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힘’을 키우기보다는 상관에 대한 충성과 명령에 대한 복종을 지나치게 강조

국가방위에 헌신하라고 세금으로 육성한 육군의 정예 장교들이 거꾸로 국가에 대한 공격

육사 네트워크란 사적 인맥이 공적 지휘체계보다 앞서는 경우가 12·3 내란 사태 때 민간인 신분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정보사 현역 장교들을 지휘한 데서 드러났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왼쪽부터). 
 

“이유를 대지 마라”

1980년대 중후반 육군사관학교(육사)를 다닌 한 예비역 영관급 장교에게 “한국 현대사에서 육사가 쿠데타의 주역이 된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육사 생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누가 봐도 명백한 불법 명령은 따르지 말아야겠지만, 상관의 명령이 내가 보기에 부당하더라도 일단 따라야 한다고 배웠다”고 전했다. 현재 군 지휘부를 구성하는 육사 출신 장군들이 다녔던 1980년대 중후반 육사 교육과 학교 분위기가 ‘생각의 힘’을 키우기보다는 상관에 대한 충성과 명령에 대한 복종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2023년 5월 육사 29기, 39기, 69기 모교 방문 행사 모습. 육사 페이스북

 

지난해 12월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그 상황에서 왜 그랬냐’ 하는데,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위기 상황이잖아요. 군인은 그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을 해요. 위기 상황이니까 맞나 틀리나 그거 따지기가 쉽지 않아요. 원래 계획이 이렇게 돼 있으니까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준비해야 하지 않냐 그런 거죠.”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변호를 맡은 김인원 변호사도 “당시 피고인(이진우)은 시간 여유가 없었고 법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국방부 장관의 명령이 위헌인지 불법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며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진우와 여인형은 육사 48기(1988년 입학) 동기다. 여인형과 이진우의 주장에는 “이유를 대지 마라”던 1980년대 육사 분위기가 강하게 묻어 있다.

 

육사는 한국 현대사에서 3차례나 쿠데타 주역으로 등장했다. 1961년 5·16 쿠데타 때는 김종필 등 육사 8기, 1979년 12·12군사반란 때는 전두환 등 육사 11기, 이번 12·3 내란사태 때도 육사 출신 현역·예비역 장군들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육사 38기), 계엄사령관을 맡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육사 46기),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육사 47기),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육사 48기),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육사 48기),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육사 50기) 등이다.

 

국가를 전복시키는 행위를 뜻하는 쿠데타는 프랑스말이다. 이 말의 본뜻은 ‘국가에 대한 공격'을 의미한다. 육사 누리집이 밝힌 학교 목적은 “국가방위에 헌신할 수 있는 육군의 정예장교 육성”이다. 국가방위에 헌신하라고 세금으로 육성한 육군의 정예 장교들이 거꾸로 국가에 대한 공격(쿠데타)에 세 차례나 앞장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육사 생도들이 기말고사를 끝내고 3주간의 겨울휴가를 떠나고 있다. 육사 페이스북
 

한해 육사 모집 인원이 330명가량이고 이 중 4년 교육을 마치고 280명 정도가 육군 소위로 임관한다. 육사는 전면 무상교육이다. 4년간 학비가 없고,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옷도 준다. 사관생도는 월급도 받는다. (2025년 기준 1학년 121만 5000원, 2학년 135만원, 3학년 150만원, 4학년 165만원)

 

육사 생도 1명을 4년간 가르쳐 졸업시키는데 세금 2억5천만원이 들어간다. 이 가운데 직접비는 급여, 급식, 피복, 탄약, 교보재 등이고 간접비는 인력운영, 장비·시설유지, 유류 등이다.

 

‘막대한 세금으로 육성된 육사 생도들이 감사할 줄 모른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나왔다.

