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2022~2023년 수시로 찾았다는 무속인 '비단아씨(본명 이선진)'는 24일 전북 군산시 자신의 영업장에서 <오마이뉴스> 등 취재진과 만나 '제보를 결심한 이유'를 질문받고 이 같이 답했다. 그는 얼굴과 이름을 모두 공개한 채 인터뷰에 응했다.
이씨는 노 전 사령관과 관련해 ▲ 자신의 앞날을 주로 묻던 2022년 초와 달리 2023년 어느 순간부터 '나랏일'을 언급하기 시작한 점 ▲ 김용현이 잘 돼야 자신이 서울로 가 일할 수 있다고 말한 점 ▲ 연령대가 다양한 군인 명단을 가져와 배신할 사람이 있는지 물은 점 등을 증언했다. 이러한 이씨의 진술은 12.3 윤석열 내란 사태가 길게는 약 2년 전부터 모의됐을 수도 있음을 뒷받침한다.
노 전 사령관은 이른바 '롯데리아 회동' 등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막후에서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엔 노 전 사령관이 경기 안산시에서 점집을 운영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그의 수첩에서 '사살' 등의 표현이 있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이씨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2022년 2월~2024년 1월 약 30차례 이씨를 찾았다. 이씨는 "그동안 노 전 사령관이 내란을 주도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포함해 다수의 군인과 사업가 등의 사주를 물었다"며 "이후 (내란 관련)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자신에게 말했던 내용과 흡사해 놀랐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씨가 언론에 공개한 노 전 사령관과의 통화 내역은 50여 개에 달했다. 이씨의 휴대전화에 노 전 사령관은 '사주군인'이라고 저장되어 있었고, 통화 녹음파일 대부분은 방문 일시를 정하는 내용이었다.
아래 이씨가 전한 노 전 사령관과의 만남 및 연락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이씨는 노 전 사령관을 주로 '선생님'으로 불렀고, 다른 인물들에겐 '씨' 또는 직함을 붙였으나 일문일답에선 편의상 이름만 적었다.
"노상원, '김용현 잘 풀려야 대통령실 간다' 이야기"
- 언론에 노상원과 나눈 대화를 공개했습니다. 이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 (내란 사태와 관련해) 뭔가가 계속 밝혀지고 있잖아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듯이. 그래서 노상원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면 (내란 사태 진상 파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개인적인 이야기였더라면 절대 말하면 안 되죠. 의사들도 환자들 병명을 얘기하지 않잖아요. (평상시였다면)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근데 이건 나라와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 노상원과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지난 2022년 2월 처음 방문했어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죠. 주로 전화 등으로 사전에 예약을 잡고 왔어요. 통화 녹음이 50여 차례 남아있네요(2022년 2월 2일~2024년 1월 22일 45차례 - 기자 주). 30여 차례 방문했는데 그게 다 점을 보기 위해 다녀간 건 아니었고요. 수업을 한 날도 있었어요.
노상원은 '자신이 역학 공부를 좀 한다'면서 저한테 '당신이 이 정도 (수준으로) 점을 보면 명리학을 추가로 공부하라. 그럼 대한민국 탑(top)을 찍을 것 같다. 자기가 도와주겠다'라면서 저에게 명리학 수업을 해줬어요. 제가 수업에 욕심낼 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군산에) 왔어요. 수업이 끝나면 꼭 무언가를 물어보고 갔고요. 수업은 그렇게 오랫동안 하지는 못했어요."
- 노상원이 어떤 말을 하고 가던가요.
"처음(2022년 2월경)에는 점을 보러 왔는데, 본인과 식구들의 점을 봤어요. 당시엔 노상원이 '정권이 (문재인 대통령으로) 바뀌면서 내가 옷을 벗고 (군을) 나왔다', '이제 어떻게 해서 먹고 살아야 할까' 등을 고민했어요. 최근 뉴스에서 노상원이 성추행으로 불명예 전역한 이야기가 나오길래 놀랐어요. 점집에서 단둘이 만났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고...
