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 대신 '오답'만…'이 정도로 매듭짓자'
지엽적 방안으로 국민 현혹…논점 일탈, 눈속임
이재명 1심 유죄 예단, 정치 공세 여론전 측면도
특별감찰관은 독립성, 인력, 권한 등 한계 뚜렷해
이미 벌어진 '게이트'급 사건 수사‧처벌은 불가능
그나마 한동훈 역량‧세력으로 당내 관철도 어려워
추경호‧친윤, "원내에서 결정할 사안" 사실상 반대
윤석열 뜻 반영…북한인권재단 연계 꼼수로 기피
김건희 여사의 사과, 대외활동 자제, '김건희 라인' 인적 쇄신, 제2부속실 설치, 특별감찰관 도입….
김건희 씨의 갖가지 국정 농단과 개인 비리 의혹을 향한 국민적 분노를 두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이 같은 지엽적인 방안들만 제시해왔다. '김건희 게이트'의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유일한 해법은 김건희 특검뿐인데도 의도적으로 '오답'만 내놓는 모습이다. 한 대표의 메시지는 결국 '용산에서 이 정도 수용하면 국민들도 대통령 부부를 용서해주고 이쯤에서 매듭짓자'는 얘기다. 이는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거나 중대성을 희석시켜 여론을 현혹하려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그중에서도 특별감찰관 도입을 최근 집중적으로 밀고 있다. 그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출범한 지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아직 특별감찰관 추천과 임명 절차를 실질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사실 지난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던 것"이라며 "우리는 문재인 정권보다 훨씬 나은 정치 세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감찰관의 실질적인 추천과 임명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북한인권재단의 이사 추천이 특별감찰관 추천의 전제조건이라는 지금까지의 입장은,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국민의 공감을 받기가 어렵다"면서 "우리는 민주당의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강력히 요구하고 관철시킬 것이다. 그러나 특별감찰관 추천 절차를 그와 연계해서 미루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만약 그렇게 한다면 특별감찰관 하기 싫어서, 대통령 주변 관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정치 기술 부리는 것이라고 국민이 오해할 것"이라며 "우리는 그런 정당이 아니다. 당 대표로서 다시 말씀드린다. 특별감찰관 추천 진행하자"고 거듭 못박았다.
그 전날 한 대표는 취임 이후 처음 주재한 확대당직자회의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범죄 혐의에 대한 재판 결과들이 11월 15일부터 나온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안 될 거라는 점, 많은 국민이 점점 더 실감하시게 될 것"이라며 "여러분,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되겠는가. 김건희 여사 관련 국민들의 요구를 해소한 상태여야만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김 여사 관련 이슈들이 모든 국민이 모이면 얘기하는 불만의 1순위라면 민주당을 떠나는 민심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이 유죄를 선고할 것이라고 예단하며 재판부를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정치 공세의 문제점은 차치하고, 한 대표가 특별감찰관 도입을 북한인권재단 이사 임명과 연계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일견 전향적인 태도로 볼 수 있다. 특별감찰관 임명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추천해야 우리도 특별감찰관 추천 절차에 착수하겠다"며 전혀 별개인 두 사안을 패키지로 묶어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인권재단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3월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부가 북한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북한 인권 보호 및 증진과 관련된 연구와 정책 개발 등을 수행하기 위해 북한인권재단을 설립‧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재단 이사는 통일부 장관이 추천한 2명과 여야 교섭단체가 각 5명씩 동수로 추천한 10명 등 총 12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법이 북한을 과도하게 자극함으로써 남북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으며 북한에 인권 개선을 강제할 수도 없어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사실은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탈북민 단체 등 보수우파 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삐라 살포 지원법' 아니냐는 의구심도 강했다. 남북 대화와 협력, 한반도 긴장 완화를 중시하는 민주당으로서는 북한인권재단 출범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재단 이사 임명을 특별감찰관 임명과 연동시킨 국민의힘의 일괄 처리 방안은 사실은 특별감찰관 도입을 안 하겠다는 얘기와 마찬가지였다. 여기엔 물론 특별감찰관을 두고 싶지 않은 대통령 부부의 의중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 씨가 지난해 7월 개인 비리 혐의로 법정 구속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을 때도 특별감찰관을 즉각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됐지만 대통령실은 국회가 후보를 추천해야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한 대표가 '면담'에서 건의했을 때도 "여야가 협의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사실 한 대표 역시 종전까지는 특별감찰관 임명에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대통령실 입장과 보조를 맞추는 쪽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윤 대통령과의 면담을 계기로 비로소 특별감찰관 카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윤 대통령이 여당 뒤에 숨어 국회 핑계를 대는 상황에서 한 대표가 "북한인권재단의 이사 추천을 특별감찰관 추천의 전제조건으로 연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진전된 측면이 있지만 여기엔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김건희 씨에 관한 의혹을 해소하는 데 특별감찰관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명백한 한계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2월 국회를 통과해 제정된 특별감찰관법은 ▲대통령의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을 감찰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15년 이상 경력 변호사 3명을 후보로 추천하면, 대통령은 3일 이내에 1명을 차관급 공무원인 특별감찰관으로 지명하고 인사청문회를 거쳐 최종 임명하도록 했다.