‘인격론에 근거한 군대윤리 연구‘(2014년 2월 윤경호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에는 가까이서 생도들을 지켜본 이들의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생도 태도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감사할 줄 모른다’입니다. 종교 행사 때 많은 사람이 어렵게 마련한 음식과 시간에 대해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생도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타인들의 노고와 수고가 보이지 않거나 당연하다고 느끼나 봅니다. 그런 태도는 근본적으로 이 학교가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데 있다고 봅니다. 공짜로 지내는 것에 익숙하고 작은 일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구조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격교육이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들이 군의 주축이 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대단히 중요한 오류가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어느 목사의 말)

 

“생도들에게 이렇게 많은 세금을 쓰는데, 이렇게 무기력하고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데 화가 난다. 나는 같은 또래로서 어렵게 학비를 벌고 노력해서 학교를 다닌다. 그래도 공부에 대한 열정과 가치를 존중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생도들은 이렇게 비싼 교육기관에서 무관심하고 열정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를 느낀다.”(사관학교 근무 기간병의 소원 건의 중에서)

 

오래 전부터 육사 출신이 진급에서 앞섰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육사 출신들이 장군을 독식한다”는 불만이 학군(ROTC) 등 비육사 출신에서 터져 나왔다. 육사 출신이 아니면 대령에서 장군 진급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고, 비육사 출신이 어렵게 별 한 개를 달아도 별 두 개, 세 개를 달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좁은 문이 됐다.

 

지난 2023년 후반기 장군 인사 결과를 보면, 대령에서 준장(별 1개)으로 진급한 52명 가운데 육사 출신이 36명(69.4%)이었다. 육군3사관학교(3사) 출신은 5명(9.6%), 학군 출신은 5명(9.6%), 학사 출신은 4명(7.6%), 여군은 1명(1.9%), 간호는 1명(1.9%) 등이었다. 준장에서 소장(별 2개) 진급자 14명 가운데 육사 출신은 12명(85.8%)이었고, 3사 출신 1명(7.1%), 학군 출신 1명(7.1%)이었다. 소장에서 중장(별 3개)으로 진급한 7명 가운데 육사 출신 6명(85.7%)이고 학군 출신 1명(14.3%)이었다.

 

이번 내란 사태로 구속된 소장, 중장, 대장이 육사 출신 일색인 것은 원래 육군 고위 장성 중에 비육사 출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육사 출신의 현역 지휘관과 예비역 장군들이 내란을 주도해, 이참에 사관학교 제도의 태생적 한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군별로 육해공군사관학교를 두지 말고 융복합 시대 추세에 맞게 국방부 산하 국군사관학교로 통합하는 방안, 육군사관학교와 육군3사관학교를 통합하고 학군사관제도와 학사사관제도를 통합하자는 제안은 예전부터 나왔다.

 

폐쇄적 육사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젊은이들이 사회와는 단절된 상태에서 육사에서 학생도 군인도 아닌 상태로 4년간 학습하고 임관해 40, 50대까지 군 생활을 한다. 이들은 전역 후에도 육사 동기 선후배 관계가 그대로 이어진다.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12·3 계엄 내란 사태를 통해 드러난 한국 국방의 문제점과 극복 방안’ 세미나에서 김덕기 청주대 군사학과 교수는 “이들이 사관 생도 때 만난 선배, 동기, 후배 관계가 임관 이후 평생 지속되는 가장 중요하며 유일한 네트워크가 된다. 이들은 명령체계에만 익숙한 나머지 국가와 사회의 다른 구성원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 서투르다”며 “사관생도에 대한 민주시민교육과 사관학교가 군 이외의 민간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육사 네트워크라는 사적 인맥이 공적 지휘체계보다 앞서는 경우가 12·3 내란 사태 때 민간인 신분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정보사 현역 장교들을 지휘한 데서 드러났다.

 

육군사관학교의 영문 표기는 KOREA MILITARY ACADEMY다. 해군사관학교는 Republic of Korea Naval Academy, 공군사관학교는 Republic of Korea Air Force Academy다. 영문 표기에서 알 수 있듯, 사관학교는 그리스의 아카데미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군의 리더인 장교를 키우는 사관학교를 아카데미로 명명한 배경에는 진리와 허상을 구별하는 능력 있는 엘리트가 대중을 선과 아름다움으로 향하도록 이끈다는 플라톤의 ‘철인’ 이상이 자리 잡고 있다. 육사 건물에는 ‘사유하고 질문하자’는 펼침막이 붙어 있기도 하다. 육사가 3차례나 쿠데타의 온상 노릇을 한 것은 KOREA MILITARY ACADEMY란 이름을 스스로 먹칠하는 일이다.   < 한겨레 권혁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