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금 노동자들이 전한 ‘인권 침해

허리와 손이 한데 묶여 물을 마시려면 고개를 숙여 핥아야 했다. 가림막 없는 화장실에는 하체를 가릴 천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주먹만 한 구멍 틈새로 햇볕은 거의 들지 않았고, 단 두시간 조그만 마당에 나가는 것만 허용됐다. 여드레를 미국 이민 당국에 구금당한 노동자와 가족들은 2025년, 평범한 한국인으로 살며 상상해본 적 없는 인권침해와 부조리를 전하며 충격을 호소했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엘지(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불법이민자 단속으로 구금됐던 노동자 330명이 지난 12일 귀환하면서, 구금 당시 겪은 인권침해 상황이 잇따라 전해지고 있다. 14일 이들의 증언 속에 담긴 구금 시설 모습은 위생, 외부와의 연락, 이의 제기, 상황 설명 등 국제사회가 정한 구금자 처우의 최소 규칙(넬슨 만델라 규칙)이 모두 무너진 상태였다.
체포 과정부터 황당했다. ‘미란다 원칙’ 고지 등 기본적 설명조차 없어 누구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40대 엘지에너지솔루션 협력업체 직원 서아무개씨는 “체포를 당하는 상태인 줄도 몰랐다.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문서에 사인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협력업체 직원 ㄱ(48)씨의 가족은 “서류에 ‘어레스트’(arrest·체포)가 눈에 띄어서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수군거렸는데, 요원들이 총을 들고 있으니 일단은 서명을 하고 말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양파망’ 같은 주머니에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넣어 수거해 간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 등은 이후 쇠사슬로 노동자들의 팔과 다리를 묶다가, 그마저 부족해지자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 노동자들을 속박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구금 초기, 72인실 임시 시설에 몰아넣어졌다. 이날 연합뉴스가 전한 한 노동자의 구금일지를 보면, 2층 침대가 늘어서 있었고 침대 매트에는 곰팡이가 핀 상태였다. 치약, 칫솔, 담요 등 기본적인 물품들도 구금 이튿날에야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들은 한기를 견디려 수건을 둘러 몸을 녹였다. 물에서는 냄새가 나 입술만 축이는 노동자가 여럿이었고, 구금 기간 내내 통조림 콩, 토스트 정도가 음식으로 제공됐다.
구금 3~4일차에 접어들며 노동자들은 순차적으로 2인1실 방을 배정받았다. 4.96㎡(1.5평) 정도 크기에 2층 침대와 철제 책상이 놓여 있는 형태였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타인과 함께 쓰는 공간에서 변기는 하체를 가릴 천 하나만 둔 채 “오픈”돼 있었다. 협력업체 노동자 조영희(44)씨는 “생리 현상에 있어 특히 인권 보장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오픈된 화장실에서 해결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에게는 하루 2시간씩 ‘야드’에 나가는 것이 볕을 볼 유일한 시간이었다. 야드는 농구장 절반 크기의 좁은 마당이었다.
ㄱ씨는 가족을 통해 한겨레에 당시 심경을 전하며, 이해할 수 없는 처우 앞에 항의조차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컸다고 토로했다. ㄱ씨 가족은 “무엇을 이렇게까지 잘못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반인권적인 감금을 당하고 있는데,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 현실이 크게 다가왔다고 한다”고 전했다. 실제 대한민국 영사 등이 구금자들을 찾은 현장에서도 “우리가 무엇을 잘못한 것이냐, 끝까지 밝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노동자들의 하소연이 이어졌다고 한다. 미국의 투자 요청으로 공장을 지으러 나간 현장에서 맞닥뜨린 예기지 않은 상황이 공포를 한층 키운 셈이다.
이성훈 한국인권학회 부회장(성공회대 시민평화대학원 겸직교수)은 “체포 과정, 수십명을 한방에 강제수용하고 열악한 화장실과 음식을 제공하는 등 현재까지 증언들을 보면 구금자 처우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여럿 나타난다”며 “미국이 이런 부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인권적 차원의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정부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미국 쪽에 유감 표명과 동시에 법 집행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속해서 제기했다”며 “제한적 외부 통화, 구금시설 상주 의료진의 건강상태 체크 등 우리 쪽 요청을 일부 수용해 개선했지만, 미진했던 부분은 없었는지 등 우리 국민의 인권이나 여타 권익에 대한 부당한 침해 여부 등에 대해 해당 기업들과 함께 면밀히 파악하고, 필요한 조처를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조해영 장종우 이승욱 서영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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