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당사국에 정보브리핑 하면서 동분서주

국정원, 북한군 '참전'→'위장 파병'으로 표현 바꿔
"관련 정보의 취득 경로는 우크라"라고 처음 공개
'평양 무인기 침범' 북한측 조사 결과 여전히 무시

북 외무상 방러, 파병 비롯한 북러 조약 이행 논의
"북한군 쿠르스크 이동"  한-미-나토 엇갈린 평가

 

정중동. 대한민국이 세계평화를 걱정하면서 백악관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본부를 오가는 동안 러시아 쿠르스크 지방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군의 동향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정작 북한과 러시아는 아직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온갖 가능성을 유포하고 있을 뿐이다.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 이행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0.29. [대통령실 통신사진기자단] 연합
 

지지율 20%의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진 윤석열 정부는 국내 정치적 위기 타개를 위한 적극적 노력을 하지 않고 있으면서, 우크라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북한이 28일 공개한 한국 무인기, 평양 침범 최종조사결과도 외면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2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북한군 러시아 파병에 따른 북한 내부 동향과 온갖 가능성을 전했다. "북한군 참전이 확인됐다"는 지난 18일 자 보도자료에서 후퇴해 '위장 파병'이라고 표현했다.

국회 정보위 여야 간사인 국민의힘 이성권,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의 전언에 따르면 국정원은 북한 당국이 "파병 사실 유출 확산을 의식해 내부 보안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라면서 '왜 남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느냐, 강제 차출될까, 걱정된다'는 군인들의 동요가 감지된다고 보고했다. '파병 형태'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준 군복과 무기 등 러시아 체제 속에 편입된 형태라서 위장 파병"이라고 규정했다. 북한군 병력의 러시아 쿠르스크 이동설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적으로 이동했다고 답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12월까지 파병될 병력 규모는 1만 900명으로 예상했다.

 

27일 북한 국방성은 평양에서 추락한 무인기 비행조종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한국 무인기의 침범이 맞다면서 공개한 비행궤적. 백령도 서부(두무진)에서 이·착륙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24.10.28. [조선중앙통신] 연합
 

이어 전날 러시아 방문에 나선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고위급 채널을 통해 추가 파병, 반대급부 등 후속 협의를 한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북한의 군사적 동향에 대해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과 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가능성, △7차 핵실험 가능성 등을 되풀이 거론했다. 올해 북한 노동자 4000여 명이 러시아에 파견됐으며 광물을 비롯해 국제 제재를 받는 금수품 관련 이면 합의가 이뤄지는 등 경제협력도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군 파병 정보의 취득 경로는 우크라였지만 확인 과정을 거쳤다고 처음 밝혔다. 선제적 공개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 문제로 인식하고 먼저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우리 무인기의 백령도 이, 착륙 및 평양 상공 침범의 증거를 제시한 북한의 최종조사결과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브리핑을 위해 나토본부 및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 중인 정부 대표단은 우크라로 이동할 예정이라고도 전했다.

최 외무상의 방러와 관련, 러시아는 북러 조약 제4조(유사시 상호 군사지원)의 이행과 관련한 논의라고 밝힌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4일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북한 지도부는 제4조를 진지하게 여길 것으로 믿는다"라면서 "그 이행과 관련해 (북한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를 방문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16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24.1.16. EPA 연합
 

윤석열 대통령은 28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례회동 자리에서 "우크라, 중동 등 최근 고조되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대외경제 불안 요인 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는 워싱턴에서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 참석하고 귀국한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도 배석했다.

대통령은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통화, 북한군 러시아 파병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북한군의 우크라 실제 전선 투입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북한의 파병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대러, 대북 추가 제재를 비롯한 대응방안을 모색할 것을 시사했다. 대통령이 나서 우크라 전쟁의 당사자인 미국과 나토에 이어 EU에 관련 정보를 도맡아 브리핑하는, 희한한 상황이다.

