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선관위 점거 충격…윤 대통령이 밝힌 이유 도무지 이해불가”
'윤석열이 임명한 동기출신'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대담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24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65)은 춘천지방법원장,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장 등을 역임한 법관 출신이다. 33년간 판사로 재직하면서 지역 선관위원장을 맡은 경험이 있으며, 지난해 7월 대학 동기인 윤석열에 의해 사무총장에 임명돼 논란도 있었다. 선관위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가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것은 35년 만에 처음이다. 사무총장은 선관위 실무를 총괄하는 장관급 자리다.
지난 12월3일, 대통령 윤석열의 갑작스러운 계엄 선포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충격적이었다. 무슨 이유로 계엄을 꺼내들었는지 짐작조차 어려웠던 그날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의문투성이던 이번 계엄 사태 미스터리는 12일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어이없이 해소됐다.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헌법기관들과 정부 기관에 대해 북한의 해킹 공격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번에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0.73%포인트 차 대선 신승과 총선 참패 후 일부 유튜버나 극성 지지자들이 제기하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현직 대통령 입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온 순간이었다. 그의 담화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윤석열과 지지자들은 내란의 위헌성을 희석하기 위해 부정선거 음모론을 확산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고 있다.
24일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만난 김용빈 사무총장은 부정선거 음모론이 선관위 공격에 그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제도 자체를 형해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극화된 정치 상황과 (유튜브 등) 미디어 알고리즘을 통한 확증편향”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관위가 저지르는 개별적인 잘못이나 실수를 질책하시더라도,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선거 공정성 자체를 의심하진 말아달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헌재나 내란죄 수사당국 요청 땐 서버 검증에 응할 용의 있지만
설계도·소스코드 등 노출되면 당장 내년 재·보궐 선거 못 치러
국정원에 모든 접근 권한 줬지만 해킹·조작 흔적 전혀 찾지 못해
분류기의 정확성은 이미 입증 모든 투표지 수검표 절차 도입
미디어 알고리즘 통한 확증편향 숱한 음모론에 불쏘시개 역할
선관위 개별 잘못 질책하더라도 공정성 자체 의심하지 말기를
비상계엄 비상근무 지침도 전달 안 돼
- 지난 3일 밤 계엄군이 선관위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이 계엄이 부정선거 음모론과 관련 있을 거라고 짐작하셨나요.
“전혀요. 집에서 TV로 계엄령이 선포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지만, 계엄군이 선관위에 들어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설령 계엄사령부가 행정·사법 업무를 관장하더라도, 선관위는 독립적인 헌법기관이고 사령부에 이관할 업무 자체도 없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원래 비상사태가 되면 비상근무 지침이 전달돼야 하는데 청사에서 아무 연락도 안 오는 겁니다. 청사 근처에 사는 선거정책실장이 ‘직접 청사에 가보겠다’고 하더니, 밤 12시쯤 전화가 왔어요. 계엄군에게 청사가 점거당했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당직 직원들은 모두 휴대폰을 뺏긴 채 격리돼 있어서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계엄군이 선관위를 점거한 이유는 저도 뒷날 대통령 담화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대통령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여전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내란 수사를 통해 계엄 세력이 선관위 직원 수십명을 감금하기 위해 케이블타이와 복면을 준비하려 했던 정황까지 드러났습니다. 직원들의 불안감도 클 것 같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계엄군이 선관위에 들이닥쳤던 날 당직 근무했던 직원 5명은 물론,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은 직원들에게 정부 기관이 운영하는 심리·상담 치료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놓은 상황입니다.”
선관위에 투입된 군인은 과천·관악 청사와 선거연수원까지 모두 합해 300명에 달한다. 계엄군이 투입된 시간은 지난 3일 오후 10시30분쯤으로, 윤석열이 TV 생중계로 긴급 대국민 성명을 낭독하기 시작한 지 불과 6분 만이다. 이들은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후에도 한동안 청사에 남아 있다 3시간20여분 만에 철수했다.
