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도 흘려보낸 헌재, 24일이면 100일째

26일 선고도 어려울 듯…고3 '학력평가' 시행일

헌재 주저할수록 더 포악해지는 내란 동조 세력
계란 테러에도 "민주당 자작극"…폭력 수위 높여
윤석열, 극렬 지지자 고무‧선동…"뜻 잘 받들겠다"
여당은 헌재 흔들기 효과에 "기각·각하" 기세등등

민주 "국힘 궤변에 끌려다녀…헌재 너무 정치적"
"의도적 지연 의심…더 극악해질 극우 망동 우려"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차량에 장착된 확성기로 대통령 탄핵 촉구 기자회견 참석자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욕설을 한 윤석열 대통령 극렬 지지자(오른쪽)에게 한 남성이 항의하자 차에서 내려 강하게 밀치고 있다. 2025.3.21. 연합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 수괴가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지 100일이 넘도록 파면되지 않고 관저에서 요원들의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극우 세력의 난동을 조장하는 이 초현실적 상황은 언제쯤 끝날까.

 

국가적 대혼란의 장기화 속에 시민들은 피가 마르지만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최우선으로 신속하게 심리한다"고 공언했던 헌법재판소는 거꾸로 윤석열 대통령 사건을 가장 마지막까지 미루며 결과적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고만 있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오늘이라도 윤 대통령 선고기일을 공지해줄 것을 간절히 요청했으나 헌재는 변함없이 침묵을 고수하면서 이번 주도 다 흘려보냈다.

 

오는 24일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지 100일째가 되는 날이다. 박근혜 대통령 때의 심리 기간 91일 기록은 진작 깨졌고 이제 세 자릿수로 접어들게 됐다. 그러나 이날엔 한덕수 총리 사건 선고가 잡혀있을 뿐 윤 대통령 선고일은 여전히 '미정'이다. 예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짜는 26일인데 이날도 난망해 보인다.

 

시민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설마 설마' 했지만, 윤 대통령 선고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일인 26일보다 더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고3 학생들의 첫 번째 수능 모의고사인 '전국연합학력평가'가 26일 시행되기 때문이다. 헌재가 윤 대통령 선고일을 지정하면 중앙고‧덕성여고 등 인근 학교들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임시 휴교를 하기로 했는데, 26일은 수능 모의고사가 예정돼 있어 휴교가 불가능한 탓에 헌재는 그 이후로 택일을 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면 남는 건 28일이다.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금요일에 선고할 확률이 현재로선 가장 높다. 일각에서는 아예 4월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데,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임기가 4월 18일로 만료되기 때문에 그렇게 촉박하게 윤 대통령 선고일을 잡을 경우 위험 부담이 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극렬 지지자가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탄핵 촉구 기자회견 참석자들을 향해 욕설을 하고 있다. 2025.3.21. 연합

 

헌재가 이처럼 결단을 못 내리고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에 내란 동조 세력의 언동은 점점 더 포악해지고 있다. 헌재 주변 극우 집회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기자회견 도중 얼굴에 계란을 세게 맞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민주당 측의 자작극"이라는 패륜적 의혹을 제기했고 윤 대통령의 변호인인 검찰 출신 석동현 변호사도 "명백히 자작극이거나 아니면 99% 유도극"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들의 망언에 맞장구를 치는 지지자들은 피해자인 백 의원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극언을 배설하는가 하면, 경찰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민주당 이재정 의원의 허벅지를 걷어차는 등 폭력의 강도를 계속 높여가고 있다.

 

이 같은 '테러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배후에는 물론 윤 대통령이 존재한다. 야당과 헌법재판소 등을 비난한 뒤 '윤석열 대통령 만세'라는 문구가 적힌 유인물을 뿌리고 분신했던 70대 남성이 숨지자 윤 대통령은 빈소에 참모를 보내 "유서를 몇 번이나 읽어봤다. 뜻을 잘 받들겠다"고 전했다. 탄핵 반대를 외치며 단식 투쟁 중인 지지자들에게는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을 통해 "탄핵심판 결과가 중요해도 단식을 멈추고 건강을 회복하라"고 당부했다. 극렬 지지층을 고무시키고 선동하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탄핵심판에 승복하겠다는 의사는 절대 밝히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헌재가 윤 대통령보다 한 총리 선고를 먼저 하기로 하면서 화색이 가득한 분위기다. 그동안 헌재를 줄기차게 압박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판단 아래 한 총리 탄핵안이 기각 또는 각하될 게 확실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에 더해 이재명 대표가 항소심에서 또 징역형을 선고받을 경우 대대적인 파상공세를 벌이며 그 여세를 몰아 윤 대통령 사건도 기각 또는 각하를 받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나경원·윤상현·박대출 의원 등 30여 명은 21일에도 헌재 앞에서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기각·각하를 촉구하는 '시국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의힘 윤재옥 의원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각하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3.21. 연합

