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주주의·권위주의·외국인 혐오 ‘극우 핵심 성분’
윤석열 12·3 비상계엄 ‘명분과 행동’에 모두 포함
윤 처벌 ‘정무적 판단’ 제외시 13~20%가량 추정

‘한국의 극우’가 누구인지를 규명하는 일은 ‘극우’를 정의하는 일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정의가 미국의 극우 연구자 카스 무데의 것이다. 그는 극우의 특징으로 반민주주의, 권위주의 국가관,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추출해냈는데, 그중에서도 ‘반민주주의’를 가장 중요한 성분으로 꼽았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극우’는 ‘12·3 계엄에 대한 지지 여부’로 판별하는 게 합리적이다. 12·3 비상계엄이야말로 ‘반민주주의’(군을 동원한 헌정질서의 중단)와 ‘권위주의 국가관’(“계엄은 정당한 통치권 행사”)과 ‘외국인 혐오’(“중국 간첩의 국정 교란”) 같은 극우의 핵심 성분을 ‘명분과 행동’ 안에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부에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을 모두 ‘극우’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들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3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중요한 건 ‘탄핵 반대’ 응답층 안에 비상계엄 선포에 부정적이고, ‘서울서부지법 난동’ 같은 극단 행동에도 반대하는 이들이 다수 섞여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평가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뿐 아니라, ‘처벌의 경중’과 ‘파급 효과’에 대한 ‘정무적 판단’도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극우의 판별 기준을 ‘계엄에 대한 지지 여부’로 좁히면, 그 규모는 유권자의 20% 안팎으로 추산할 수 있다. 한국의 유권자 수를 여기에 대입하면 대략 880만명 안팎이란 계산이 나온다. 참고로 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 조사(1월22~23일 1514명 웹조사)에선 13.9%, 시사인-한국리서치 조사(2월3~5일 2천명 웹조사)에선 18%가 계엄 지지자였다. 두 조사에서 계엄에 대한 부정 평가는 각각 72.9%, 73%였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 가운데 참조할 만한 것은 박범섭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가 지난 2월 동아시아연구원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누가 계엄을 지지하는가?’라는 논문이다. 여기서 박 교수는 “강한 정부를 선호하며,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에 불만을 가지고 있고, 특정 정당이나 정치 지도자에 대한 정서적 양극화가 강한 사람일수록 계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성별이나 나이의 많고 적음(60대 이상은 제외)은 계엄에 대한 지지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부분은 ‘대통령이 국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강행해야 한다’, ‘국회의 견제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일수록 계엄 지지 비율이 높았다는 사실이다. 극우에 친화적인 국가주의·권위주의 성향이 계엄 지지자들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아울러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치세력에 대한 반감이 큰 집단에서 계엄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이 높게 나타났는데, 연구는 “윤 대통령(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이재명 대표(민주당)를 혐오하는 응답자에서 계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진단한다. ‘윤석열 강성 지지-이재명 강력 혐오’ 집단에선 계엄에 반대하는 응답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박 교수는 통화에서 “정서적 양극화가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시키고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상황까지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극우’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우려한다. 황인정 성균관대 좋은민주주의연구센터 전임연구원은 2023년 1월 208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웹조사에서 스스로 이념 성향을 극단적 보수에 가깝게 표시한 이들의 특성을 분석한 바 있다. 황 연구원의 결론은 한국에서 스스로를 극우 성향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13% 정도라는 것이다. 이들은 특징은 △한-미 동맹을 강력히 지지하고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으며 △‘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니다’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 등이었다.
황 연구원은 “국민의힘이 서부지법 폭동에 동조한 이들, 탄핵 이후 거리로 나온 극우 성향 유권자들까지도 지지층으로 편입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극우는 국민의힘의 주력부대로 당 내외 정치에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이승준 기자 >
“헌재 쳐부수자”는 국힘 의원…브레이크 없는 ‘극우화 폭주’