- 계엄군이 철수한 후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계엄군 동선을 확인하셨을 텐데, 구체적으로 파악한 피해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 선관위 시설이 피해를 입은 것은 없습니다. 서버에 접속해 자료를 반출한 흔적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만 계엄군이 특정 서버의 사진을 찍어갔는데, 사전투표에 사용되는 통합선거인명부 관리 서버입니다. 사진 찍는 행위 자체만으로 서버에 영향을 미칠 순 없지만, 해당 서버 위치 노출로 인한 보안 우려는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외부 불순 세력이 침입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특정 서버의 탈취가 더 용이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서버 위치를 재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재배치에만 20억원의 추가 예산이 든다고 합니다. 전문가 자문 결과 당장 심각한 보안 위기가 발생한 건 아니라서, 다른 대책을 세워 보안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서버 외부와 완전 분리, 해킹 원천불가
- 대통령은 담화에서 지난해 하반기 선관위가 북한의 해킹 공격을 받았고, 국가정보원이 실제 해킹을 시도해보니 데이터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선관위가 해킹 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선관위 서버는 외부와 완전히 분리돼 있는 폐쇄망이어서 외부에서 망을 통한 해킹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지난해 국정원·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합동으로 진행한 보안 컨설팅에서도 해킹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국정원 점검 결과 방화벽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비밀번호도 ‘12345’로 단순해서 해킹이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했지만, 그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국정원 모의 해킹은 방화벽이 뚫린 상황을 가정하기 위해 저희가 모든 보안조치를 일시적으로 해제해준 상황에서 진행한 겁니다. 또 비밀번호 등 보안 컨설팅에서 지적된 취약점은 모두 즉시 보완해 각 정당 참관인 입회하에 이행 여부까지 점검을 완료했고요.”
- 대통령실과 국정원은 당시 보안 컨설팅 점검 범위가 전체 선관위 전산장비 6400여대 중 317대(5%)에 국한됐기 때문에,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선관위는 보유하고 있는 전산장비에 대한 모든 접근 권한을 국정원에 부여했습니다. 저희가 제한한 게 아닙니다. 국정원이 중요 장비 위주로 범위와 대상을 선정해 보안점검을 실시한 겁니다. 전체 6400여대 중 317대라고 하면 숫자상 적어 보이지만, 저 6400대에는 전체 선관위 직원들의 일반 컴퓨터가 포함돼 있어요. 선관위 직원들은 모두 컴퓨터가 두 대씩 있는데 하나는 외부 접근이 불가능한 내부 폐쇄망, 다른 하나는 인터넷이 연결되는 외부망입니다. 외부망 컴퓨터에는 중요 정보가 없습니다. 국정원이 조사한 317대에는 선거정보를 관리하는 담당 부서 직원들의 내부망 컴퓨터와 상당수 서버가 포함돼 있었을 겁니다. 국정원은 점검 당시 전체 서버를 볼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실제 대부분 서버를 다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해킹·조작 흔적을 못 찾은 겁니다.”
- 그동안 부정선거론자들은 ‘떳떳하면 서버를 까라’는 주장을 되풀이해왔습니다. 공개적으로 서버를 오픈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까.
“사실 대통령까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마당에, 아예 서버를 공개해 모든 의혹을 불식시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관위는 법에 의해 국가정보시설로 지정돼 있어서 스스로 국가 기밀정보를 유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지만, 탄핵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나 내란죄 수사기관이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을 판단하기 위해) 서버를 검증하자고 하면 응할 의사가 있습니다. 부정선거론자들은 서버 안에 통합선거인명부를 조작하는 프로그램 등이 깔려 있어서, 투표를 안 했는데도 한 것으로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서버의 보안벽을 전부 허물고 소스코드를 공개하면 그 의혹은 해소할 수 있겠죠. 다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요. 서버 구조, 설계도, 제조사명, 소스코드 등 정보가 노출되면, 그때는 정말 보안이 취약해져서 그 상태로 다음 선거를 치르기 어려워집니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서버를 전면 재구축해야 해요. 그리고 서버를 재구축하고 난 다음에는 2년 가까운 안정화 기간이 필요합니다. 게임만 해도 새 버전이 출시되면 베타서비스를 거치잖아요. 그런데 당장 내년 4월2일에 통합선거인명부를 사용해야 하는 재·보궐 선거가 있습니다. 안전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서버로 선거를 치렀다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선거 자체가 불능(무효화)이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요.”
부정선거 소송, 물적 증거 전무
- 그런데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대한민국 선거는 실물투표로 이뤄지는데,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처럼 서버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선거 결과를 조작하는 게 가능합니까.
