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외교 회동 앞두고 ‘아사히’와 서면 인터뷰
을사늑약 120년, 한일협정 60년 '돌아온 을사년'
강제동원 피해자들 ‘제3자 변제’ 지지 강변
한일 대륙붕공동개발 실무협의 일본어로 진행
일한의원연맹 전 간사장 “윤 대통령 복귀 기대”

조태열 외교부장관은 21일 <아사히신문>에 실린 서면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국제사회를 놀라게 하고, 한국 외교와 경제에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며 “(그로 인한) 정상외교의 공백에 따른 손실이 큰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 경제와 외교에 악영향
조 장관은 22일 도쿄에서 열릴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을 앞두고 한 <아사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얘기하면서 그나마 국회 결의로 계엄령이 “즉시 해제됐기에 실제 영향은 걱정한 것만큼 크진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탄핵정국이 끝날 때까지는 권한대행체제 아래서 최대한 그 (정상외교) 공백을 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내가 외교 현장에서 느낀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강인함과 회복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와 기대가 우려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라고도 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 ‘제3자 변제’ 지지 강변
조 장관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확정판결 이후 한일 사이에 생긴 ‘부정합’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은 지난한 과제”라며, 한국대법원이 2018년에 (배상하라고) 확정판결한 “‘징용공’(강제동원 피해자) 등 15명 가운데 14명이 배상금 상당액을 받았다”며 “당사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가해기업 등 일본 쪽이 아니라 한국정부 주도 아래 한국기업과 정부가 출연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지원재단’(행안부 산하) 기금을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조로 지불하는 ‘제3자 변제’ 방식에 의한 편법 처리를 두고 하는 얘기다.
이 편법이 피해 당사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조 장관의 발언은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의 가해 기업들이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데 대한 법원의 해당기업들 자산(주식 등) 압류 및 처분을 통한 배상 명령 이행을 일본정부가 방해하고 있고, 한국정부 또한 사실상 일본정부 편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법원 판결에 따른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통해 배상을 받을 수 없게 된 고령의 피해자나 그 유족들이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로 제3자 변제 방식의 한국정부 주도 재단 기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는 약자일 수밖에 없는 피해자 쪽의 어려운 처지를 악용한 아전인수식 주장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받지 않고 있는 한 사람의 피해자(또는 그 유족들)만 사라지면 문제는 다 해결된다고 보는 것인가.
여전히 상응 조치 없는 일본 재확인
조 장관은 또 재단이 기업 등으로부터 기부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재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일본의 ‘성의있는 호응’이 있다면 해결책의 지속 가능성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라며 일본기업 등의 기부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 내의 격심한 반대에도 일본정부 쪽 요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윤석열 대통령의 제3자 변제 방식 위로금 지불 강행을 칭찬하면서 마땅히 그에 상응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얘기해 온 일본 쪽에서 실제로는 아무런 상응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해 주는 말이다. 전 정부 때보다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한일관계 개선은 한국정부의 일방적 양보와 일본 요구의 무조건적 수용 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일 대륙붕공동개발 실무협의 일본어로 진행
<아사히>는 그 기사에서 1979년에 외교부에 들어간 조 장관이 당시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에 관한 실무협의자의 일원으로 양국 실무회의에 참석했을 때 “회의가 일본어로 진행돼 (회의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회의장을 나간(퇴석)” 사실을 거론하면서 “그때 스노베 료조 당시 주한 일본대사가 조 씨를 배려해 말을 걸어 한국어로 얘기해 주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는 조 장관 저서의 일부 내용을 인용한 것으로, 조 장관은 “스노베 대사의 배려와 성심성의의 태도 속에 한일관계가 밝은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는 열쇠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인들이 먼저 과거사로 인한 한국인들의 아픈 마음에 다가가서 손을 내민다면 한국인들은 틀림없이 그 손을 잡고 미래를 향해 더 큰 일보를 내디디게 될 것이다.”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실무협의가 일본어로 진행됐다면 당시 한국은 주권국가가 아니라 사실상 일본의 한 지역이었다는 얘긴가? 그리고, 거기에 일본어를 모르는 외교부 직원이 한국대표로 참석했다면, 그 협의가 제대로 이뤄졌을까? 스노베 주한 일본대사가 거기에 참석한 일본어도 모르는 한국의 한 실무대표에게 한국말로 설명해줬다는 얘기는 상대국 대표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추후 말썽이 날지도 모를 사태에 대한 응급 수습책이 아니었을까.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 잘못된 일본쪽 추도사 탓
조 장관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노역을 당한 사도광산 추도행사에 지난해 한국쪽이 불참하고 따로 행사를 연 것과 관련해 올해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원만히 진행되지 못한 것에 유감을 표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정부가 (일본정부) 추도식에 불참한 배경에 일본정부 대표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적이 있다는 (잘못된 뉴스로 인한) 오해가 있다고 보는 듯하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일본 쪽 추도사 내용이, 한국이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때 국내의 비판을 무릅쓰고 합의해 준 내용의 수준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쪽이 주최한 추도식에 한국 쪽이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추도식에 참석한 일본정부 대표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석했다는 일본 언론의 오보로 인한 한국 쪽의 오해 때문이라는 일본 쪽의 주장이나 보도가 잘못된 것이고, 실상은 일본 쪽이 마련한 추도사 내용이 한국이 요구한 강제동원 사실 명기 등 과거사 반성적 내용을 제대로 담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발로 참석을 보이콧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본 사도광산 현지 전시장에는 지금도 한국 쪽 요구보다는 오히려 일본 우익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주로 전시돼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군함도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일한의원연맹 전 간사장 “윤 대통령 복귀 기대”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이 과거사와 관련해 이미 수십 번이나 사과했다며, 100년 전의 일로 일본이 무릎을 꿇게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으나, 일본은 이제까지 근대 이후 일본이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단 한 번도 무릎을 꿇은 적이 없다.
