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노골적 선거 개입 되레 역효과… 과반 육박

무역 다변화, EU와 경제 및 안보 협력 강화 등 다짐

유럽, 승리 축하하며 다자주의 촉진·자유 무역 지지
위기의 시대, 정치 신인 카니 총리 정치 리더십 확인

 

'강한 캐나다(Canada Strong)'를 내세운 자유당이 28일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자유당은 전체 343개 지역구 중 169곳에서 승리해 과반(172석)에 육박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보수당은 143석으로 제1야당 지위에 머물렀다. 블록 퀘벡(BQ) 22석, 신민주당(NDP) 7석, 녹색당 1석을 챙겼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29일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전날 치른 총선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2025.4.29. AFP 연합

 

자유당, 역전 드라마 

 

2021년 총선에 비해 자유당(160석, 43.2%)과 보수당(119석, 41.7%)이 모두 의석수를 늘렸지만 퀘벡 민족주의 성향의 BQ(32석)와 진보 성향의 NPD(24석)는 의석을 잃어 양당의 의회 지배가 강화됐다. 자유당은 2021년 총선과 달리 득표율에서도 보수당을 제쳤다. 자유당은 2019, 2021년 총선 때처럼 BQ나 NPD 중 한 곳의 '신임-공급(예산안) 지지'를 얻어 소수 정부를 출범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신임-공급 지지는 연립정부와 달리 정부 신임과 의회 내 예산안 표결에서 연대한다.

 

자유당의 승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맞설 적임자로 지목된 마크 카니 총리(60)의 승리이기도 하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이 25%포인트 차로 대승할 것으로 예상됐던 판세가 바뀐 것은 트럼프의 도전과 카니의 응전에 맞물린 결과다.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물리고, "중국산 펜타닐이 북쪽 국경에서 들어온다"라는 트럼프의 말이 민족주의에 불을 댕겼다. 투표 당일에도 소셜미디어에 "캐나다는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야 한다"라며 캐나다 주권을 위협했다.

 

"(캐나다 유권자) 여러분의 세금을 절반으로 줄이고, 국방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무상 증강시켜 줄 사람을 선출하라"며 노골적인 선거 개입을 했다. 미국 공화당의 자매 정당 격인 보수당의 피에르 포일리에브르 조차 "캐나다의 미래는 오직 캐나다인이 결정한다. 트럼프는 우리 선거에 끼어들지 말라"고 대거리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당이 BQ의 아성인 퀘벡주에서 선전한 것도 '트럼프 효과'의 하나였다. 유권자들이 작은 민족주의보다 캐나다 차원의 큰 민족주의를 더 중요하게 여긴 것. 이브-프랑수아 블랑셰 BQ 대표가 퀘벡주 유세에서 자유당의 카니 총리를 '존재론적 위협'이라고 지목한 까닭이다.

 

캐나다 자유당의 2025 총선 정강. 2025.4.29. [자유당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빌드, 베이비, 빌드"

 

카니는 29일 승리 연설을 "누가 나와 함께 캐나다를 지킬 준비가 됐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했다. 이어 "미국은 우리의 땅, 우리의 자원, 우리의 물, 우리의 나라를 원한다"라면서 "여기 캐나다에서 벌어질 일은 우리가 결정한다"고 잘라 말했다. 캐나다는 미국이 아닌, 유럽과 아시아 등지의 믿음직한 파트너들과 관계를 강화, "트럼프와의 무역전쟁에서 이길 것"을 거듭 강조했다. 국내적으로는 "분열과 과거의 분노를 끝내자. 우리는 모두 캐나다인이고 나의 정부는 모두를 위해 일할 것"이라며 통합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원유 시추를 다짐한 트럼프의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구호를 빗대 주택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매년 50만 채의 주택을 건설하겠다는 "빌드, 베이비, 빌드(build, baby, build)"를 약속했다. 

 

지난 3월 초 저스틴 트뤼도 전 총리에 이어 당을 이끈 카니 총리는 캐나다와 영국 중앙은행장을 역임한 정치 신인. 그러나 '트럼프의 순간'에 당당하게 맞섬으로써 강한 리더십의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총리 취임 사흘만인 지난 17일 사상 처음으로 미국이 아닌, 프랑스와 영국을 먼저 방문해 캐나다가 "비유럽국 가운데 가장 유럽적인 나라"임을 선언했다. 캐나다 최북단 누나부트의 주도 이카루이트도 찾아 프랑스와 영국, 원주민이 캐나다 정체성의 3축임을 거듭 확인하기도 했다. 캐나다의 천연자원을 넘보는 트럼프를 겨냥한 행보였다.

 

북극권. 러시아와 캐나다, 그린란드, 알래스카, 노르웨이 등이 포함돼 있다. 2025.4.6. [미국 국무부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주권 수호" 국방예산 GDP 2%로

 

이번 캐나다 총선에 유독 세계의 관심이 쏠린 것은 그 결과가 캐나다 내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대미 의존도를 줄이면서 미국 밖에서 교역-안보 협력 강화를 다짐하는 자유당의 대외정책은 트럼프 구상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트럼프가 지난 2일 발표한 상호관세를 일단 유예했지만, 캐나다와 EU는 미국이 기왕에 부과한 품목 관세에 보복 관세로 맞서고 있다. 트럼프가 부과한 145% 관세에 중국이 맞불 관세로 대응하는 한편, 협상 제안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미 수출 1조 달러가 넘는 EU-캐나다가 가세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2024년 대미 수출액 기준으로 캐나다(4130억 달러)는 유럽연합(EU, 6060억 달러), 멕시코(5060억 달러), 중국(4390억 달러)에 이어 4위다. 캐나다-EU는 2017년 포괄적 경제무역협정(CETA)가 발효된 뒤 교역량이 66% 늘었다. 캐나다와 유럽이 아직은 '탈 미국'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지만, 트럼프의 도전이 강할수록 관계의 폭과 깊이가 넓어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천연가스 등 캐나다의 자원과 북극권 경제는 유럽에도 매력적인 미래다.

 

카니는 자유당의 총선 정강에서도 "미국 대통령은 해롭고 부당한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자국 경제를 근본적으로 구조 조정하려고 한다. 위기의 시대, 자유당 정부는 미국의 관세에 싸우고, 우리 노동자와 산업을 보호하며, 무엇보다 이 기회를 새로운 캐나다 경제 건설에 활용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강은 사회기반시설 건설과 국방력 강화에 올해 당장 352억 달러를 투입하고, 향후 4년간 309억 달러를 들여 2030년까지 국방예산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기준인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뒤 첫 방문국으로 프랑스를 택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왼쪽)가 지난 17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 자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2025.3.17. UPI 연합
영국을 방문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왼쪽)가 17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25.3.17. EPA 연합

 

한국에 주는 함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9일 X 계정 메시지를 통해 카니와 자유당의 총선 승리를 축하하면서 "EU-캐나다 간 유대는 굳건하며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라면서 "함께 공동의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고, 다자주의를 촉진하며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니는 경제 관료 출신이라고 모두가 영혼 없이 현실에 순응하는 건 아님을 보여준다. 별다른 전략도 결기도 없이 미국과의 협상을 서두르는 동아시아 분단국의 국무총리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트럼프의 오만방자한 선거 개입은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캐나다 총선이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대한민국에 주는 각별한 의미의 하나다. < 민들레 김진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