“제가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실물투표에 기반한 우리 선거제도하에서 실질적으로 선거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시군구 선거위원회에서 수기로 작성하는 개표 상황표입니다. 설령 통합선거인명부에 기재된 사람들의 사전투표 결과를 전산상으로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치더라도, 누군가를 지우거나 더하면 결과값이 달라지기 때문에 실물투표 개표 상황에서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어요. 전산으로 조작한 수치와 실물투표지 개표 결과를 맞추는 것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그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부정선거가 이뤄지려면 선관위 내부자, IT업계 전문가, 투표지 인쇄 담당자, 투표함 관리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해야 합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참관인 등의 눈을 피해) 각자 분담한 역할을 007 작전하듯 실행해야 하는데, 그런 인적 증거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어요. 그런데 21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해 이제까지 126건의 부정선거 소송이 제기됐는데 하나라도 인적 증거가 나온 게 있습니까. 물적 증거도 나온 게 없습니다. 이제까지 선관위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한번도 발부되지 않은 것은 법원이 편향돼서가 아니라, 서버 검증이 필요할 만큼 혐의가 소명된 게 하나도 없어서예요. 저희가 서버를 보호하려는 것은 부정선거를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걸 공개하는 순간 다음 선거 때 보안 대책을 마련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 부정선거론자들은 투표지 분류기에 대한 해킹 가능성도 제기합니다. 한국에서 투표지 분류기를 수입해간 키르기스스탄 등에서 부정선거가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요.
“투표지 분류기는 수많은 선거 소송을 통해 이미 그 정확성이 입증됐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자꾸 반복돼서 22대 국회의원 선거부터는 아예 선거사무원이 모든 투표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수검표 절차를 도입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기계로 자동 분류한 투표지를 곧장 심사 계수기에 넣었는데, 지난 선거 때는 분류기 작업과 선거사무원의 확인, 그리고 심사 계수기 작업까지 투표지를 세 번 확인하도록 한 겁니다. 투표지 분류기 해킹도 사실 불가능합니다. 무선 랜카드도 아예 빼버렸어요. 프로그램 구동을 위해 USB는 안 쓸 수가 없는데 이것도 22대 국회의원 선거부터는 인가된 보안 USB만 인식할 수 있는 매체제어 프로그램을 심어서 보안을 한층 더 강화했습니다.”
- 부정선거 음모론의 역사는 짧지 않습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제기돼왔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나서서 부정선거를 언급한 이번 사태는 이 문제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 같습니다.
“2002년에는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이 전자개표 조작설을 제기했고, 2012년에는 진보진영 지지자들이 투표지 분류기 해킹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영화 <더 플랜>까지 제작했고요. 이같이 진영을 불문하고 일정한 주기로, 유사한 논리를 동원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의혹에 실체가 없으며 부정선거 주장이 정치적 이유에 따라서 이뤄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음모론,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위협
- 허위사실에 기반해 반복적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유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부정선거 의혹 제기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광범위하게 보호받아야 하고, 사회적 자정 기능에 맡기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지금 현대 사회가 데모크라시(민주주의)에서 미디어크라시(대중매체가 막강한 힘을 갖고 사회를 지배하는 체제)로 이전하는 단계라는 겁니다. 미디어의 선동과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때문에 자신이 선호하는 정보만 반복학습하는 확증편향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극도로 진영화된 사회에서 이러한 미디어크라시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당선되지 않으면 선거 절차 자체를 공격하게 만듭니다. (유튜브 같은) 매스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해 선거관리 업무 자체를 방해할 목적으로 명백한 허위사실을 반복적으로 유포하는 사람을 지금은 현행법상으로 딱히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습니다. 지금 같은 국가 비상사태에서 당장 공론화는 어렵겠지만 차후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도 부탁드리고 싶어요. 선관위가 부정선거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지난 22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모든 선거 절차를 보다 더 투명하게 공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전·우편투표함 보관기간 중에는 누구나 보관장소를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CCTV 영상을 24시간 공개하고 있고, 개표날에는 투표함을 차에 실어 개표 현장으로 옮기는 과정까지 모두 생중계하고 있습니다. 선관위 홈페이지나 유튜브 채널에 들어오시면 의문 사항을 언제든 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으니까,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 사무총장은 선관위도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 나가겠다고 했다. 최근 선관위는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불허해 논란이 되자 입장을 번복하기도 했다. 그는 “선관위가 개별적으로 저지르는 실수나 잘못에 대해 질책하시더라도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 자체를 의심하지는 말아달라”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은 선거의 정당성을 훼손해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위협한다. 선관위도 앞으로 더욱 투명하고 정확한 선거정보 전달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경향 정유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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