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9년6월서 감형됐지만…1심 판단 유지해
검찰 연어회 파티 등 증거조작 전혀 인정 안 돼
검찰 주장 800만 불 중 200만 불 여전히 유죄
이화영 재판 증거관계 이재명 재판도 영향줄 듯
이재명이 보고 받았는지 여부 등이 쟁점이지만
오염된 증거들…'연어 술파티' 재점화할 수도
이재명 재판부, 이화영에 1심 유죄내린 재판부
이재명 쪽, 유죄심증 우려…재판부 기피 신청해
내란 혐의 국힘은 이떄가 기회다 "재판받아라"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800만 달러 대북 송금에 공모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았지만, 재판부는 대북 송금과 관련해 1심에서의 판단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창작 소설급 증거 조작이 드러났음에도 재판부는 눈을 감은 모습이다. 이 전 부지사의 재판에서 다투는 사실 관계들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재판에도 이어지는 만큼 추후 또다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원고법 형사1부(문주형 김민상 강영재 고법판사)는 19일 이 전 부지사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정치자금법 위반,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 사건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7년 8월에 벌금 2억 5000만 원 및 추징금 3억 2595만 원을 선고했다. 1심보다 징역 1년 10개월 감형한 것이다.
앞서 1심은 지난 6월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9년 6월(정치자금법 위반 징역 1년 6월·특가법상 뇌물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징역 8년) 및 벌금 2억 5000만 원, 추징 3억 2595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에 대해 "특정범죄가중법 위반(뇌물)죄는 공무집행의 공정과 이에 대한 사회의 신뢰 및 직무행위의 불가매수성을 해치는 중대한 범죄"라며 "정치자금법 위반죄는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정치자금과 관련한 부정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자금법의 입법취지를 훼손한 것으로 그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다만 "특가법상 뇌물죄와 정치자금법 위반 등과 관련해선 정치인으로서 부정한 행위까지 나아가진 않았다"며 "이 전 부지사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에게 대납을 강요했다는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 전 부지사가 증거인멸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았다"며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방용철 전 쌍방울 부회장 주도로 (이 사건 범행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1심과 같은 결론을 유지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에 대납하게 했다는 대북 송금액 800만 달러 가운데 북한 스마트팜 사업비용 500만 달러를 무죄로 보고, 나머지 300만 달러 중 "200만 달러는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과 관련한 사례금으로 보기 충분하다"면서 일부만 유죄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1심)의 판단을 정당한 것으로 수긍한다"고 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200만 달러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800만 달러 중 무죄로 판단한 500만 달러를 제외하고 남은 300만 달러(이재명 방북 비용)에 대해 김 전 회장은 그동안 북측 협상 창구가 리호남이었다고 주장해왔다. 북한 정찰총국 대남 공작원 출신인 리호남은 윤종빈 감독의 영화 <공작>에서 안기부 블랙요원 흑금성(황정민 역)의 북측 사업 파트너로 나온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처장 이명운(이성민 역)의 실존 모델이다.
김 전 회장은 그동안 1심 법정에서 "제2회 국제대회 당시 필리핀에서 원래 100만 달러를 주기로 했는데 경비로 여기저기 쓰는 바람에 70만 달러를 먼저 주고, 2020년 1월 15일경 마지막 30만 달러를 중국 심양에서 리호남을 만나서 전달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정작 70만 달러를 줬다고 하는 2019년 7월 필리핀 국제대회 북측 대표단 참가자 명단에 리호남 이름은 없었다는 사실이 2심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는 대북 사업가들의 증언과도 일치했다.
남북경협연구소장 김한신 소장은 "리호남이 나더러 '북한 단천지구 자원 개발은 언제 할 거냐'며 '쌍방울에서는 큰돈도 가져온다' '나노스 주가를 띄워서 그 돈을 빼 중국으로 좀 보내달라'는 부탁을 했다"며 당시 이재명 얘기는 일절 없었다"고 증언했고, ㄱ아무개 대표는 송명철로부터 "리호남은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 국제대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쌍방울이 대북사업을 위해 사업비를 가져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민간 통일교류 사업가인 하동혁 민족통일촉진회 대표도 지난 10월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탄핵 청문회'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을 위해) 필리핀에서 70만 불을 줬다?"라고 의문을 표하며 "(북한) 리호남이 얼마나 능글맞은 사람인데 수교국도 아닌 필리핀까지 가서 어떻게 (자금을) 조달해가느냐"며, 김 전 회장 쪽의 주장을 일축했다.