어쨌든 그때는 다시 나랏일을 하려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어떤 무당들과 같이 일한다'라는 말도 제게 했었고요. 2023년이 되고 나서는 다시 나랏일 쪽으로 가려는 움직임을 저한테 표해서 '되게 (나랏일 쪽으로) 가고 싶나 보다' 생각했어요. '거사(계엄)를 도모하는 것 같다'라는 것까지는 안 보였고요. '김용현이 (잘) 되면 자신이 (나랏일 쪽으로) 갈 수 있다'면서 '김용현이 정말 잘 풀려야 한다'고 말했어요."
- 노상원이 언제부터 김용현을 언급하기 시작했나요.
"명리학 공부 시작하고, 점집 다녀가면서 친해진 후에 (김용현에 대해) 말해줬는데 그가 국방장관이 되기 전부터 김용현에 대해서 물었어요. '(김용현이)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지', '윤석열의 오른팔이 될 수 있을지' 등이요. 시점은 2023년 상반기로 기억해요. 그러면서 '김용현이 (높은 자리에 가게) 되면 나도 다시 복직이 가능해진다', '김용현이 잘 되면 내가 대통령실에 갈 수 있다'고 했어요. 노상원과의 마지막 만남은 작년 이맘때(2023년 12월)로 기억해요. 그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고 김용현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작년 이맘때보다 조금 더 이른 시점에 두 차례 A4 용지를 들고 왔어요. 그 종이엔 여러 사람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볼펜으로 써왔는데요. 빽빽했는데 그중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은 김용현 정도입니다. 일반 군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도 많았어요. 그러면서 저에게 '김용현과 내가 사실 선후배 사이다. 그래서 김용현이 정말 잘 돼야 한다. 일이 잘 되겠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이씨에 따르면, 노상원은 당시 '그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음 - 기자 주). 저는 '힘들다. 안 될 거다. 어려우니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당신이 정부에서, 나라에서 일할 수 있는 운은 끝난 것 같다'라고 답했어요.
노상원이 '어느 회사에서 고문으로 자신을 섭외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다'라는 말도 저에게 하길래 '차라리 그 방면이 더 좋겠다. 사업 쪽으로 가야 (당신이) 좀 더 편할 것'이라고 조언했어요. (그런데도) 노상원은 '뭔가를 탄탄하게 준비하고 있다'며 '준비하는 일이 무조건 될 것'이라고 되게 확신했어요. 저는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1년을 남기고 탄핵당할 것'이라고 점을 봤는데 노상원은 '절대 탄핵당할 일 없다'고 했죠. 정말 확고하게 이야기했어요."
"노상원 들고 온 A4용지, 군인 이름 빼곡"
- 당시에 김용현의 이름을 보고 누구인지 알았나요.
"저는 그냥 군인으로 보였어요. 노상원도 처음엔 김용현이 누구인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어요. 얼마 지나니 '김용현이 국방장관 자리에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당시엔 김용현이 국방장관이 되기 전이었어요."
- 노상원이 준비하고 있다던 '일'은 무엇이라고 하던가요.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았어요. 다만, 군인들 사주팔자를 가져오면서 '이 사람들과 뭔가를 하려는데 그 일이 잘 진행될 것 같냐'라고 물었어요. 그리고 '본인이 잘 되면 (2024년) 여름쯤 서울에서 지낼 수 있다'고도 말했어요. 노상원은 제게 군인들에 대해서 계속 물어봤는데 '이들이 나를 배신하지 않겠느냐', '이들이 나를 잘 따라오겠느냐', '함께 무언가를 할 때 우리가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등의 질문을 했어요. 무당들이 봤을 때 운 좋은 사람들 사이에 나쁜 기운이 있는 사람이 한 명 끼면 그것 때문에 문제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노상원도 명리학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 운을 물어본 것 같아요."
- 노상원의 A4 용지에 군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담겼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직업이 '군인'이라는 것도 노상원이 알려주던가요.