 

헌재의 선고 지연이 내란 세력 및 그 잔당의 기를 살려주고 반동을 북돋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민주당에서는 헌재를 향한 의구심과 원망이 도처에서 분출하고 있다. 한편으론 헌재의 '의도적 지연'이 윤 대통령 파면을 위한 '빌드업' 과정이 아니겠냐고 기대하면서도 국민의힘에 너무 끌려다니는 모양새에 불안감이 확산되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헌재가 좌고우면하는 것으로 비치고 탄핵 결정이 한없이 늘어지면서 극우 시위가 갈수록 과격해지는 양상을 우려하고 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헌재가 최우선 처리하겠다고 한 윤석열은 선고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는데 한덕수 총리 먼저 선고를 한다니 이를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윤석열 파면이 늦어질수록 나라와 국민이 입을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 자명한데, 헌법재판소는 왜 거북이걸음인지 국민께서 묻고 계신다. 오늘 바로 선고기일을 지정하고 가장 빠른 날에 윤석열을 파면함으로써 헌정질서 수호라는 본연의 책무를 다하길 거듭 촉구한다"고 했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원칙이 흔들리니 신뢰가 흔들린다. 한덕수 총리 선고기일 지정으로 '선입선출' 원칙도, 헌재가 스스로 밝혀온 '중요 사건 우선' 원칙도 무너졌다"면서 "다음 주 윤석열 파면 선고를 위한 선행 조치라는 해석도 있지만, 윤석열 파면 선고가 기약 없이 더 늦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또한 커지는 이유는 결국 원칙이 무너진 탓이다. 오죽하면 '헌재가 국힘의 요구를 다 들어주며 끌려가나'라는 지적이 나오겠느냐. 헌재의 파면 선고를 향한 국민의 인내는 이미 한계점을 넘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민주당 여성위원회 주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5.3.21. 연합

 

전현희 최고위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헌재가 너무 정치적이다. 국민의힘이나 보수 측에서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궤변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국민의힘 요구 중 하나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이재명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판결 뒤에 해야 한다였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돼가고 있다. 헌재가 의도한 것으로 보냐"고 묻자 전 최고위원은 "그런 생각과 불안감이 들고 있다.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라며 "헌재가 국민의힘 요구에 맞춰가는 듯한 상황이다. 그래서 저희는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로 보고 있다"고 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내란수괴 윤석열 지지자들이 야당 국회의원에게 계란 테러와 폭행을 감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민의힘이 부추기고 경찰이 방치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되지만,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늦추고 있는 헌법재판소에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지연되고 있는 기간 동안 발생하는 일들에 헌법재판소는 책임이 없는가? 헌법재판관들이 숙고에 숙고를 거듭해 왔겠지만 지금은 '의도적 지연'이라는 의심까지 확산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전히 '윤석열 파면'을 확신하지만 시간이 지연되면서 더 극악해질 극우 망동, 다른 한편 선고 지연을 규탄하는 국민적 분노 표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유흥식 추기경 “헌재 더 이상 지체 말라…정의에는 중립이 없다”

 

 
 
지난 2022년 8월27일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거행된 추기경 서임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흥식 추기경에게 추기경의 상징인 각모를 씌워주고 있다. 바티칸/EPA 연합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이 21일(현지시각)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지체하지 말고 “정의의 판결”을 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호소했다. 그는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며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린 이들에 대한 책임을 명백히 밝혀달라고도 했다.

 

연합뉴스의 이날 보도에 따르면 유 추기경은 영상 담화문을 통해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한 갈급한 마음으로 헌재에 호소한다”며 “우리 안에, 저 깊숙이 살아있는 정의와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면 더 이상 (선고를) 지체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며 “이와 마찬가지로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 우리 헌법이 말하는 정의의 판결을 해달라”고 했다. 유 추기경은 “여러 언론 종사자와 사회 지도층, 종교계로부터 교황의 건강에 대한 우려와 함께 비상계엄 후의 우리나라의 무질서하고 어려운 현실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표명해 줄 것을 요청받았다”며 담화문을 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연합뉴스는 유 추기경이 법과 양심이 사회의 근본이 돼야 함에도 법을 가볍게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특히 사회지도층이 법과 정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현실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가 헌재의 선고 지연으로 극도의 혼란과 불안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며 갈등이 깊어지면 공영의 길이 멀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유 추기경이 우리 사회가 조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헌재가 신속히 판단을 내려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린 이들에 대한 책임을 명백히 밝혀달라고 강력히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유 추기경은 지난 2021년 6월 한국인 성직자로는 최초로 교황청 장관에 발탁됐다. 2022년에는 김수환·정진석·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한국인 네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 한겨레 김지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