검찰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증언만 취사선택한 정황도 확인됐다. 권력감시 탐사보도그룹 <워치독>이 접촉한 통일운동가 김아무개 씨는 "수원지검에 출석해 리호남은 마닐라 국제 대회에 오지 않았다고 증언했지만 검찰이 조서에 담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일운동가 김 씨는 9차례 정도 검찰에 출석해 일관되게 리호남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의 진술조서 어디에도 리호남 관련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이 주장한 대북 송금 800만 달러 중 그나마 유죄로 판단한 200만 달러는 북한 송명철 아태위 부실장이 2019년 12월 1일 확인서로 인해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송명철이 쓴 확인서에는 '86만 5800유로와 101만 6321달러를 정확히 인계 받았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이재명 대표의 방북 비용 가운데 일부를 김성태 전 회장 측이 대납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이화영 전 부지사의 공소장 등에서 검찰은 2019년 5월 방북비용 대납을 요구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로 북한 송명철이 200만 달러 영수증을 써준 날짜는 그해 12월이다. 5월에 약속하고 7개월 만에 돈을 준 것인데, 거래 방식 자체도 상식적이지 않을뿐더러 이재명 대표는 그해 9월 법원에서 경기도지사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다. 정치 생명이 끝날 위기에서 방북을 추진했다는 논리 자체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재판에서 이러한 사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날 항소심의 판단은 이 사건과 증거 관계가 상당 부분 동일한 이재명 대표의 쌍방울 대북송금 제3자 뇌물 사건 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 만큼 재판부의 판단 내용이 중요하지만, 여전히 200만 달러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고 있다는 점은 이 대표의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쌍방울그룹 자체의 대북사업 진행을 위한 의도도 포함돼 있으나, 피고인(이화영) 또한 그 지급 명목인 스마트팜 비용 및 경기도지사 방북 비용 대납 요청을 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 대표의 재판에선 유죄로 인정받은 200만 원 등을 중심으로 이 전 부지사로부터 보고받았는지, 이를 알고 있었는지 여부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전 부지사는 지난해 옥중편지를 통해 자신은 쌍방울 측에 대북사업 비용을 요청한 적도, 이재명 당시 도지사의 방북비용을 대신 내달라고 한 적도 없다면서 이를 도지사에게 사전 보고한 적도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김 전 회장도 2019년 1월, 7월 두 차례 이 대표와 통화했다고 주장했지만, 술자리 중 이 전 부지사가 통화를 바꿔주는 형태였고 "대북송금"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회장 본인도 "인사나 하라고 해서 통화했다" "만취 상태로 통화해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아울러 김 전 회장의 최측근이자, 김 전 회장이 '어머니' '스님' 등으로 부르며 각별히 따르는 것으로 알려진 임필순 씨는 최근 <뉴탐사>와 인터뷰에서 "(검찰이) 그물망을 던져가지고 이재명하고 연결이 된 것이 돼버렸지, (김성태가) 사실은 얼굴도 한 번 본 일도 없고 사실은 통화도 안 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김성태가) 협조하고 있지 정부에다가 지금, 검찰에"라면서 "그 얘기 지금 하면 안 된다, 쟤(김성태)가 좀 불리하게 되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과 김 전 회장이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 대표의 재판에서 검찰 쪽은 이 전 부지사의 재판에서 확정된 증거 관계를 가지고 이 대표의 유죄를 추궁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애초 대북송금 사건에서 '연어 술파티' '진술 세미나' 등이 문제가 된 만큼, 검찰의 증거조작 의혹이 다시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판부는 이날 김 전 회장이 자신에 대한 수사 축소 등을 이유로 허위 진술했다는 주장에 대해 "그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가 없어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연어 술파티' '진술 세미나' 등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전 부지사가 검찰청 내 '김성태 술파티'가 열렸다고 지목한 날, 수원지금 고깃집에서 쌍방울 법인카드가 41만 원 결제되고, 김 전 회장의 출정일에 해산물 전문점에서 약 40만 원이 결제됐고, 관련된 법인카드 영수증도 제출됐지만 재판부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추후 이 대표의 재판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있을 경우, '연어 술파티' '진술 세미나' 등 검찰의 증거 조작이 또다시 문제로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 전 부지사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신진우 부장판사가 이 대표의 1심을 맡은 점은 문제다. 이에 이 대표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의 유죄 심증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 수원지법 형사11부(신진우 부장판사)에 대한 법관 기피 신청을 제기했다. 기피 신청 심리가 대법원까지 갈 경우 2~3개월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의 '내란'에 동조한 혐의로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은 이 전 부지사의 판결에서 또다시 유죄가 나오자, 이같은 사정은 배제한 채 "이 대표는 더 이상 사법 방해를 하지 말고, 신속하게 재판받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란 사건에 대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 대표의 이른바 '사법 리스크'를 부각시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회의에서는 이와 관련한 논의가 없었다"고 짧게 말했다. < 민들레 김성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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