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무시 적극 의사, 국회 탄핵소추권 정단, 선거관리 독립성 침해

윤석열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할 헌법재판소 선고가 늦어지며 이런저런 억측이 쏟아지고 있다. 헌법학계에서는 최근 헌재가 먼저 내놓은 다른 사건 결정문을 찬찬히 읽어보라고 권한다. 헌법재판관 8명 의중과 이미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들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① 헌법질서에 역행하려는 적극적 의사
헌재는 13일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을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기각하며 “일부 직무집행 행위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으나, 법질서를 무시하거나 이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도로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이유를 밝혔다. 위헌·위법 행위의 고의성이 크지 않은 만큼 파면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탄핵심판에서 ‘적극적 의도’, 즉 고의성에 대한 판단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제시된 판례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주도한 탄핵소추 근거는 대통령 기자회견 발언(여당 지지)과 이후 청와대 홍보수석 입장 발표(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유감 표명)였다.
헌재는 ‘법 위반의 중대성 판단’을 하며 “대통령의 구체적인 법 위반 행위에 있어서 헌법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될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이 현행 선거법을 ‘관권선거시대의 유물’로 폄하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현행법에 대한 적극적인 위반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소극적·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법 위반 행위이다. 물론, 이러한 발언이 결과적으로 현행법에 대한 경시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에 위반했다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으나, 위의 발언이 행해진 구체적인 상황을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다거나 법치국가원리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중대한 위반행위라 할 수 없다.”(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문)
헌법연구관을 지낸 이황희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재해 감사원장 결정문에 담긴 “법질서에 역행하려는 적극적 의도”는 노무현 대통령 결정문의 “헌법질서에 역행하려는 적극적 의사”에 기초해 나온 판단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주의나 과실 등으로 위헌·위법한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무조건 파면 사유로 삼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국회의 위임에 따라 선한 의도로 만든 대통령령이 결과적으로 위헌 판단을 받는다고 해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했다. 반면 윤 대통령의 경우에는 고의성이 뚜렷하다. 이 교수는 “윤 대통령 탄핵 여부를 평의 중인 재판관들이 ‘적극적 의사’ 파면 기준을 감사원장 탄핵심판 결정에 먼저 포함시킨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위헌·위법 행위인 것을 알면서도 이를 밀고 나가는 적극적 의사와 고의성이 있어야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는데,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 △12·12 대국민 담화 △헌재 탄핵심판 변론 등에서 계엄 선포와 국회·중앙선관위 군병력 투입 등 반복적인 위헌·위법 행위에 본인의 적극적 의사와 지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헌법재판관 6명 이상이 이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로 판단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을 피할 수 없게 된다.
② 국회 탄핵소추권 남용 아니다
헌재가 13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의 탄핵소추를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기각하자,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야당의 탄핵 남발에 경종을 울렸다”고 주장했다. 헌재 결정문은 그와는 반대였다. 헌재는 “탄핵소추권이 남용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회 탄핵소추안 의결 과정에서 필요한 법정 절차가 준수되고 피소추자의 헌법 내지 법률 위반 행위가 일정한 수준 이상 소명되었다. 이 사건 탄핵소추 주요 목적은 헌법 위반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하고 동종의 위반행위가 재발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설령 부수적으로 정치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들어 탄핵소추권이 남용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탄핵 기각 결정문)
야당이 주도한 탄핵소추가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 주장처럼 아무 근거 없는 정치 공세가 아니며, 일부 그런 성격이 있더라도 위법을 의심할 만한 행위가 있었고 필요한 국회 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탄핵 남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헌재 판단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직접 연결돼 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의회독재를 하는 거대야당의 줄탄핵’을 12·3 비상계엄 선포 주요 근거로 든다. 특히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담화에서 검사 탄핵소추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야당이 탄핵을 남발해 국정 마비·국가 위기상황을 초래했고, 이를 계엄으로 바로잡으려 했다는 주장이다. 헌재 변론에서도 탄핵 기각을 요구하는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 헌재가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이창수 결정문에 담긴 셈이다.

③ 선거관리에 대통령 영향력 차단은 헌법적 결단
헌재는 지난달 27일 감사원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무감찰은 선관위 독립성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권한 침해를 인정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중앙선관위에 대한 대통령 또는 행정부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결단이라고 판단했다. “독립적‧중립적 선거관리라는 헌법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외부 권력기관, 특히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2·3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함께 중앙선관위 장악을 지시했다. 국군정보사령부 산하 특수부대인 에이치아이디(HID) 요원 등이 투입됐고, 현직 대법관인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에 대한 체포 계획까지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헌재에서 “전산시스템 스크린 차원에서 중앙선관위에 병력을 보냈다”고 발뺌했는데, 이런 주장조차도 헌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위헌 행위라는 것이 헌재의 중앙선관위 권한침해 결정문에 반영된 셈이다. < 김남일 기자 >
전원일치 여부 몇 초면 알 수 있다…윤 탄핵 심판 선고 ‘관전법’

