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4일만에 덴마크-미-그린란드 회의 발족키로

덴마크, 영토주권 강조하면서도 "안보 논의는 필요"

트럼프, 중국 '북극 실크로드' 계획 6년 전부터 경계
희토류-흑연-원유 자원에 북미 대륙과 가까운 이점
3자 대화 진행 과정에서 트럼프의 '속내 '드러날 듯

 

내연기관 자동차 대국과 인공지능(AI) 대국. 화성 정복과 영토 확장.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밝힌 두 개의 목표다. 지난 20일 취임사에서 미국의 막대한 원유-가스 에너지를 토대로 최강의 제조업 국가가 되겠다고 하더니, 다음 날 글로벌 AI 합작회사 스타게이트(Stargate) 설립을 발표했다. 미국의 황금시대를 열겠다며 강조한 '프론티어'도 부조화다.

 

1940년 제작된 '아메리칸 테크네이트' 지도.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급진 기술주의를 주장한 하워드 스콧이 제작했다. 효율적인 과학적 기술주의 운동은 대공황 시대의 좌절을 겪은 미국에서 바람을 일으켰지만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소멸됐다. 지도는 그린란드와 캐나다, 멕시코, 카리브해 지역 및 남미의 콜럼비아와 베네수엘라, 기아나를 죄다 미국 영토로 표시했다. 영토 확장을 시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25.1.27. [컬럼비아 대학 도서관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화성에 성조기를 꽂겠다고 다짐하더니, 19세기 제국주의식 영토확장 의지를 밝혔다. "미국 안보에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확보하는 데 군사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겠다. (7일, 마러라고 발언)"는 것.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엇갈리는 행보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일단 지정학적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문제부터 살펴보자.

 

트럼프식 게임의 제1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불쑥 내던진 말로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를 한껏 고조시킨 뒤 시차를 두고 나오는 행동을 봐야 속내가 드러난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뒤 협상에 나서는 게 그의 거래의 법칙. 1기에 비해 속도가 더 빨라졌다. 세계가 '충격과 공포' 단계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24일 북극 안보를 의제로 '덴마크-미국-그린란드' 3자간 대화 채널을 구성키로 기초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트럼프의 최근 발언을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는 '국제안보'를 위해 그린란드가 필요하다. 그 주변에 중국 선박과 군함이 있다.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유지하는 데 큰 비용이 들기에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린란드 사람들도 덴마크 (지배)에 행복하지 않다. 우리와 함께 하면 행복할 거다. (20일, 행정명령 '서명 쇼' 도중 발언)"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가 '국가안보' 차원에서 필요하다.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 (7일, 마러라고 발언)" 그린란드의 독립 희망도 슬그머니 부추겼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 착륙한 도널드 트럼프 전용기. 대통령 취임을 앞둔 지난 7일 트럼프의 아들 트럼프 주니어가 타고 왔다. 그는 '개인적으로 관광 여행을 왔다"라면서도 "그린란드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인사를 대신 전한다"고 말해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야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는 이날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차지하는 데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해 파란을 일으켰다. 2025.1.7. 로이터 연합
 

덴마크와 유럽은 충격에 휩싸였다. '군함 외교'를 시사한 트럼프의 발언 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조약 제5조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덴마크 역시 나토 동맹국이기에 "한 나라가 공격받으면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규정에 따라 나토가 집단 방위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공격 주체가 나토의 맹주인 미국이라면, 대서양 양안의 안보 구도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장노엘 바로 프랑스 외교장관이 벌써부터 영토의 불가침성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다.

 

유럽의 허둥거림을 대변하는 게 로베르트 브리거 유럽연합(EU) 군사위원장의 25일 발언이다. 그는 "그린란드에 미군뿐 아니라 EU 병력도 주둔하는 것을 고려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력이 없는 EU 군사 수장이 내놓은 '선문답'이었다. 당사자인 덴마크와 그린란드가 발끈한 건 물론이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트럼프의 '무력사용 불사' 발언이 나온 7일 "그린란드는 매매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으며 "그린란드는 그린란드인의 것이라는 게 덴마크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2019년 트럼프의 매입 제안에 "말도 안된다(absurd)"라며 일축한 것과는 다소 다른 뉘앙스다. 트럼프는 당시 덴마크 방문을 돌연 취소, '뒤끝'을 보였었다. 덴마크 정부는 '북극 안보'를 의제로 미국과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상대적으로 발언이 자유로운 국회의원(안데르스 비스티센)이 23일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에 대해 "젠장, 꺼져라(Fuck off)"라는 욕설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린란드 자치정부도 반발하는 한편,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미군이 1943년부터 주둔해 온 그린란드 피투픽 우주군 기지 전경. 미국 연방정부가 2005년 영문판 위키페디아에 게시한 사진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그린란드 피투픽 우주군 기지. 2023년 10월 4일 촬영된 사진이다. [로이터 자료사진]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자치정부 총리도 21일 "우리는 미국인도, 덴마크인도 되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린란드 인이다"라며 미국의 51번째 주는 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비비안 모츠펠트 자치정부 외교장관은 "수일 내 트럼프와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라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교장관과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24일 첫 통화에서 북극 안보를 의제로 덴마크, 미국, 그린란드 3자 대화에 합의했다고 라스무센 장관이 밝혔다. 그런데 트럼프는 왜 6년 째 그린란드에 집요하게 집착할까?