"제가 점을 보다가 '어? 이 사람도 장군(군인)인데? 이 사람은 여잔데? 직업이 군인이 맞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어요. A4 용지는 노상원이 적은 사람들의 이름과 생년월일로 꽉 차 있었어요. (인원수가) 열댓 명은 되지 않았나 싶어요. A4 용지 상단에는 군인들 이름이, 하단에는 사업가들 이름이 있던 걸로 기억해요.
사업가는 3~4명 정도였고 모두 남성이었어요. 노상원이 그들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그리고 저는 점을 보다가 '이 사람 얼굴을 봐야겠는데'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노상원이 그들의 사진을 찾아서 보여줬고, 네이버에 검색해서 보여준 분들도 있어요. 이름을 검색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워낙 다녀가는 손님이 많다 보니, 그것도 기억은 잘 안 나요."
- 여성 군인과 사업가 등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건가요.
"네. 노상원이 그들에 대해 설명을 하긴 했는데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노트 있는데 못 찾아, 군인 명단 있을 수도"
- 군인들의 사주를 물어볼 때 '뭔가 이상한 일을 꾸미는 건가'라는 생각을 안 들던가요.
"그런 건 몰랐고 '자기편을 만들려고 하나'라는 생각은 했어요. 젊은 군인들의 사주를 두고 '자신과 일을 함께 할 때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까'라는 식으로 제게 물어봤거든요. 뭔가 (꿍꿍이가) 있으니까 물어보겠지요. '노상원이 다시 움직이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노상원이 당신에게 '윤 대통령의 실제 생일은 일반에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말을 했다고요.
"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청와대(대통령실)에 있는 사람들, (대통령실과) 연관된 사람들의 사주팔자를 저에게 물어봤어요. 하루는 제가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사주를 보다가 나중에 소문나면 김건희도 저한테 점을 보러올 수 있겠네요? 대통령도 저희 점집에 올 수 있을까요?'라며 장난을 쳤어요. 그러자 노상원은 '국민들이 알고 있는 대통령의 생일은 (일반에) 표기된 것과 전혀 다르다. 사람들이 대통령 생년월일로 점을 치곤 하는데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어요."
- 노상원이 윤석열과 김건희에 대해 언급한 적도 있나요.
"그러진 않았어요. '대통령은 탄핵당하지 않는다'라는 것만 확고하게 말했고 그 외에는 거론하지 않았어요. 왜 그렇게 확고하게 말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네요."
- 최근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기억난 새로운 사실이 있나요.
"제가 (노상원과 함께) 명리학 수업을 했던 노트가 있거든요. 제 사주팔자도 노트에 쓰면서 공부했고, 노상원 사주팔자도 쓰면서 공부했고... 노상원이 직접 거기에 무언가를 쓰기도 했어요. 그 노트엔 노상원이 A4 용지에 써 왔던 (군인, 사업가 등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 노트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제가 올해 3월에 이사해서 못 찾겠네요. 분명 그 노트를 버리진 않았어요."
- 노상원이 국회의원들의 사주를 본 적은 없나요.
"국회의원에 대해서 기억나는 건 없어요. 그런데 제가 가지고 있는 통화 녹음 중, 노상원이 특정 인물(A씨)을 언급한 게 있더라고요. A씨도 군인이었는데 노상원이 저와 통화하면서 'A씨가 당신 점집에 다녀갔다더라',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물었을 텐데 뭐라고 답해줬나'라고 물었더군요. 저는 '좋게 말씀드렸다'고 답했고요."
- 노상원이 북한이나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은 없나요.
"없어요. 북한 이야기를 했다면 기억에 남았을 거예요. 오로지 김용현과 군인 등의 사주만 물어봤어요. 이번에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저에게 말했던 것들과 흡사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나한테 군인들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물어봤구나', '그래서 김용현이 잘 돼야지 자신이 복직할 일이 생긴다고 이야기한 거구나' 싶었고, '계엄이 올여름에 터지려다 늦춰진 건가. 그때(점집을 찾을 때)부터 이걸(계엄) 준비했나'라는 의문도 들더라고요."
한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이날 오전 노 전 사령관을 내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 오마이 박수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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