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제학자 "그 돈으로 노동자·수출기업 지원하라"
귀국 산업장관 "양자 간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

3500억 달러 직접 투자 땐 일본보다 더 타격
외환보유고 84%, 제2 외환위기 가능성 커져
이재명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안 해"

 

관세 후속 협상을 두고 한국과 미국이 팽팽한 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미국에 보내 12일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만나도록 했지만 별 진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새벽 귀국한 김 장관은 한국의 관세 인하와 대미 투자 세부 내용 등과 관련한 러트닉과의 협의 결과에 대해 "양자 간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면서 진전 여부에는 구체적 답변을 삼갔다.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강원도 춘천시 강원창작개발센터에서 열린 지역 토론회 '강원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2025.9.12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
 

관세 후속 협상 '진통'…한미, 치열한 기 싸움
한국, 3500억 달러 직접 투자 수용 불가 고수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한미 양국 간에는 안보 분야에선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 증액과 전략적 유연성, 한국의 핵연료 재처리 허용 여부, 한국의 국방비 증액 규모 등이, 경제통상 분야에선 상호관세 인하와 약속한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약 486조 원)의 세부 내용 등이 뜨거운 쟁점으로 남아 있다.

 

통상 분야에선 두 나라는 7월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25%의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총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고, 8월 25일 백악관 회담이 양국 정상이 큰 틀에서 이를 확인했지만, 그 세부 내용을 놓고 커다란 진통을 겪고 있다.

 

한국의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와 관련한 핵심 쟁점은 △ 직접 투자 비중 △ 투자 대상 선정 주체 △ 투자 이익 배분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직접 투자 비중을 최대한 높이고, 미국이 주도적으로 투자 대상을 선정하며, 투자액 회수 후 미국이 이익의 90%를 가져가겠다고 우기고 있다. 직접 투자 비중을 최대한 낮추고 대출과 보증으로 채워 현금 부담을 낮추며, 투자 대상 선정도 한국 기업들의 사업성 검토를 통하는 게 낫고, 투자액 회수 후 미국이 이익의 90%를 가져가는 건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는 중이다.

 

4일부터 미국을 방문 중인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정재생상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나 양국간 관세에 대한 합의를 문서화한 각서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산 주입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5%로 확정하는 등의 내용을 명기한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일본경제신문 9월 5일

 

일본, 트럼프에 5500억 달러 투자 '백기'
이재명 ”국익 반하는 결정 절대 안 해"

 

문제는 일본이 먼저 미국에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5500억 달러를 미국에 직접 투자하되 투자금 회수 전은 수익을 50 대 50으로 배분하고 이후에는 미국이 수익의 90%를 갖는다는데 합의했다. 굴욕적 협상이다. 트럼프는 4일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이 합의를 공식화했고 추가 세부 사항을 담은 양해각서(MOU)도 함께 발표됐다.

 

한국도 일본을 따르라는 게 트럼프의 요구다. 이렇듯 상황이 심상치 않자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회견에서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좀 어렵다"고 부당한 요구에 호락호락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러트닉은 이날 곧바로 '겁박'하고 나섰다. 러트닉은 일본이 미일 관세 협상 문서에 서명한 것을 거론한 뒤 "유연함은 없다. 한국은 그 협정을 수용하거나 (인하 합의 이전 수준의) 관세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대미 투자 3500억 달러 관련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책정한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협박이다. 그러나 이튿날인 12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회견 발언을 뒷받침하듯 "합리성이나 공정성을 벗어난 협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미국 워싱턴 디시(D.C.) 백악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환영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로이터 연합)

 

3500억 달러 수용 땐 일본보다 더 타격
외환 보유고 84%, 제2 외환위기 가능성

 

만약 이런 요구를 수용한다면, 일본보다도 훨씬 더 타격이 크다. 먼저 외환보유고에서 일본은 한국의 3배가 넘는다. 일본의 8월 외환보유고는 약 1조3242억 달러로 대미 직접 투자액 5500억 달러는 약 42% 수준이다.

 

반면, 한국의 8월 외환보유고는 약 4163억 달러로 3500억 달러를 직접 투자한다면 무려 약 84%에 달한다. 한국의 보유 외환의 거의 전부를 미국에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제2의 외환위기를 부를 우려가 크다. 또한 기축통화국인 일본과 달리, 외환보유고가 국가의 외화 유동성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만큼 현금으로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9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일본과 외환보유고도 차이가 있고 기축통화국도 아닌데 (투자) 구조를 어떻게 짜느냐 문제가 많다"며 "근본적으로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을 같이 고민하고 미국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에 해답을 달라 (요구하고 있고) 그 문제에 와서 교착 상태에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런 가운데 미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딘 베이커 선임 이코노미스트가 11일 '일본과 한국은 돈을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라, 자국의 수출업자들에게 줘야 한다'란 제목의 홈페이지 글에서 일본과 한국 정부가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자 각각 5500억 달러와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의 거래를 트럼프와 하는 건 ”정말로 어리석은 짓"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베이커는 관세 25%를 맞는 대신 그 돈으로 노동자, 수출 기업을 지원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딘 베이커 선임 이코노미스트. 2025. 09. 14 [CEPR 홈페이지]

 

미국 경제학자 "상호관세 25%를 맞으면서
그 돈으로 노동자, 수출 기업 지원이 낫다"

 

베이커는 "더 나쁜 점이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거래에 구속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내년, 그 이듬해, 또는 세 번째 임기 중 어느 시점에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와 일본에 더 많은 돈을 요구할 수 있다. 그의 사업 동료들이 혹독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듯, 트럼프에게 거래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썼다.

 

베이커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대미 수출은 약 1320억 달러였고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7.3%에 해당한다. 먼저 15%의 관세가 수출을 5% 감소시키면, 수출액은 1,250억 달러로 줄어든다. 여기서 트럼프의 25% 관세를 맞는다면 추가 10% 감소는 125억 달러가 되며 GDP의 0.7%에 해당한다.

 

베이커는 ”이 트럼프는 125억 달러의 수출을 보호하려면 3,500억 달러를 내라고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며 ”왜 모든 나라가 특히 트럼프 같은 사람과 이런 종류의 거래를 하려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요구하는 금액의 20분의 1만 가지고도 수출 감소로 피해 보는 노동자와 기업을 지원하는 데 쓰고도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들 나라의 지도자들이 마주친 질문은 트럼프에게 수천억 달러를 공짜로 넘겨줘야 하는지다. 그들은 이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 이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