우선 태생적으로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뜻에 반하는 인물이 임명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박근혜 대통령도 여당·야당·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후보 3명 가운데 여당 몫인 이석수 변호사를 첫 특별감찰관으로 선택했다). 직무에 관해 독립적 지위를 가진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대통령 소속'인데다, 감찰의 개시와 종료 즉시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 감찰 기간은 불과 1개월이고, 1개월 더 연장하려면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감찰 대상도 한정돼 있어서 김건희 씨 의혹의 한 축인 소위 '7간신' '한남동 라인'으로 지목된 비서관‧행정관들을 조사하기도 어렵다. 강제 조사권이 없다는 점은 결정적 약점이다. 감찰 대상자의 비위 행위 확인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공공기관을 상대로 '협조·지원 요청' '자료 제출이나 사실 조회 요구'를 하고 필요할 경우 감찰 대상자에게 '출석·답변 요구' 정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범죄 혐의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자체적인 수사‧기소권이 없기 때문에 특별감찰관법에 따라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해야 한다.
이처럼 실질적 독립성, 인력, 권한 등에 있어서 제약이 많고 입지가 협소하기 때문에 이른바 '이채양명주'를 비롯해 국민의힘 공천 및 당무 개입 등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광범위한 국정농단 의혹을 특별감찰관이 규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김건희 씨 명품백 수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까지 무혐의 불기소 처분한 '정권 호위대' 검찰에게 수사를 의뢰한다면 더더욱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따라서 특별감찰관은 제한된 영역에서 대통령 주변의 비위를 예방하고 경고 신호를 보내는 역할에 적당하지, 이미 벌어진 '게이트'급 권력형 비리 사건을 조사하고 처벌하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특별검사가 나설 수밖에 없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특검 찬성 의견이 압도적인데, 한동훈 대표는 특검엔 반대하면서 엉뚱한 대안인 특별감찰관으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 것처럼 국민을 계속 오도하고 있다. 이는 논점 일탈이고 눈속임 술책일 따름이다.
둘째, 그나마 특별감찰관 도입도 현실적으로 관철시킬 능력이 없거나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국회가 3명의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려면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가 필수적인데 윤 대통령의 복심인 추경호 원내대표가 대놓고 난색을 표시하고 있고 당내 주류인 친윤 의원들도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상황이다. 원외 인사인 한동훈 대표와 20명 안팎인 친한계 의원들이 이를 돌파하기엔 역부족이다.
추 원내대표는 23일 확대당직자회의에서 한 대표가 특별감찰관 추진을 공식화하자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이 부분은 국회 의사 결정 과정이고 원내 사안"이라며 "원내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의원총회이고 의장은 원내대표"라고 맞받았다. 그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에 관련 위원회의 위원들과 중진 등 많은 의원의 의견을 우선 듣고 최종적으로는 의총을 통해서 결정해야 한다"면서 "당분간은 여러 의원의 의견을 경청하겠다. 상당 시간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원외 당 대표'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노골적으로 선을 그은 것이다. 이는 윤 대통령 의중을 대변해 한 대표에게 곧바로 태클을 건 것으로 해석됐다. 추 원내대표는 24일에도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인 메신저 단체대화방에 "국감을 다 마치고 의원님들 의견을 듣는 의원총회를 개최하도록 하겠다"고 공지했다. 국정감사가 종료되는 다음 달 1일 이후에나 의총을 소집하겠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대표는 법적 대외적으로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통할한다. 원내든 원외든 당 전체의 업무를 총괄하는 임무를 당 대표가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해 '원내 사안'이라는 추 원내대표에게 직접 반박했지만 곧 친윤계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대표적으로 권성동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특별감찰관 추천과 북한인권재단 이사 선임 연동은 우리 당론이고, 당론을 변경하려면 원내대표와 사전에 상의를 해야 했다"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독선이고 독단의 정치"라고 쏘아붙였다. 권 의원은 본인도 검사 출신이면서 "한 대표가 검사 수사하듯이 한 것"이라고 힐난했다.
야권은 한 대표가 특검이 아닌 특별감찰관 제안으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성토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국민의 일관된 요구는 특검을 받으라는 것이다. 범죄 의혹이 태산처럼 쌓여 있으니 수사를 받고 진실을 밝히고, 잘못이 있으면 합당한 처벌을 받으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라며 "적당히 사과하고, 적당히 활동 자제하고, 적당히 인적 쇄신하고, 적당히 특별감찰관 임명하고 해서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답함을 표시했다.
박 원내대표는 "주가조작, 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뇌물 수수, 국정 개입, 인사 개입, 관저 비리, 선거 개입, 국정농단, 마약 수사 무마, 수사 외압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의혹들이 쌓여 있다"면서 "오직 국민만 보고 민심을 따라 피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해 놓고 김건희 특검을 반대한다면 비겁하다는 소리만 듣게 될 것이다. 한동훈 대표는 이제 더 이상 피하지 말고 행동으로 국민 앞에 결기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대표는 채상병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할 말을 할 것처럼 큰소리치다가 윤 대통령 기세에 눌려 항상 흐지부지했다. 늘 용두사미였다"며 "윤석열 정권 출범에 기여한 죗값을 조금이나마 씻을 기회다. 국민의 편에 서겠다면 윤김 부부와 단호히 결별하라"고 했다. 황운하 원내대표도 "어쭙잖은 정치인 흉내 내는 놀이하며 말로만 국민팔이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꼬리를 내리는 '애매모호 한동훈' 그만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길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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