국민의힘 의원들의 ‘헌정질서 부정’이 도를 넘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격화된 헌법재판소에 대한 폄훼와 흔들기가 급기야 ‘헌재 파괴 선동’으로까지 치달았다. 조기대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제되지 않은 극단적인 발언과 행동이 줄어들 것이란 세간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극우화’의 외길을 따라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모습이다.
서천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보수성향 기독교단체인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한 여의도 집회에서 “불법과 파행을 자행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선거관리위원회, 헌법재판소, 모두 때려 부숴야 한다. 쳐부수자”고 말했다.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이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 집회에 참석해 극우적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을 한 적은 있지만, 선관위 같은 독립적 헌법기관과 헌재라는 최고 사법기관에 겨냥해 “때려 부숴야 한다” “쳐부수자”고 선동한 건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김기현·나경원·추경호 등 국민의힘 의원 37명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성태 전 원내대표 등 원외 인사들이 참석했다.
경찰 출신인 서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인터넷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돼 2019년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형이 확정됐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었지만, 22대 총선을 앞두고 ‘사면’ 조치로 서 의원에게 공천받을 길을 터준 것도 윤 대통령이었다.
같은 날 전광훈씨가 이끄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의 광화문 집회에서는 “불법 탄핵 재판을 주도한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을 즉각 처단하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옥중 편지가 낭독됐다. ‘헌법재판관 처단’을 선동하는 내란 주범의 극단 발언이 여과 없이 전파된 것이다. 이 집회에는 박대출·강승규·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함께했다.
당 지도부는 서 의원 등의 발언에 대해 ‘개인적 입장’이란 공식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번엔 너무 나갔다. 당 차원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 지도부 핵심 인사는 “(여당 의원이) 헌재 등을 쳐부수자고 한 것은 선을 한참 넘은 발언이다. 중도층 지지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의원들 발언은 거꾸로 가고 있다. 당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성동 원내대표는 삼일절 기념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집회에) 가고 안 가고는 각자가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으로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극우의 미몽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황정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법치와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국회의원이 오히려 극렬 지지층들에 탄핵 불복을 선동하고, 폭동을 사주하고 나섰다”고 비판하며 ‘헌법재판소를 때려 부수자’고 주장한 서천호 의원의 즉각적인 제명을 요구했다. < 한겨레 서영지 고한솔 기자 >
국힘 극우화 8년…두 번의 총선 참패와 윤석열이 ‘폭주 기폭제’
박근혜 탄핵 뒤 황교안 체제-극우 결탁
2020년 총선 패배로 ‘일시적 거리두기’
‘윤석열 포퓰리즘’ 실패에 극우 재활성화
2024년 총선 참패, 내란·탄핵 거치며 폭주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주의를 정체의 기본원리로 삼는 대한민국 집권 여당이다. 군사정권에 뿌리를 둔 권위주의 세력과 영남 기반 자유주의 세력이 연합한 민주자유당(1990~1995년)을 계승한다. 이념적으로 반공·국가주의 성향을 띠면서 경제적으로는 친대기업 노선을 걸었다. ‘북한 변수’의 영향으로 매카시즘적 성향이 도드라지는 시기도 있었지만 이 당을 ‘극우’로 규정하는 이는 드물었다. 권력분립과 법치, 개인의 자유 보장이 핵심인 현행 헌정질서를 부정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이탈을 시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은 12·3 내란을 거치며 급변했다. 많은 이들이 국민의힘을 ‘극우 정당’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군을 동원한 헌정 파괴 시도를 옹호하고,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권위를 흔들면서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잠복해 있던 배외주의(반중국)와 소수자 혐오를 키우는 전형적 극우 정당의 행태를 보인 탓이다.

전조
모든 것을 12·3 내란이라는 ‘정치적 급변사태’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국민의힘 극우화’의 기운이 문재인 정부 출범(2017년)을 전후로 싹텄다고 본다. 2016년 총선 패배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새누리당 분당을 거치며 보수정당이 원내 소수파가 되고, 남북 관계의 급속한 해빙과 시민사회의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 등에 자극받은 반공·반북, 극우 개신교 집단이 ‘광장에 결집된 힘’을 등에 업고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하던 시기다.
변곡점은 2019년 자유한국당 황교안 체제의 등장이었다. 이 체제는 문재인 집권 중반기, ‘보수 몰락’이라는 위기의식 속에 주변부에 머물던 극단주의 세력이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며 주류 보수정당을 압박해가는 흐름 속에 탄생했다. 실제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에 본격 돌입한 2019~2020년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에 취임한 전광훈 목사가 태극기 부대와 함께 전국조직을 만들어 ‘문재인 하야 서명’을 받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2019년 10월부터는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들도 이 흐름에 합류하는데, 당시 전광훈 목사 집회에서 마이크를 쥔 정치인 중에는 김진태 강원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도 있었다.
같은 달 25일 전광훈 세력의 광화문 집회에는 황교안 대표가 의원들을 이끌고 참석했다. 그해 12월16일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주최한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 집회’에는 극우 개신교 세력이 대거 참여해 “목숨 걸고 자유대한민국을 지키자”는 황교안 대표의 발언에 “아멘”과 “할렐루야”로 화답했다.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일부 참가자가 국회 본관 난입을 시도해 국회 경비대와 충돌했다.

