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언 때 극우적 발언 “에코 쳄버 현상”
기분 좋은 것만 반복해서 보고 듣는 공간에 갇혀
두려운 건 그 사실과 남이 그걸 잘 안다는 사실
‘팩트 체크’뿐만 아니라 ‘내러티브 체크’도 필요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와 7일의 사과담화 발표 때의 윤 씨의 발언은 너무 대조적이었다. 3일 윤 씨 발언을 들으면서 ‘보통(정상) 상태가 아니다’고 느꼈다.” “일종의 정신이상 상태를 느꼈다.”
일본 자위대 육장 출신 마쓰무라 “윤 씨 정상 아니다”
일본 육상자위대 동북방면 총감을 지낸 정보전 전문가 마쓰무라 고로 전 육장(육군 중장)은 8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씨가 자신이 좋아하거나 “자신과 닮은 가치관이나 정보, 주장 만을 반복해서 들려 주는 공간 속에 갇힌 에코 쳄버(echo camber. 반향실) 현상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일본 자위대 최고위급 요직에 있었던 군사전문가가 이웃 한국의 정부 수반이요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계엄령 발령과 동시에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급습한 것도 지난 4월 총선거에서 집권 국힘당이 참패한 것을 부정선거 결과로 의심하는 정상적이지 못한 윤 씨의 정신상태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마쓰무라 전 육장은 3일 비상계엄 선언 때 윤 씨가 “국회는 범죄집단 소굴” “국회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됐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 등 극우 경향의 유튜버나 인플루언서 등이 즐겨 쓰는 표현을 썼다는 데 주목했다.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는 해선 안 될 말을 한 그 극우적 발언의 배경에 “일종의 이상한 정신상태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에코 쳄버 현상’에 빠져 버린 윤 씨
왜 윤 씨가 그런 정신상태에 빠져 버렸을까? 윤 씨가 극우적인 유튜버 등의 프로를 자주 본다는 얘기도 있다고 기자가 지적하자, 마쓰무라는 “지금 감정적인 확신이 냉정한 논리적 사고를 이기는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말했다.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음모론자 집단인 큐아논(QAnon)이 주장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 민주주의 제도 바깥의 숨은 권력집단, 그림자 정부)도 그런 류의 일종이다. 브렉시트(Brexit.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것) 때 영국에서 일시적으로 고양됐던 감정도 그런 것이다.”
그는 이런 현상이 특히 2대 정당제 국가에서 격화되기 쉽다는 얘기가 있다면서 “좋으냐 싫으냐 라는 감정적인 대립에 중간적인 입장이 설 여지가 없어 2개 진영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윤 씨의 경우는 이런 사례들에 비춰봐도 특이하다고 했다.
“윤 씨는 이런 감정 대립을 이용하는 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에 빠져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윤 씨는 왜 그런 감정론에 지배당하게 됐을까?
“윤 씨는 ‘에코 쳄버’ 현상에 빠졌다고 본다. (윤 씨의) 스마트폰에는 알고리즘 조작으로 그의 주장과 비슷한 뉴스만 나온다. 그런 현상은 이미 일반인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이 정치 지도자,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대통령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두렵다. 자신을 지지하고 반대세력을 극단적으로 깎아내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리게 되고, 결국 거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다고 본다. 7일의 대국민 사과 담화를 들어 보면, ‘3일 밤의 (비상계엄 선언 때의) 자신은 이상했다’고 윤 씨 자신도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 여당에도 그 내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윤 씨는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 얘기만 들으려 했다.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확인해 봐야겠지만, 그것을 열었다는 걸 전제로)에서도 그는 논의한 것이 아니라 반대론을 눌러 버렸다.
‘팩트 체크’뿐만 아니라 ‘내러티브 체크’도 필요
마쓰무라는 개인 차원에서는 ‘분노 조절 6초 룰’이라는 게 있다며, “화가 났을 때 냉정하게 6까지 세면서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하면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분노 조절 6초 룰’은 신경과학자 조지프 르두의 연구에 토대를 둔 개념으로, 분노하게 되면 우리 뇌에서 편도체가 활성화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돼 충동적인 행동을 하기 쉬워진다. 6초는 그런 강렬한 감정을 촉발하는 뇌의 작동이 진정되는데 걸리는 필요최소 시간인 셈이다.
마쓰무라는 인터넷 공간이 증폭되고 있는 현대는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팩트 체크’(Fact Check) 뿐만 아니라, 주장하는 사람이 뱉어 놓는 얘기의 배경이나 입장까지 알아 보는 ‘내러티브 체크’(Narrative Chek)도 필요하다면서 핀란드의 예를 들었다. “러시아의 정보공작을 받아 온 핀란드에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정보를 주는 대로 삼키지 말고 여러 매체를 보고 들으면서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아사히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사를 마무리했다.
“한국의 혼란을 보고 이런 (에코 쳄버 같은) 현상이 정치의 세계로 퍼져나갈까 두려워졌다. 사회적으로 어떻게 대응해 갈 것인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두려운 건 그 사실만이 아니라 타국이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현상은 현대에 들어서 생긴 특유의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근대 일본의 조선 강점과 중국대륙 침략 과정에서 보여 준 일본 군국주의자들 광기어린 행태와 수천만의 주민들을 살육한 일본군대의 야만적 행태에 환호했던 대다수 일본인의 행태도 일종의 에코 쳄버 현상이 빚어낸 참사였다.
10여 년에 걸친 극우 성향 아베 신조의 일본사회 우경화와 ‘아베노믹스’에 환호했던 현대의 일본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트럼피즘과 브렉시트가 일종의 에코 쳄버 현상이라면 일본도 별로 다를 게 없다. 자민당의 장기 일당집권 속에 2대 정당제가 사실상 사라져 버린 내각책임제하의 일본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일본 자위대 고위직 출신의 군사전문가가 한국 대통령을 정신이상 상태에 빠진 인물로 보고 있다는 것이고, 한국인들로서는 불길하게도 그 사실과 함께 이웃 나라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울 뿐이다. < 민들레 한승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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