윤석열 대통령 탄핵 재판이 지난달 25일 변론이 종결된 뒤 3주째 선고가 나오지 않고 심리가 길어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선고 결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윤 대통령 탄핵 재판 선고일 당일의 헌법재판소 심판정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헌재는 윤 대통령 파면 여부를 어떤 방식으로 설명할까. 두 전직 대통령 탄핵 사건을 통해 윤 대통령 탄핵 재판 선고일 감상법을 정리했다.
이전처럼 생중계? 현장에서 결과 듣는 윤석열?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재판 선고는 당일 생중계로 방송됐다. 헌법재판소 심판 규칙은 ‘재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선고를 방송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생중계 여부는 재판관 평의를 통해 결정되고, 선고기일과 함께 공지됐다. 두 전직 대통령 탄핵 선고를 생중계하기로 한 결정에는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역사적 의미가 고려됐다.

이런 이유로 윤 대통령 선고도 생중계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국민 여론이 극단적으로 분열된 상태라 헌재가 생중계를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선고기일을 먼저 정한 뒤, 생중계 여부를 재판부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고 때는 변론기일과 달리 당사자 출석 의무가 없다. 두 전직 대통령도 선고기일에 출석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변론기일에 출석해 적극적으로 변론에 참여했고, 지난 7일에는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으로 석방되면서 ‘자유의 몸’이 됐다. 선고기일에도 헌재에 출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회 소추인단과 대리인단도 선고 당일 심판정에 출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원일치 의견이면 ‘선고요지’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선고요지와 주문 낭독에 21분39초가 걸렸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이 25분36초에 걸쳐 결정문을 낭독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때는 낭독에 걸리는 시간도 재판관들이 논의를 해서 정했다고 한다. 당시엔 선고 당일 헌법연구관들이 새벽 3시까지 남아 선고 요지를 다듬고, 낭독에 걸리는 시간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와 비슷하게 20~30분간 선고를 진행하기로 재판관들이 정했기 때문에 이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도록 문장을 밤새 정리한 것이다.

이번에는 선고의 순서도 주목해볼 만하다. 재판부가 선고를 하는 방식은 주문을 읽은 뒤 그 이유가 담긴 선고요지를 읽거나, 선고요지를 먼저 읽고 주문을 마지막에 읽는 방식 두가지다. 주문을 먼저 읽을지, 나중에 읽을지는 재판부 재량이긴 하지만, 대체로 반대·별개의견이 있을 때는 주문을 먼저 읽는다고 한다. 이때는 재판장이 주문을 먼저 읽고, 다수의견을 쓴 주심 재판관이 다수의견을 읽은 뒤, 소수의견을 쓴 재판관이 그 의견을 읽는 순서다.
전원일치 의견일 경우에는 재판장이 선고요지를 먼저 읽고 주문을 마지막에 읽는다. 만약 윤 대통령 탄핵 재판 선고일에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선고요지를 먼저 읽으면 윤 대통령 파면 여부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결정됐음을 미리 알 수 있는 셈이다.
두 전직 대통령 사건은 모두 선고요지를 밝히고 주문을 맨마지막에 읽었다. 박 전 대통령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이 인용됐고, 노 전 대통령 때는 당시 재판관들이 소수의견을 밝히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전원일치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주문 읽을 때부터 효력…효력은 전원일치 아닐 때가 더 빨라
탄핵에 이르게 된 경위부터 판단 이유까지 적는 결정문은 두 전직 대통령 탄핵심판의 분량이 거의 비슷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61쪽, 박근혜 전 대통령은 70쪽 분량이었다.
결정문에는 재판장이 주문을 읽는 시각도 정확하게 표기된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부터 이런 방침을 유지해왔는데, 박 전 대통령 결정문을 보면 결정문 초반부에 ‘선고일시 2017. 03. 10. 11:21’이라고 분 단위까지 적혔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읽기 시작한 시각이다.
탄핵 사건은 주문을 읽기 시작한 시점부터 기각이든 인용이든 즉시 효력이 생긴다. 선고 즉시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정확한 시각을 적어놓는 것이다. 재판관들은 결정문에 시각까지 적혀 있는지 확인한 뒤 전자결재로 결정문에 서명한다.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면 윤 대통령은 곧바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다. 반대로 기각·각하 결정이 나오면 직무정지 상태가 해제돼 즉시 대통령직에 복귀한다.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이 아니면 주문을 먼저 읽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은 더 빨리 효력을 얻게 된다. 또 결정문에는 반대의견(소수의견)도 적힌다. 대통령 탄핵사건에서 반대의견이 적힌 적은 없었다. 탄핵이 기각됐던 노 전 대통령 때는 헌재법상 소수의견 적시가 불가능했고, 박 전 대통령 때는 전원일치 인용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 사건에서 전원일치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대통령 탄핵 사건 결정문에 헌정사상 최초로 소수의견이 적히게 된다. < 한겨레 오연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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