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계속 그 자리에 있으니 불안하다"  호소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뒤 4일 새벽 국회 앞에서 군용차량을 시민들이 둘러싼 채 막아서고 있다. EPA 연합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 늦은 시간에 90살이 다 된 동네 어머님들이 하나둘씩 찾아오셨어요. 어디로 숨어야 하느냐고 묻는데, 저도 사지가 떨리더라고요.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우리는 아니까….”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뒤 광주에서 계엄군의 폭력과 학살을 직접 목격한 양재혁 5·18 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은 지난 3일 또다시 그날의 악몽을 떠올렸다고 했다. 12·3 내란사태로 계엄군이 국회로 들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며 “그 끔찍한 역사가 다시 펼쳐지리라고 상상도 못 했다”고 토로했다. 사태가 안긴 충격은 그로부터 20여일이 지난 24일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양 회장은 이날 한겨레에 “혹시나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이 인용되지 않을까 봐, 윤 대통령이 복귀해 2차 계엄을 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심장이 벌렁거려 잠들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12·3 내란사태는, 5·18과 더불어 양 회장에게 한순간 충격을 넘어 지속적인 불안과 공포를 안기는 경험이 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 전날인 지난 13일 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이아무개씨가 헬리콥터가 여러 대가 국회로 향하고 있다며 한겨레에 보내온 사진.
 

24일로 12·3 내란사태가 벌어진 지 20여일이 지났지만 시민들의 충격은 지속해서 이어지는 모양새다. 믿고 있던 일상과 사회 체계가 대통령 한명에 의해 무너질 뻔한 경험을 한 가운데, 치유의 첫 단계인 윤 대통령과 여당의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12·3 내란사태 이후 잠을 뒤척이며 관련 뉴스를 찾아보거나, 헬리콥터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이아무개(57)씨는 지난 13일 밤 11시께 한겨레에 헬리콥터 여러 대가 국회 쪽으로 향하는 것 같다는 제보 전화를 했다. 그는 “한밤중에 헬리콥터 소리가 계속 들려 궁지에 몰린 윤 대통령이 2차 계엄을 준비하는 걸까 봐 걱정돼 제보를 했다”며 “다행히 아무 일 아니었지만 직무 정지된 상황이라도 윤 대통령이 계속 그 자리에 있으니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국회에서 상황을 가까이 지켜봤던 이들의 공포는 더 크다. 3일 밤 다른 보좌진과 국회 본청을 지킨 김재상 비서관은 “비상계엄을 겪은 뒤부터 막연한 상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출근할 때 국회 경비대를 보면 지금은 이들이 국회 정문을 지키고 있지만 언제 우리를 막아설지 모르고, 어떻게 제압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장소인 국회에 무장병력이 진입하면서 사회적 약속이 깨졌다는 충격 탓에 후유증이 지속되는 것 같다”고 했다.

‘대북 도발’이나 ‘사살’ 등 계엄과 함께 실제 목숨을 위협하는 조처까지 언급됐던 정황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며 공포와 불안의 크기가 커진 면도 있다. 내란 사태 당일 국회 앞으로 달려갔던 직장인 김홍민(29)씨는 “계엄군이 국회에 들이닥치는 걸 보고 유혈 사태로 번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당시에도 긴장을 많이 했다”며 “이후 실제 북한과의 국지전까지 벌이려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걸 보고 아찔한 감정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양 회장도 “이번 계엄이 성공했다면 얼마나 많은 시민이 또다시 피를 흘릴 뻔했느냐”며 “이 땅에 다신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한겨레 박고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