수용하는 것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며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곽 수석대변인은 "합법적 결론에 대해 무조건적 비판과 정치공세를 하는 것은 법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더욱이 민주당 집권 시절 도입된 제도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했다. < 민들레 김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