거리두기와 재결합
황교안 체제에서 시작된 ‘극우와의 동거’는 결과가 처참했다.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꿔 치른 2020년 총선에서 103석을 얻는 데 그쳤다.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였다. 황교안 체제가 1년2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섰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전광훈 목사와 우리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극우 손절’에 착수했고,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는 “사회에서 소위 ‘극우’라고 하는 분들, 당은 우리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별’이 아닌 ‘일시적 거리두기’에 불과했다.
‘극우화’의 새로운 국면은 윤석열의 대선 도전과 함께 시작됐다. 전광훈 목사는 2022년 1월 교회 설교에서 “윤석열을 통해 정권교체 하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으면 가져와 보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 시기 윤석열 후보 역시 ‘우파 포퓰리스트’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당시 윤석열이 가장 공을 들인 작업은 ‘공정과 상식 회복’이란 슬로건 아래 ‘약탈세력’과 ‘국민’으로 사회를 갈라치는 일이었다.
윤석열식 포퓰리즘에서 ‘약탈세력’은 리버럴 성향의 86세대 정치인과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정규직 노조, 페미니스트, 진보시민단체, 성소수자와 이주노동자 등 평소 윤석열과 주변 세력이 강한 적대감을 표출해온 집단이었다. 그런 다음 이 약탈세력을 제외한 모든 이를 ‘국민’으로 호명해 제 편으로 끌어모았다. ‘국민’의 핵심은 종합부동산세와 고액 재산세 납부자, 극우 노인층, 대형 교회 신도, 20~30대 남성, 전통적 보수 유권자, 양극화로 직격탄을 맞은 취약계층이었다. 결과는 0.73%포인트 격차의 초박빙 승리였다.

잠복과 재활성화
문제는 우파 포퓰리즘이 ‘집권 전략’으로는 효과적이었지만, ‘통치’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는 데 있었다. 기존 질서를 비판하며 대항 세력을 모으는 것과 국가 공동체를 운영하는 일은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집권 1년차까지는 뚜렷하게 가시화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시기 국민의힘은 전광훈 세력을 경계하며 그들과 당 내부의 유착 움직임을 과감히 차단하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2023년 3월 전광훈 목사 집회에 참석한 김재원 최고위원이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에 반대한다”고 했다가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를 받은 게 대표적이다. 같은 시기 황교안 전 대표는 전광훈 목사의 공천 청탁 사실을 폭로하며 “(전광훈 세력을) 당에서 축출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김재원 전 의원은 국민의힘 1·2·3기 지도부 선거에서 연이어 최고위원에 뽑히며 당의 징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여기엔 2017년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와 2019년 극우-자유한국당 밀착, 2022년 대선을 거치며 국민의힘에 대거 입당한 극우 개신교와 태극기 세력의 조직화된 움직임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 만큼 잠복기는 1년을 채 넘기기 어려웠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전쟁의 언어’로 가득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노동계를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로 규정했다. 그해 경축사의 말들은 “일거에 척결” “처단한다” 등 1년3개월 뒤 비상계엄 담화와 포고문에 등장할 ‘절멸의 언어’의 예고편이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집권 초엔 공정을 강조하며 민생을 챙기겠다더니, 통치가 제 뜻대로 되지 않자 야당을 탓하며 이념적 내전을 선포한 것”이라고 했다. 지지율 하락과 거대 야당과의 갈등, 그로 인한 국정 교착이 장기화하자 잠복했던 극우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된 것이다.