그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일본, 특히 우익세력의 ‘사랑’은 각별해서, 그가 비상계엄 발동으로 국회 탄핵 결의 뒤 헌법재판소의 탄핵 및 내란죄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우익 월간지 <분게이슌주>(문예춘추) 4월호에 ‘윤 대통령을 옹호한다’는 제목의 ‘특별 대담’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는데 윤덕민 전 주일 한국대사의 대담 상대인 다케다 료타 전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선거법 위반혐의 1심 유죄판결 등과 관련해 이렇게 얘기한다.
“그런 이재명 씨가 윤 대통령을 너무 몰아붙이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 서서히 침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면 탄핵재판 행방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한일관계를 생각하면, 윤 대통령이 (권좌에)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우파 주류는 한국 야당이 왜 그렇게 고위직에 대해 탄핵이라는 비상수단을 자주 꺼냈는지, 윤 정권의 실정과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 등 그 원인에 대해서는 눈감아버리는 한국 우익과 같은 사고구조를 갖고 있다. 그들은 윤이 왜 대통령직을 건 비상계엄 발동을 결행했는지 자신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윤의 대통령직 복귀를 고대하고 있다.
을사늑약 120년, 한일협약 60년 을사년
올해는 1905년 을사년 11월 17일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을 강제해 사실상 대한제국(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지 120년만의 을사년이다. 그 해에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서울에 부임했다.
일본 내각총리 가쓰라 다로는 그해 7월 29일 도쿄에 들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국 전쟁부장관(당시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뒤를 이어 제27대 대통령이 됨)과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각기 조선과 필리핀에 대한 사실상의 식민지배를 상호보장했다.
그 전해인 1904년 8월 22일 일제는 ‘한일 외국인 고문 용빙(초빙)에 관한 협정’(제1차 한일협약)을 강제해 외교 재정권을 박탈했다. 한국의 외교 안건은 일본정부와 협희해서 결정하고 처리해야 한다며, 일본인 1명을 외교고문으로 임명하고, 외국인 1명을 재정고문으로 임명하도록 강제했다. 그 재정고문이 일본 외무성에서 근무한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였다. 1908년 3월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 전명운 의사 총에 사살당하고, 다음해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 총에 사살당한 건 사필귀정이었다.
올해는 또 1965년 을사년에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몇 푼의 돈으로 ‘없었던 일’로 치부해 버린 한일협정이 체결(‘한일 국교 정상화’)된 지 60년이 되는 을사년이고, 일본 패전으로 광복이 된 지 80년이 되는 해다.
일제가 이 땅을 침범하지 않았다면
제1차 세계대전 때 일본은 남태평양의 마셜제도를 점령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일본군을 몰아내고 그곳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1946년부터 1958년까지 그곳 비키니 섬 등에서 수많은 원수폭 실험이 강행됐다. 마셜제도의 모든 원주민들이 피폭자가 됐고, 그들 중 2만여명이 미국으로 이주해 아칸소 주 닭고기 가공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처참했던 선조들의 피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일본을 원망하고 있다는 얘기를, 최근 미국에서 그들을 만나 보고 온 김찬휘 전 녹색당 대표가 했다. 일본이 마셜제도를 점령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그곳을 식민지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미국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미국이 핵무기 실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들은 얘기했다.
같은 얘기를 한국인들도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의 만행은 제쳐 놓고라도) 일본이 20세기 초에 조선을 참략해 강점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한반도를 점령해 북위 38도선으로 양분하지 않았을 것이고,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6.26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1천만 이산가족이 생겨나지도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지도 않았을 것이고, 남북대치도 윤석열 친위쿠데타도 없었을 것이다.
근대 이래의 만행에 대한 성찰과 사죄부터
조 장관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게이조의 한일 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대체할 ‘새로운 선언’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말했다. “‘신 선언’에 대해서는 정상회담 등 고위급 교류와 제휴를 통해 검토될 문제인 만큼, 한국의 정치상황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일본정부와 함께 추진하는 것을 검토하겠다.”
‘신 선언’을 하겠다면, 을사늑약 120년, 일제 패망 80년, 한일청구권협정 60년을 맞는 올해 을사년에 일본이 근대 이후 조선과 이웃나라들에 저질러 온 만행에 대한 성찰과 진심어린 반성, 사죄 표명으로 먼저 그 죄과부터 털고 가야 한다. 그 바탕 위에 비로소 동아시아 공동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단초가 열릴 것이다. < 민들레 한승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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