 

뉴욕타임스 외교안보 전문기자 데이비드 생어는 "분명한 사실은 트럼프가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 획득에 진짜 진지하다는 점"이라면서 "전직 부동산 개발업자가 실제로 땅을 원할 수도 있고, '포함 외교'를 통해 그린란드에 기존 군기지에 대해 추가 기지를 건설하려고 할 수도 있다"고 추측하는 데 그쳤다. 미국은 1943년부터 그린란드 군사기지를 두고 있다. 공군 기지에서 출발, 미사일 방어(MD)망의 핵심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피투픽 우주군 기지다. 냉전시대 에는 미군 수천 명이 주둔했지만 지금은 수백명 규모로 알려졌다.

 

한반도 10배 면적(2,166,086㎢)에 인구 5만 6000여 명인 그린란드는 동토의 땅이었다. 그러나 얼음이 녹아 북극 항로가 열리면서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항로는 그린란드의 풍부한 자원 개발와 운송을 용이하게 한다. 유럽보다 북미 대륙에 훨씬 가깝다는 지정학적 위치도 트럼프의 관심을 끌 요인으로 지적된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오른쪽)와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자치정부 총리가 10일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10. EPA 연합
 

관세뿐이 아니다. 트럼프의 대외전략은 "중국에서 시작해서 중국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이 '북극 실크로드(Polar Silk Road)'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일찌감치 그린란드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2019년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처음 내비친 것 역시 중국과 무관치 않다. 2018년 그린란드 내에 공항 3곳의 건설에 자금을 대려는 중국의 시도를 미국 국방부가 나서 간신히 중단시킨 뒤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 선박의 북해권 출입은 더 늘었다. 러시아의 양보 덕분이다. 러-중 해군은 북극 인근 해역에서 연합훈련도 실시했다. 중국은 말래카 해협~수에즈 운하를 잇는 기존 항로보다 짧은 북극 항로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편, 천연자원 개발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린란드는 흑연과 희토류는 물론 원유와 천연가스도 풍부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인용한 미국 지질조사국(USGS) 자료에 따르면 그린란드의 희토류 매장량(150만t)은 미국의 180만t보다 작다. 매장량 4400만t의 중국에 맞서기엔 족탈불급이다. 그러나 북미 대륙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이 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필수 소재인 흑연도 많다. 중국은 희토류와 흑연 수출을 제한, 서방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175억 배럴의 원유와 148조 20억 입방피트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도 추정된다. 빌 게이츠의 에너지 벤처자금이 투자된 '코볼드(KoBold) 메탈'은 몇년 전부터 AI를 통해 그린란드의 광물 매장지역을 탐사하고 있다.

 

그린란드 지도와 이곳에 대한 영토확장 의지를 공공연히 내비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실루엣. 2025.1.15. 로이터 연합
 

조 바이든 행정부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한국과 일본을 고별방문한 뒤 지난 8일 프랑스에서 트럼프의 그린란드 구상에 대해 "실현될 수 없는 아이디어가 분명하다"라면서 선을 그었다. 그 시간에도 트럼프의 그린란드 구상은 무르익고 있었다. 트럼프의 흉중을 바이든의 관점에서 읽으면 허방을 짚기 십상이다.

 

트럼프 1기의 마지막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2019~2020)을 역임한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지난달 말 "그린란드가 미국 방위에 중요하다는 대통령 당선자의 말은 100% 맞다"라고 단언했다. 자신의 X 계정에 "우리는 덴마크인을 사랑하지만, 몇 대의 드론을 추가 배치하고, 개썰매팀이나 탐사선을 늘리는 것으론 러시아-중국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그린란드를 지키는 데 충분치 않다"라면서 "우리의 위대한 동맹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지킬 수 없다면, 미국이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북극을 무장하고 중국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미국과 나토가 안보적 고려를 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라스무센 덴마크 외교장관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덴마크-미국-그린란드가 3자 대화에 이미 합의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덴마크와 그린란드에는 영토주권이 걸린 문제이기에 대화가 순탄하기 진행되기는 어려울 걸로 전망된다. 중요한 건 대화체를 구성키로 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트럼프 외교안보팀은 취임과 동시에 덴마크 및 그린란드와 대화를 시작할 방안을 준비해 왔다. 취임 나흘 만에 3자 대화에 기본적인 합의가 이뤄진 배경이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 남쪽 80㎞ 지점에서 지구온난화로 녹은 세메크 빙하가 흘러내리고 있다. 2021년 9월 11일 촬영된 사진이다.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 

 

미국은 1867년 제정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했을 때부터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여왔다. 트럼프에겐 '점령'이건, '매입‘이건, '협력'이건 중요하지 않다. 미국 국익을 극대화할 수만 있다면 방식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짖는 트럼프'와 '무는 트럼프'는 다르다. 1기 행정부 취임 첫 해 "북한을 절멸시키겠다"며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뒤 2018년 돌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마주 앉았던 트럼프다. "군사력 사용" 암시는 긴장을 고조시키는 단계에 한 말로 읽힌다. 그가 그린란드에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는 대화 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민들레 김진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