참패와 혼돈
극우화가 윤석열 대통령 탓만은 아니었다. 극단으로 치닫는 대통령의 생각과 행동을 집권 여당이 제어하지 못한 게 뼈아팠다. 국민의힘은 오히려 극우화에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추는 쪽을 택했는데, “ 자유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단호히 배격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했던 2023년 8·15 경축사에 대한 국민의힘 논평이 이를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데는 대선과 당직 선거를 거치며 당 전체가 친윤석열계 일색으로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윤 대통령과 대립하던 이준석 대표가 2022년 7월 당대표에서 축출됐고, 2023년 3월 전당대회 땐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나경원 의원이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압박 속에 당권 레이스에서 강제 하차했다. 이런 기형적 ‘당정일체’ 시스템 아래서 당의 모든 의사결정은 윤석열·김건희의 ‘부부 의지’에 좌우됐다.
결과는 또 한번의 총선 참패였다. 지난해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는 데 그쳤는데, 이 가운데 부산·울산·경남이 34석, 대구·경북이 25석으로 영남 지역구 의원이 당 전체 의석의 54.6%를 채웠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원내에 진입한 의원이 영남권에 편중된 것은 정치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국민의 평균적 요구 대신 영남권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면서 당의 극우화를 제어할 역량 자체가 거세돼 버렸다는 것이다.

내란과 폭주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일본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가 분석한 ‘전전(戰前) 일본의 통치 메커니즘’과 비슷했다. 여기서 권력은 ‘천황’이라는 절대적 권위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분배됐는데, 이 시스템의 특징은 권력을 분배받아 행사하는 주체들이 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자기 내부’에 갖기보다 ‘중심(천황)과의 거리(근접성)’에 의존한다는 데 있었다.
국민의힘 역시 각 주체들이 행사하는 권력의 크기는 중심(윤석열 부부)과의 근접도에 비례했다. 문제는 이 시스템에선 중심이 사라지거나 약화될 경우 각 단계의 권력이 중심을 추종해온 하부로부터의 압력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게 된다는 데 있었다. 12·3 내란 뒤 국민의힘의 모습이 그랬다. ‘윤석열 없는 친윤계’는 사라진 권위와 권력을 안으로부터 새롭게 만들어 채워나가기보다, 폭민화된 윤석열 추종세력에 올라타 붕괴 위기의 통치 레짐을 지켜나가려고 했다. 그 결과는 ‘극우의 주류화’였다.
일련의 과정은 12·3 내란 이후 정국의 전개 상황을 살피면 명확해진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12·3 내란 사태의 전개를 5개의 국면으로 정리하는데, 1국면은 12월3일 집권세력의 친위 쿠데타 시도와 국회·시민의 방어행동이 펼쳐진 시기다. 2국면은 계엄 해제 뒤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최대 합의가 일시적으로 형성된 시기, 3국면은 국회의 탄핵으로 제도적 권력 자원을 상실한 윤석열이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헌법기관 공격을 선동하는 단계다. 4국면은 극우의 대규모 결집과 법원 폭동 등 극우 테러가 본격화하는 시기, 5국면은 국민의힘이 극우세력의 폭력 선동에 동참함으로써 파시즘 경향을 강화하는 단계다.

파국이냐 회생이냐
12·3 내란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하지 않을뿐더러,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압살하려는 집단이 한국 사회에 상당 규모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극우 사회세력과 보수 정치세력의 동맹이 심각한 단계까지 진전됐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는데, 역설적으로 이것은 한국 보수정당의 구조적·이념적 취약성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처럼 보수 정치세력과 극우 사회세력의 동맹이 유지되면서 집권에까지 이를 경우 한국 사회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파국’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을 막는 길은 보수 정치세력을 극우 사회집단으로부터 격리하는 것, 국민의힘의 ‘보수정당화’다. 이 목표를 국민의힘의 의지만으로 성취하기란 무망한 일이다. 정당의 체질 혁신은 내부의 자구노력과 경쟁 정치세력의 충격, 사회의 집요한 압력이 합쳐질 때 완수될 수 있음을 세계 정당사는 보여주기 때문이다. < 한겨레 이세영 신민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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