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상급종합병원, 지방 재난기금으로 충당
“윤 정부 의료대란 책임, 지자체에 전가” 비판
“의사들의 야간·휴일 당직비에 대한 정부 지원이 8월부터 끊겼다.”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29일 한겨레에 “수술 등이 줄면서 경영 여건이 상당히 어려운데, 정부가 약속한 당직비 지원까지 중단되면서 곤혹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건강보험공단과 상급종합병원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가 마련한 예비비가 바닥나 대다수 상급종합병원 필수의료 인력의 야간·휴일 당직비 지원이 8월부터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17개 시도 가운데 5곳은 지방정부가 재난지원금을 투입해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나머지 12곳은 끊긴 상태다.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에선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빠져나가면서 전문의가 야근·휴일 근무를 전담하고 있는데, 이들의 인건비 일부에 구멍이 난 셈이다.
정부는 의료공백에 따른 비상진료체계를 위해 3월(1285억원)과 5월(755억원), 총 2040억원의 예비비를 편성해 지원에 나섰다. 상급종합병원의 당직비는 정부 예비비 집행에서 비중이 가장 크다. 허성무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이달 기준으로 집행된 예비비 1854억6500만원 중 의료인력 당직수당이 946억3500만원(51%)으로 절반을 넘었다. 상급종합병원·공공기관 등 신규 채용 인건비(378억2900만원), 군의관·공보의 파견 수당(217억1600만원) 등이 뒤를 따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3차 예비비는 편성하지 않을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추가 예비비 편성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의료 지원에 있어 꼭 예비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산) 전용 등 올해 비상진료체계 예산분은 (모두)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30조원 가까운 세수 결손으로 의료공백 지원에 추가 예비비 배정이 쉽지 않은 상황임을 보여준다.
정부는 대신 지방자치단체의 재난관리기금을 꺼내들었다. 전국의 지자체는 이미 올해 2~9월 의료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484억6900만원의 재난기금을 사용했다. 재난기금은 각종 재난의 예방 및 복구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지자체가 매년 적립하는 법정 의무 기금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월 ‘보건의료 분야 국가핵심기반의 마비’를 재난으로 판단하고 각 지자체에 재난기금 집행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의료공백이 장기화되자,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선 지자체의 재난기금을 비상진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특례를 만들었다. 지자체에 추가적인 재정 투입 압박도 이뤄지고 있다. 박유진 서울시의원(민주당)은 최근 자료를 내어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통해 각 지자체에 총 1712억원(서울시 655억원)의 재난관리기금을 투입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1712억원이면 앞선 두차례 예비비와 맞먹는 액수다. 박 의원은 “윤석열 정부 스스로 일으킨 의료 대란의 책임을 지자체에 전가하는 무책임한 처사”라며 “가장 심각한 것은 의료 대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정부는 독선적 태도를 버리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재난관리기금은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인 만큼, 협조를 요청했을 뿐 강제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 한겨레 김소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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