김용현 국방장관은 30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로이드 오스틴 장관과 제56차 한미안보협의회의를 한다. 미국 대선을 앞둔 시점에 조 바이든 행정부와 마지막 SCM으로 북러 간 군사협력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 안보리도 이날 한국과 미국, 영국 등의 제안으로 북한군 파병 문제를 논의할 회의를 열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28일 델라웨어주 뉴캐슬 직업훈련센터에서 미국 대선-총선 사전투표를 했다.

 

러시아 병사들이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쿠르스크의 한 마을에서 정찰활동을 하고 있다. 이 사진은 2024년 10월 24일 러시아 국방부가 배포한 비디오를 촬영했다. AP 연합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은 28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군이 러시아 서부로 이동했다는 보도에 유념하고 있다면서 "러시아 동부에서 훈련받는 대략 1만 명의 병사가 향후 수주 안에 우크라 인근의 러시아군 병력을 보강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북한군 일부는 이미 우크라 가까이 이동했으며, 이들을 전투 또는 전투 지원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러시아의 의도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군의 참전 여부는 단언하지 않았다. 쿠르스크 전선 배치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소 엇갈렸다.

앞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도 28일 정부 대표단의 브리핑 뒤 브뤼셀 나토본부 회견에서 "오늘, 나는 북한군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배치됐음을 확인해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군이 러시아의 불법 전쟁에 포함되는 것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다시 위반하는 것인 만큼 러-북은 이러한 행동을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 민들레 김진호 기자 >

 

한-우크라 “전략적 소통 강화”…살상무기 지원으로 이어지나

윤 대통령-젤렌스키 협력 강화
북·러에 당장은 외교대응 나설 듯
우크라·나토 공격무기 제공 요구
갈수록 압박수위 올라갈 가능성

전문가 “윤 정부 너무 앞서 나가
지금은 파장 최소화 노력할 때”

 

 
 
지난해 7월1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 공동 언론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키이우/연합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소통 강화에 방점이 놓인 양국 정상의 29일 통화는 북한·러시아의 위험한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외교적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으로 이어지는 첫 단계가 될 것이란 우려도 함께 나온다.

이날 통화는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정보와 전문기술을 공유하면서 대응책을 조율해 러시아 전선에 파병된 북한군의 공세적 역할을 최대한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미국 정부가 북한의 파병에 대해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을 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정부는 우크라이나 및 유럽의 역내기구들과 공조를 긴밀히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최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유럽연합(EU), 우크라이나 정상과 잇따라 통화한 데 이어,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다음달 4일 한국을 방문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제1차 한-유럽연합 전략대화를 개최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당장의 관심사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무기 지원 단계까지 나아가느냐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과 러시아 움직임에 따라 ‘살상무기 지원’도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해왔고 이날도 “전장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실효적인 단계적 대응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와 나토 등은 한국이 경제적·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넘어 공격무기 지원까지 결단해주길 원한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제전략연구실장은 “공격무기 지원 카드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북한과 러시아 움직임을 봐가면서 대응 수준을 정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지금은 ‘외교의 시간’”이라며 “당장 러시아의 태도를 변화시키기는 어렵더라도 나토, 유럽연합, 우크라이나와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는 것은 합리적인 대응”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당장 무기 지원에 나서지는 않더라도, 우크라이나와의 소통 채널이 긴밀해질수록 결국 우크라이나의 요구에 취약해질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대표단과 특사를 교환하고 다양한 층위의 대화 채널을 만들려는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갈수록 무기 지원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고, 소통이 본격화할수록 요구 수위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 부소장은 “지금은 북한군 파병의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가 너무 앞서나가고 있다. 북·러 밀착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건 필요하지만, 우리가 위험 상황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고 했다.

실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주요 7개국(G7) 빌뉴스 선언에 한국이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주요 7개국 정상들은 지난해 7월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기적인 군사·경제지원을 뼈대로 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는데, 한국도 여기에 동참해달라는 것이다. 북한군 파병이 한국에는 더 강력하고 포괄적인 지원 요구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부 안에도 신중론을 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국 대선이나 우크라이나 전황 등을 고려하고, 대러시아 관계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정교하고 조심스럽게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외교안보라인을 주도하는 게 국가안보실의 강경론자들이란 사실이다.     < 한겨레 박민희 장나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